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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그믐달을 벗 삼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문월도(問月圖, 17세기)-이정

by 낮은 속삭임
문월도(問月圖, 17세기)-이정, 간송미술관 소장

17세기 조선 왕족 화가 탄은(灘隱) 이정(李霆)의 <문월도(問月圖, 17세기)>. 이 작품은 '고사망월도(高士望月圖)'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하늘의 달을 가리키며 은둔 거사는 소탈한 웃음을 짓고 있다. 달의 모양을 보니 기울어가는 그믐달, 아마도 깊은 밤인가 보다. 밤새도록 거사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그의 푸른 도포와 검은 끝동이 간결하면서도 활기차다. 그가 걸터앉은 바위는 마치 편안한 의자인 듯 맨발의 거사를 자연스레 받쳐주는 듯하다. 아무도 없는 밤, 거사는 달을 벗 삼아 무엇인가를 물으며 풍류를 즐기고 있었을 터, 그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달이 어떻게 답을 하였는지는 각자의 상상 속에 있을 듯. 그림은 전체적으로 간결한 몇 번의 필치로 소박하게 그려졌으나, 탄은의 멋스러운 필치가 그대로 살아있고, 무엇보다 거사의 앉은 모양새, 얼굴 표정, 그리고 손끝과 달이 자연스레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편안함을 주고 거사의 웃음을 따라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을 주는 그림. 이 순간에는 묵직하면서도 여유로운 거문고 소리가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작품의 오른쪽과 왼쪽에 쓰인 제문은 18세기 후반의 수장가 석농(石農) 김광국이 쓴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탄은의 매화와 대나무, 난 그림은 있는 곳마다 있으나, 산수 인물에 이르러서는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제 그가 그린 망월도(望月圖)를 얻었는데, 대개 대를 치는 필법으로 간략하게 해내서 지극히 거칠고 성긴 운치가 있다. 예전에 예찬(倪瓚, 1301-1374, 별호가 荊蠻民)은 대나무 그림에 스스로 글을 지어 말하기를, ‘내 가슴속 일기(逸氣)를 그렸을 뿐이다’고 했다. 탄은의 뜻도 그 또한 이와 비슷한가."


조선 중기 왕족 화가 탄은(灘隱) 이정(李霆)은 세종대왕의 현손(玄孫, 5 세손으로 그의 증조부 임영대군이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이다)으로 시서화에 뛰어났으며, 조선 묵죽화의 대가이다. 그의 일생은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증조부인 임영대군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찬탈인 계유정난에 협조하였고 그리하여 왕족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 시대에 묵죽 화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임진왜란 당시에 오른팔을 다쳤으나 이를 회복하여 더 뛰어난 품격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중에 제작된 그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소실되었지만 이후 동시대의 서예가, 문장가들과 함께 제작한 <이정 필 삼청첩(李霆 筆 三淸帖)>이 다행히 전해지며, 보물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왕족에게 주어졌던 작호 석양정에서 석양군으로 승격된 그는 조선시대 묵죽화의 모범을 보인 화가로 묵죽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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