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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Jul 05. 2024

열 하나.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강상태

이번 주는 소소한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산책을 나갈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장마가 시작되었다. 원래 주말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걷는 편이었는데, 빗속을 걸어 다닐 만큼 산책에 진심이지는 않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퇴근 후에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1년의 절반이 지나가면서 피로가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걸어 다니는 8~10km의 거리도 조금은 피로했었나 보다. 습관은 들이기 나름이지만, 그 습관이 깨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비가 내리니 이제 막 틀이 잡혀갔던 산책 습관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 화요일 모두 비가 내렸다. 화요일 저녁부터는 비가 그쳐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쉬었던 탓인지 그냥 집에 있게 되었다.


비가 그친 후의 엄청난 습도와 높은 기온은 사람을 딱 지치게 만든다. 수요일 오후 직장에 조퇴를 쓰고 일찍 나온 날, 소소한 일거리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 온도가 30도에 육박했으나 베란다 문을 양쪽으로 열어놓으니 그래도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바람은 다행히 뜨겁지 않고 약간 서늘했다. 오후 시간이라 악기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찰현악기라 소리가 좀 큰 편이고, 그래서 평일 늦은 오후나 휴일 이른 오전 시간대는 피해서 연습하는 편이다. 오늘은 조퇴를 했으니 적절한 오후 시간이고 마침 TV 프로그램도 볼만하지 않아서 악기를 꺼냈다. 연습곡은 생각보다 쉬운 편이지만, 왼손의 악력과 새끼손가락의 위치, 누르는 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에 꽤 섬세하게 연습해야 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현을 마찰하는 활은 힘을 풀어야 하는데 그리 쉽지가 않다. 몇 년 전부터 문화센터에서 배우기 시작한 이 악기는 해금이다. 긁히는 소리만 나던 시기는 이미 지나, 가벼운 동요나 연습곡은 어느 정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 그렇지만 국악기는 생각보다 배울수록 어렵기는 하지만 재미있다. 연습한다고 꽤 앉아 있었더니 왼쪽 다리가 저리고 현이 닿는 부분의 왼손가락에 살짝 잡힌 굳은살 부분이 조금 쓰린 느낌이 든다. 이제 좀 움직여봐야 할 것 같다.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여 오늘은 약간 흐린 하늘 아래, 저녁 햇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습도는 높지만 저녁 공기는 아주 조금 서늘했고 살짝 불어오는 바람도 좋았다. 산책로 길섶에 아마도 어느 교회 분들이 시청과 협력하여 가꾼 꽃밭에 백일홍이 피어나고 있었다. 장마 시작 전에는 힘도 없어 보이고 꽃도 초라해 보였는데, 비 내린 이후의 백일홍 줄기는 무척이나 탄탄하게 섰으며 꽃이 예쁘게 피어나고 있었다.

백일홍

비가 내린 탓인지 하천도 수량이 조금 늘어난 것 같았다. 갈대는 하천 안에서 무성한 숲을 이룬 채로 엷은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논에서는 이제는 제법 큰 모가 벼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논 옆의 밭에서는 땅콩이며 깨, 고구마와 들깨, 호박이 잘 자라고 있었다. 논 반대편 하천둑에는 배롱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까 길섶에 심어진 백일홍은 한해살이 풀로 그 꽃을 여름 내내 피우기에 그 이름이 붙여졌는데, 배롱나무 역시 여름 내내 꽃을 피우기에 목백일홍이라 불린다고 한다.

배롱나무(목백일홍)

늘 다니던 길이지만 며칠 만에 나오니 온갖 식물들이 잘 자라나 있었다. 미리 벌초가 끝났었던 하천변에는 다시 갈대가 무성하게 우거지기 시작했다. 길을 돌아서서 수변 공원 산책길에 들어섰는데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 동네 주민들인 것 같은데 반려견을 산책시키러 나오셨다. 산책길 중앙에 반려견 유모차를 세우고 얘기 중이신데 반려견들의 줄이 묶여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분은 산책길에 아예 자리 잡고 앉아서 얘기 중이신지라... 저 길을 뚫고 지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산책로를 벗어나 위쪽 아파트 단지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섰다. 그 길을 돌아서 다시 산책로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이번엔 개 목줄을 한 손에 들고 아예 반려견을 풀어놓으신 아저씨를 발견했다. 저분도 피해 가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고 빠른 걸음으로 그 위치를 지나쳤다.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긴 곳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 다시 산책로에 들어섰다. 개 공포증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개에 목줄만 채워도 내가 이렇게 돌아서 가는 일은 없을 텐데, 왜 그분들은 자신의 반려견의 자유가 우선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분명히 공원 입구에는 개 목줄을 맬 것과 배설물 봉투를 지참하라고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 대해 이제는 한숨밖에 나지 않는다. 물론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불평을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내가 다니는 산책로는 말 그대로 산책로라서 자전거나 킥보드, 오토바이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자전거 타는 이들이 종종 이 길에 자전거로 들어선다. 아무래도 도로보다는 차량이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 다니는 길인 데다가 포장도 적당히 되어 있으니 자전거 타기에는 최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반려견 산책의 규칙과 마찬가지로 이 길도 버젓이 '자전거 통행금지' 표지가 있는데도 그것조차 읽지 않고 자유롭게 자전거 타기를 보여주시는 분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편리한 교통수단에 좋은 운동도구일 수는 있지만, 산책하는 이들을 위해 조성된 길을 방해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스마트폰 앱에서 4 km 지점을 지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지점쯤에 도착했다. 날씨가 지나치게 덥지 않다면 조금 더 걸어서 저수지까지 다녀올 텐데, 오늘은 너무 습하고 또 덥기도 하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데 아까 보았던 반려견 산책 주민들이 다 올라가고 없었다. 그래서 되돌아가는 길은 오히려 편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나와서인지 아직 좀 환한 편이다. 그래도 구름 덕분에 해는 직접적으로 받지 않아서 걷기에는 딱 좋았다. 일기예보 상으로 내일은 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또 어떨지는 모르겠다. 내일의 산책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일단 오늘의 나는 일정을 아주 성공적으로 끝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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