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로컬 농수산물 센터 앞을 지났지만 옥수수 파는 할머니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4년간 찾아오지 못했더랬다. 4년이란 세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옥수수 할머니는 자리를 옮겼을 수도, 어쩌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었다. 나는 달지도 않고 맛있게 잘 익은 옥수수였는데. 나는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이 동네엔 잠시 들른 것뿐이었다. 4년의 징역살이를 하고 온 후 나는 이사했다. 원래 살던 동네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경기도 외곽의 소도시였다. 많은 일이 있었다. 입으로 다 주워담을 수 없을 만큼. 몸에서 가장 주름이 많다는 입술에 주름이 몇 줄 더 생길 정도로 많은 단어와 표현이 필요했다. 광역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밀려오는 졸음에 꾸벅꾸벅 고개가 정처없이 흔들렸다. 버스 기사는 자꾸만 경적을 울려대며 욕설을 지껄이는 바람에 선잠에 들었지만.
버스에서 내려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전에 살던 곳 만큼은 아니었지만 가파른 길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매번 힘든 거지. 나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과할지도 몰랐지만 오늘따라 더욱더 힘이 들었다. 수년 전 철심과 인공관절을 박은 골반이 뻐근했다. 남의 손주 밥 먹이려다 그랬지. 별 짓을 다했어. 정작 내게 남은 건 하나도 없는데. 그에 생각이 이르자 때가 된 양 슬픔이 한차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외따로이 서있는 다세대주택 빌라 현관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자꾸 틀렸다는 알림음만 울렸다. 나는 이게 맞는데, 하면서 좀 더 느릿하게 번호를 입력했다. 열렸다. 비밀번호는 순애의 생일과 아들 호석의 생일을 합친 여덟자리였다.
문을 열자마자 매콤한 김치찌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가스레인지 앞에 서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주애였다. 주애는 간을 보듯 숟가락으로 냄비의 찌개 국물을 떠 호로록거렸다. 입에 덴 듯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녀 옆으로 가 숟가락을 건네받고는 맛을 보았다.
“이 정도면 잘 끓였네.”
“진짜요?”
내 칭찬에 주애는 뛸듯이 기뻐했다. 얼마 전부터 그녀에게 요리를 가르쳤는데,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귀밑까지 미소가 걸린 그녀를 옆에서 바라보았다. 주애는 4년동안 교도소의 나를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순애의 부재 때문일까. 아니면 죄책감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올 때마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시답잖은 얘기라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그녀는 무진 노력했다. 때론 어색한 침묵이 틈마다 자리잡을 때도 있었으나 점차 익숙해져 나중엔 나도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은 대학 동창 미숙을 포함해 단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남편은 딱 한 번, 찾아왔다. 그는 말없이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귀책사유가 내게 있으니 거부한다면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호석에 대한 얘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나는 아무말 않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것이 자식을 잃은 그에 대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보상이었다. 남편이 찾아온 다음 날, 주애에게 그 얘기를 하자 그녀는 그도 일정 부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왜 도장을 찍어줬냐고 자신이 더 분노했다. 징벌을 내려야 할 대상에게 선물을 준 셈이라고도 했다. 나는 갸우뚱한 고개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글쎄, 그게 선물일지 아닐지는 모르지. 적어도 난 도리를 다했을 뿐이야.”
주애도 더는 그와 관련해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과 함께 살자고 제안한 건 가석방을 며칠 앞둔 토요일 오후였다. 그즈음 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 불안, 그리고 한 줌의 기대로 혼란스러워 했다. 어디서 살아야 하나. 남편은 겨우 셋방을 얻을 만큼의 재산만 남겨주고 아파트를 비롯한 재산을 통째 가져가버렸다. 내겐 정말 남은 것 하나 없었다. 이럴 때 호석이 있다면, 하고 바랐지만 일어날 수 없는 얘기였다. 나는 재판을 떠올렸다. 수 차례의 재판에서 국선변호인은 내가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호석이 죽지 않았고, 의식불명인 점을 들어 감형을 주장할 거라고 했다. 나는 비겁하게 도망치고 싶지 않다고, 내가 저지른 짓이라고 말할 거라고 하자 국선변호인인 나이든 파란 뿔테 안경의 여자는 검지손가락을 흔들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건 비겁하게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진희 씨의 아들이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아드님 역시 엄마가 진짜로 자신을 죽이고 싶어서 그랬다고 믿고 싶진 않을 거예요. 그래서 비참하게 살기를 원하지도 않을 거고. 내 말이 맞잖아요. 그쵸?”
그녀의 목소리가 톡 쏘듯 귓가를 건드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렇게 걱정으로 시름시름 앓을 때, 주애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한 것이었다. 원래 애인과 같이 살았는데 헤어져서 혼자 남게 되었다고. 외롭다고도. 그때만 해도 나는 그녀의 미소가 미덥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 말에 도리어 주애는 왜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자신은 엄마의 유언을 지키려는 것뿐이라고, 결코 나만을 위한 거라고 볼 수 없다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에 가깝다고도.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더이상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생각할 시간은 얼마든지 가져도 좋지만, 다시는 없을 기회라고 친근하게 덧붙였다.
“나가고 싶을 때 얼마든지 나가셔도 돼요. 전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나는 수저를 놓고 밑반찬을 차리는 것을 도왔다. 그녀가 김치찌개를 가져와 놓고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낮에도 전등을 켜야 했다. 그래야 사물을 제대로 식별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은 북향이라 채광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창을 열면 바로 옆 건물 외벽이 나타났기에 하늘조차 제대로 살피기 어려웠다. 처음 집에 왔을 때 나는 집안 곳곳에서 순애의 흔적을 발견했다. 순애가 쓰던 각종 물건들(하다못해 칫솔과 베개까지도)이 눈에 밟혔다.
