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페네옹의 초상화(1890)-폴 시냑
19세기 프랑스 신인상주의 화가 폴 시냑(Paul Signac)의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화(Portrait of M. Félix Fénéon, 1890)>. 빨려 들어갈 듯한 추상적인 배경 속에 한 인물이 난초를 건네고 있다. 맞은 편의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건네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저 추상적인 수많은 점들이 만들어낸 다채롭고 아름다운, 그러나 생소한 풍경에 대한 경의일 수도 있다. 그의 옷에 나타난 질감, 얼굴과 손의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얼마나 무수한 점을 찍어 그 혼합에서 나오는 색채를 실험했을까.
펠릭스 페네옹은 당시 프랑스의 기자이자 미술비평가였으며 무정부주의자 중 하나로, 쇠라와 시냑의 그림을 보고 새로운 예술 장르의 탄생을 직감한 사람이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에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라는 이름을 붙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빨려 들어갈 듯한 추상적 배경 속에서 난초를 내미는 마술사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인물을 작은 점을 찍어 표현한 이 작품은 그들의 작품에 '신인상주의'라는 마법의 명칭을 붙여준 펠릭스 페네옹에 대한 시냑의 헌사가 아니었을까.
화가 폴 시냑(Paul Signac)은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유년 시절 몽마르트르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미술과 가까워졌다고 한다. 1880년 클로드 모네의 전시를 관람한 이후에 화가가 되고자 한 결심을 하였으며, 이후 카미유 피사로, 조르주 쇠라를 만나면서 그들의 초청으로 1884년 제1회 앙데팡당전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전시를 지속하던 중,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에 조르주 쇠라와 함께 작품을 전시한 것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를 관람한 기자이자 비평가였던 펠릭스 페네옹에 의해 그들의 예술 사조는 '신인상주의'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시냑은 빛과 색채에 대한 탐구를 명확히 드러내며 점묘주의를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1년 조르주 쇠라가 31세로 요절하게 되자 시냑은 쇠라의 뒤를 이어 점묘주의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1889년에는 <외젠 들라크루아로부터 신인상주의까지>라는 미술과 광학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논문을 발표하여 점묘파 화가들의 색채 분해 과정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색채 연구는 야수파의 탄생,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으며, 시냑은 1908년 앙데팡당전의 위원장으로 1934년까지 그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하며, 1935년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 현대 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제목은 예능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