반려 레즈 투쟁기 12회

by 김성호

15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맞이한 건 남편이었다. 그는 사색이 되어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거실을 서성거렸다. 나는 무슨 낯짝으로 집에 다시 왔냐고 조소했다. 남편은 아무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그 사달이 났는데 어떻게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어?”

“‘아버지로서’? 웃기다, 당신. 그런 말 할 자격 있기나 해?”

나는 그의 말을 하나도 남김없이 북북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애새끼가,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기에 몸캠 피싱 같은 거에 걸리냔 말이야!”

그는 분노했다. 나는 그를 위로하거나 감정을 매만져줄 의도 따위 추호도 없었다.

“걔 혹시 게이야? 동성애자냐고.”

그가 내게 삿대질을 하며 물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그의 뺨을 후려치려는 걸 간신히 참아내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코앞까지. 남편이 혐오스러웠다. 그라는 남자가 추악하고 더럽게만 여겨졌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인간을 사랑했지? 어떻게 이런 인간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지....... 하지만 또 다른 의문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나는 생각을 억누른 채 입을 열었다.

“아니야. 당신 말대로 피싱 당한 거고. 경찰에 신고하면 끝날 일이야.”

“솔직히 말해. 당신한텐 말했을 거 아냐?”

남편은 질기도록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내 친구 재성이 기억나지? 명퇴한다고 했다가 취소했던. 딸이 레즈인지 뭔지라던. 나 걔 꼴 나기 싫어. 그러니까 확실히 말해. 내가 영상 몇 번이고 확인했어. 호석인지, 아닌지. 근데 걔 맞고, 당신 말대로 경찰에 신고하면 끝날 일일지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영상에서 걔가 형형, 거리면서 온갖, 온갖....... ‘끔찍한 짓’들을 했어.”

“아니라고 했잖아. 그리고 나한테도 아무 말 안했어.”

“당신, 걔 엄마잖아. 그리고 나보다 호석이하고 더 친하잖아. 그런데도 몰라?”

그는 내게 점점 더 목청을 높여갔다.

“걔 엄마면, 내가 다 알아야 해? 알 수 있어? 나도 모르는 건 몰라! 내가 할 말은 이제 없어.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 하니까 시간없어. 빨리 비켜. 집에서 나가. 호석이 오기 전에 나가라고.”

“집안에서 뭘 한 거야?”

그가 소리지르듯 외쳤다.

“뭐?”

안방으로 가 문을 닫으려던 나는 멈칫했다.

“애하고 맨날 붙어다녔으면서 그거 하나 모르고. 무슨 짓 하고 다니는 줄도 모르고. 엄마란 여자가.......”

“넌 그런 말할 자격 없다고 했지, 내가? 나한테 죽기 싫으면 당장 나가.”

나는 애써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까지 그 채팅방에 초대된 거 보면 걔 핸드폰 연락처에 아직도 내가 저장되어있는 모양인데, 아직 말 안 했구나? 나 집 나간 거. 출장 갔다고 핑계댔겠지. 당신은 당신의 잘난 완벽한 삶이 조금도 흐트러지는 걸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인간이니까. 내가 바람을 피워도 나나 가족에 대한 안위는 안중에도 없지. 오로지 자기가 위태로워질까봐 두려워하니까. 진희야, 난 그렇게 생각해. 너도 나만큼 비밀이 많다고. 숨기는 게 많다고. 난 그중에 하나가 우연찮게 까발려진 것뿐이고, 너도 머잖았어. 지금이 시작일뿐이야. 호석이 걔 그 영상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그래, 그러니까, 나가. 죽여버리기 전에.”