내가 순애를 사랑했다니. 정말 그랬을까. 기억은 잃어버릴 수 있어도 감정은 잃어버릴 수 없다. 순애가 내게 남긴 것이 있다면 그 사실이었다.
그 사실이 여전히 생경했지만 시나브로 나는 그녀의 자취에 익숙해졌다. 어느 밤엔 순애와 함께 입을 맞추고 천변을 거닐다 커다란 교차로에서 그녀를 잃어버려 슬피 울다 꿈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절감했다. 내 죽어버린 영혼 한쪽이 서서히 순애에 대한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순애를 정말로 사랑한 것 같다는 진실을. 그때부터 나는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썼던 일기를 다듬어 블로그에 연재하고, 이어서 올렸다. 많은 이웃들이 떠나갔지만, 봐주는 이는 기껏해야 하루에 두 세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마저도 댓글이 없었는데도 나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출판사에 다니는 주애는 종일 집안일과 일기 쓰기에 매진하는 나를 보며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책도 많이 읽으시고, 글쓰기도 좋아하시잖아요. 필명으로 써보는 거예요. 작가는 늘 글 뒤에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들킬 염려도 없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소설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만약 소설을 쓴다면 나는 딱 한 편만 쓰고 끝난 작가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소설 쓰기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든 희석하려는 가엾은 몸부림에 불과할 터였다. 그러나 주애는 끈질겼고, 내가 쓴 일기를 내 앞에서 장난스레 소리내어 읽으며 과한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나는 남사스럽다고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녀가 회사를 가고 없을 적에 재빨리 집안일을 해치우고 몰래 소설을 써본 적도 있었다. 물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었다. 나조차 한 번 쓰고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제목도 없었다.
점심을 다 먹은 뒤 그녀는 밀린 업무를 해야 한다고, 카페에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갈 자신이 없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건 더더욱. 주애는 내가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려갔는데, 그곳에서 일종의 PTSD라는 진단을 받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나는 의아했다. 나는 가해자인데, 아들을 죽인 천하의 나쁜 인간인데 내가 그런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니. 의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마치 뉴스로 들어서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단지 약을 처방해주었다. 나는 그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하루라도 빨리 나아지길 바라며. 동시에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질환이 나를 깊게 파고들어, 뿌리를 내려 나를 잠식하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일까. 미쳐버려 고통스런 삶을 살다 어느 날 돌연사해도 나를 동정해줄 이는 없을 것이다. 분명했다. 기껏해야 주애가 울면서 장례를 치러주겠지. 나는 그 씁쓸한 상상에 입가에서 실소가 샜다.
그녀가 현관을 나서자마자 나는 아침에 늦잠을 잔 탓에 밀린 빨래와 화장실 청소를 다시 해나갔다.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주말 낮에 누굴까. 나는 청소용 장갑을 벗은 뒤 현관으로 다가갔다. 안전걸쇠를 걸고 문을 한 뼘 열어 바깥을 내다보았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서있었다. 단정한 차림의 그녀는 나를 보고 다소 놀란 눈치였다.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여자는 내게 주애가 집에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까 밖으로 나갔다고 답했다.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아, 주애 친구입니다. 친구요. 이미령이라고 합니다.”
내가 주저하며 묻자 그녀는 서둘러 대답했다. 친구? 친구라 하기에 그녀와 주애의 나이차는 적지 않았다. 그녀는 주애와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 집까지 찾아왔노라고 설명했다. 나는 주애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꺼진 핸드폰이라는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또 밤새 핸드폰을 하다 잔 탓에 방전 된 것이리라. 나는 주애가 아마도 역 근처 투썸플레이스에 갔을 거라고, 밀린 회사 일 한다고 갔으니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미령이라는 여자는 발길을 돌렸다. 나는 문을 닫았다. 도어록이 잠겼다. 홍미령. 나는 그녀의 이름을 소리내어 되뇌었다. 이름이 예뻤다. 그러나 주애의 친구라니. 어쩌면 헤어진 애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화장실로 가 마저 세면대를 문질러 닦았다.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을 돌았다.
19
호석이 살아있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애가 내 앞에 있었다. 다가가려 했으나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애가 내게 다가섰다. 어쩐 일인지 가까워질수록 그 애의 얼굴은 선명해지지 않고 희미하게 멀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것은 말이 되어 채 입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물거품처럼 사그라졌다. 아들이 다가왔다. 그 애가 다가왔다. 호석이 다가왔다. 대장이 마침내 바로 앞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엄마, 행복해?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애가 두 팔을 앞으로 힘껏 뻗어 나를 밀쳤다. 나는 그때서야 뒤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버둥거렸으나 중심을 잃고난 뒤였다. 또다시 떨어졌다.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의 손길이 내게 닿았다. 깜짝 놀라 두려워 피하려 했지만 눈을 뜨고 보니 주애였다. 작은 방에서 자던 주애가 나를 깨우러 온 것이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어둠 속 달빛을 받아 환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이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나를 안아준 채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한동안 그녀의 품에 안겨 울다가 진정이 된 후,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니라고, 아무래도 차를 마시는 게 좋겠다며 부엌으로 가더니 따듯한 유자차를 타왔다.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다섯 시 반이었다. 잠은 다 잤다고 여기며 협탁의 조명을 밝힌 채 차를 마셨다. 호석은 가끔 그렇게 꿈에 나타났다. 그렇게라도 나타난 그 애를 볼 수만 있다면 영원히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히 바랄 것이었다. 문득 밀려든 바람이 서늘했다.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는 오래된 빌라 건물이어서 외풍이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