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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닭들의 시선과 달리 병아리들은 천진난만하고

자웅장추(雌雄將雛, 18세기 경)-변상벽

by 낮은 속삭임
자웅장추(雌雄將雛, 18세기 경)-변상벽, 간송 미술관 소장

18세기 후반 조선 화원 화가 화재(和齋) 변상벽의 <자웅장추(雌雄將雛, 18세기 경)>. 봄풀이 돋아난 마당 같은 곳에 검은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두 마리가 나와 있다. 수탉은 날카로운 눈으로 병아리를 보며 깃을 부풀리고 꼬리를 치켜세웠다. 가장이라 과시하는 것인가. 그러한 수탉을 작은 병아리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병아리에게 수탉이 아비라는 마음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병아리는 어미닭이 땅을 쪼아가며 먹이 찾는 모습을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어미닭의 꽁무니를 따라 늦게 쫓아오는 병아리 한 마리까지 예쁘장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검은 수탉 뒤로 흐릿해 보이지만 흰 암탉이 한 마리 보인다. 갈색 털의 선명한 어미닭과는 달리 흰 암탉은 아직 좀 더 어린 듯하다. 수탉의 뒤에서 머리를 한쪽으로 돌려서 땅을 쪼는 척 하지만 실상은 수탉에게 눈길을 보내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함께 등장한 닭일 뿐일까. 화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암탉의 존재는 그림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아무런 상관없이 세 마리의 닭들과 병아리들의 봄 산책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 그림에 대해, 오른쪽에는 당대의 문인 화가이자 서화 비평가 표암(豹菴) 강세황이 붙인 제사가 쓰여져 있다.

靑雄黃雌(청웅황자)
將七八雛(장칠팔추)
精工神妙(정공신묘)
古人所不及(고인소불급)
"푸른 수탉과 누런 암탉이 7~8마리 병아리를 거느렸다. 정묘한 솜씨 신묘하니 옛사람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그리고 그림의 위쪽에는 후배 화가 마군후의 재미있는 글이 적혀있다. 닭의 덕을 얘기하지만 결국 삼계탕을 떠올리는 농담 섞인 글이다.

白毛烏骨獨超群(백모오골독초군)
氣質雖殊五德存(기질수수오덕존)
聞道醫家修妙藥(문도의가수묘약)
擬同蔘朮策奇勳(의동삼출책기훈)
"흰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오덕이 남아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다려야겠는데,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 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

그림 속에 표현된 닭들은 조선 고유종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수탉의 짙은 검은색에 두 가닥의 긴 꼬리, 맨드라미를 닮은 머리의 벼슬, 세 마리 닭들의 귀밑에 난 흰 벼슬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화훼영모화(花卉翎毛畫)들이 그렇듯이, 닭을 그린 그림은 입신출세, 부귀공명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수탉과 암탉이 함께 그려진 것은 부부금슬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병아리들까지 그려져 있으니 가족 간의 화목한 정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날의 산책을 나온 닭들의 정경이 평화로움을 가득 전해주는 이 그림, 언제 봐도 느낌이 좋다.

조선 후기 화가 화재(和齋) 변상벽은 조선 후기 화원 화가로, 인물 초상과 영모화에 능했는데, 특히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렸기에 그의 별호는 '변고양(卞古羊, 또는 卞怪羊)', '변닭[卞鷄]'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축, 특히 고양이나 닭 그림에 출중하게 된 것은 그가 이런 말을 남긴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재주란 넓으면서도 조잡한 것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에 정밀하여 이름을 이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오. 나 또한 산수화를 그리는 것을 배웠지만, 지금의 화가를 압도하여 그 위로 올라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물을 골라서 연습을 하였지요. 저 고양이는 가축인지라 매일 사람과 친근하오." 즉, 산수화로는 다른 화가들을 이길 수 없다고 여겨 가축 그림에 전심한 것이 그를 독보적 존재로 만든 것이라고.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하면서 변상벽은 영조 임금의 어진 제작에 두 차례나 참여하였고 그 공으로 제수받은 곡성 현감직을 수행하던 중 사망한 것으로 <곡성읍지>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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