나는 금방이라도 칼을 찾아 쥘듯 꿈틀거렸다. 남편은 나를 노려보다 집을 나갔다. 나는 그가 사라진 뒷모습을 한참 눈으로 좇다 빠르게 일을 해치우고자 마음먹었다. 부재중으로 쌓여있는 최근기록 중 하나를 눌러 그 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애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심하게 떨리는 그 애의 목소리는 울었는지 축축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가 맞는지. 그 애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기서 끝이었다. 더는 묻지 않았다. 그래봤자 그 순간 득 될 건 없었다. 나는 몇 가지 정보를 그 애에게서 얻은 후 곧바로 사이버경찰수사대 번호를 찾아 신고했다. 안내 절차를 전달 받는 와중에 나는 오직 그 애만 생각하려 애썼다. 호석만이 중요했다. 다른 건 필요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 애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엔 내 쪽에서 애닳게 전화를 걸어댔다. 호석은 받지 않았다. 혹시나 얘가 나쁜 마음 먹은 건 아니겠지.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나는 두려웠다. 지금이라도 경찰에 실종 신고나 자살 시도 신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1분, 2분이 천년의 세월처럼 감각되었다. 끝내 참지 못하고 112에 신고하려던 찰나였다.

현관문 도어록이 열리며 그 애가 나타났다.

나는 그 애에게 뭐라 말을 걸려 했지만 소리가 무언가에 가로막혀 목구멍에서 흘러나오질 않았다. 정적이 내 몸속에 자리를 잡은 듯 귀가 먹먹했다. 티끌 하나 움직이는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 애도 마찬가지인지 소리없이 나를 지나쳐 제 방으로 가 문을 걸어잠갔다. 나도 그 애처럼 안방으로 가 문을 걸어잠그고 종일 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 안에서 감정이 고이다 못해 한 방울도 없이 썩어 말라붙을 때까지.

그 애의 방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돌아선 게 새벽 한 시였다.


16

우리는 그에 관해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경찰에서 온 전달사항을 서로 나누는 게 다였다. 마치 하루에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는지 제한된 사람처럼 최소한의 단어와 표현으로 그 일을 마무리 짓고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남편의 말대로. 가해자가 개인이 아닌 광범위한 범죄 집단인데다가 영상이 유출된 이후로 그 애는 회사에도 나가지 못했다. 무단 결근만 사흘째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연락을 다 피했다. 전원을 아예 꺼둔 상태인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다 한 명, 나 말고 다른 한 명의 연락은 받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아냈다. 예상보다 일찍 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욕실에서 통화하는 그 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알았어....... 형 마음이야 알지. 형 말대로 할게. 응.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나는 그 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속으로 복기하며 천천히 되짚었다. 욕실에서 나오는 그 애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안방으로 몸을 피했다. 그 애가 욕실에서 나와 부엌을 들렀다 방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 한 명이 누굴지 짐작이 갔다. 아마 독립해 나가 같이 산다던 룸메이트라는 그 친구일 것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배호? 이현배? 헷갈렸지만 그 남자임이 분명했다. 내게는 그에 관해 일절 말을 않는 그 애가 이현배인지 이배현인지 모를 남자에게는 뭘 그리 자세히 털어놓는 것일까. 어째서 그 남자에겐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내겐 그런 말 한 마디 없었으면서.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폰을 꽂지 않았는데도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렇게 깜짝 놀라?

목소리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껏 신이 나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침묵으로 벌레 잡듯 찍어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형체가 없었고, 내 의지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내가 말했잖아......, 네 아들은 사실 그런 인간이라고.

나는 두 손으로 입을 숨이 막히도록 압박하듯 막았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목소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목소리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졸도하기 직전, 나는 입에서 두 손을 떼고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이어 기침과 함께 헛구역질이 일었다. 목소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내 귀에 달려들었다.

-어때, 진실을 알게 된 소감이?

“제발 좀 닥쳐.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난 미친 게 아냐.”

-귀신이지. 염병할 호모 레즈 귀신. 짜잔! 그 정도면 만족할만한 답변이 되었으려나?

나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마구 잡아당기다 이내 책상 위의 가위로 조각조각 잘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기계는 붉고 파란 케이블 선이 튀어나온 채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나 목소리는 태연자약하게 새된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끊임없이 나불거렸다. 나는 스스로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그러면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계속 그러다보면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어느 순간 가위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이 절실한 구원의 끈이라도 되는 양 움켜잡았다. 가위 날 끝이 안방 창으로 기어드는 햇빛에 윤슬처럼 반짝였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관자놀이로 가져갔다. 모든 것을 끝낼 마지막 기회였다.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찰나.

호석이 내게 달려들어 가위를 빼앗은 것 또한 찰나였다. 나는 멍청히 그 애를 바라보았다. 그 애의 손바닥에 남은 날에 긁힌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들은 내게 그만하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애는 내 몸을 붙잡고 울었다. 통곡에 가까운 흐느낌이었다. 나는 진정이 된 후 천천히 그 애를 몸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물었다.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봐. 엄마한텐 그대로 다 말해도 괜찮아.”

그 애는 소매로 눈을 훔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배현인가 하는 걔가 네 친구지? 거기까진 알겠어. 근데 네 애인이기도 하니? 남자친구 말이야. 나는 네 엄마야. 솔직히 말해도 돼.”

“엄마. 아니야. 정말 아니야. 그건 그냥 피싱이었고 난 피해자로 당한 거야.”

“엄마한텐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아. 엄마잖아. 응? 말해봐. 제발 말해줘....... 영상 보니까 형, 형 하고 부르면서 그런, 그런......, 짓을 하던데. 너 남자 좋아하니? 남자 사랑해? 그래서 여자친구 얘기, 결혼 얘기 나올 때마다 회피하고 그렇게 다 티 나는 거짓말로 둘러댄 거야? 어디 문제 있니? 그래, 진짜 그런 거라면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병원에 가보는 게 낫겠지? 내가 알아볼게. 엄마가 다 해결할게. 내가 경찰에 신고하고 일도 처리 중이잖아. ‘네 문제’도 그렇게 해결할 수 있어. 이해해. 그럴 수 있어.”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입안에서 불어나는 말들을 횡설수설 지껄였다. 그 애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어두운 낯빛의 호석이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손을 뻗어 그 애의 얼굴을 어루만진다고 생각했는데 끝에 닿은 건 차가운 금속이었다. 그 애의 피가 묻은 가위였다. 나는 그것을 손아귀에 넣었다.

“엄마.”

그 애가 말을 꺼냈다. 가위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 그래. 말해봐. 너 진짜....... 그런 거니?”

“엄마. 나 여자한테 관심없어. 같은 남자한테 끌려. 남자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 맞아. 엄마가 짐작한 게 다 맞아. 그러니까.......”

그 애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무언가가 눈앞의 허공을 날카롭고 크게 휙 그었다. 비명이 터져나왔다. 호석의 목소리였다. 나는 가위 손잡이를 쥔 채 그 애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귀신들린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자각 없이 무심히 힘차게 손을 휘둘렀다. 허공이 그 애의 신음과 비명으로 물들었다. 손에 쥐가 나다 못해 마비가 와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을 감았다. 나는 여전히 떨어지는 중이었다. 끝이 없었고, 어디에도 닿지 못할 터였다.

다시 무겁게 눈꺼풀을 들어올렸을 때, 사방에 튄 핏방울과 흥건히 고인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에 머리를 누인 채 쓰러져 있는 그 애가 눈에 띄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호석아, 호석아, 그 애의 이름을 부르며 떨리는 손끝으로 건드렸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호석이 죽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들의 두 눈동자는 허공의 어딘가를 응시한 채 초점 없이 멎어있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거울 속 내가 건너다보였다. 영락없는 사탄의 모습이었다. 악마였다. 살인자였다.

불행의 씨앗이 될 겁니다. 난데없이 예의 동네 교회 목사의 말이 떠올랐다. 나 때문이야. 나는 중얼거렸다. 그걸 알면서도 낳은 죄. 덩달아 나 자신을 악마로 몰고 간 거였다. 피식 웃음이 샜다. 어이가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원래 이런 게 아닌데. 이렇게 되어선 안 됐는데....... 나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채로 발악하듯 소리죽여 온몸의 신경을 바싹 죄었다. 누군가 나타나 꿈이라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하다못해 목소리의 거짓말이라도 바랐건만 정적만이 저 깊은 심연에서 솟았다.

작가의 이전글반려 레즈 투쟁기 1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