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1954)-변월룡
한국 근현대사를 따라 떠돌았던 고려인, 남한은 몰랐고 북한은 지워버린 화가 변월룡(러시아 이름: 펜 바를렌, Пен Варлен)의 <진달래(1954)>.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방, 낮은 받침대 위에, 동그스름한, 무늬 있는 백자 항아리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달래가 가득 꽂혀있다. 항아리만 채우기에는 한 아름의 꽃이 너무 많았던지 옆의 푸르스름한 화병에도 꽂혀있고 방바닥에는 떨어진 꽃잎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는 벼루와 붓이 보이고 항아리 받침대 앞에는 파이프도 보인다. 열린 문 밖으로 보이는 처마와 툇마루는, 예전에 이 그림을 앱에서 소개했을 때는 우리나라가 아닐 것이라 했지만, 1954년 봄은 그가 북한에 파견되어 있을 때였으므로 조선의 처마와 툇마루로 보는 것이 좋겠다. 처마 너머 보이는 산에도 진달래가 피어난 모양이다. 엷은 분홍빛이 산에도 퍼져있는 듯 보인다. 요즘은 봄에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진달래를 보는 일은 조금 어려운 일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마른나무들만 남아있는 산에 엷은 물감 퍼지듯 피어난 진달래를 보면 마음이 그리 환해지는 것은, 진달래의 수줍은 봄빛이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탓이 아닐까. 아직 진달래 꽃비 오는 봄은 오지 않았지만, 그림 속처럼 따스한 햇살 아래, 피어 흐드러진 진달래 꽃의 화사함을 맞이할 수 있는 아름다운 봄이 멋진 손님처럼 찾아오기를, 그리하여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기를 기원해 본다.
남한은 잊어버리고 북한은 지워버린 고려인 화가 변월룡은 연해주 쉬코토프스키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당시 최고 예술대학으로 손꼽혔던 '레닌그라드 회화·조각·건축학교(독·소 전쟁 이후 일리야 레핀 회화·조각·건축 아카데미로 개편)'에 입학했다. 이후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이 대학의 조교수로, 박사 학위 취득 후 부교수로 재직했다고. 1953년 소련 문하성의 지시로 북한 교육성으로 파견되어 북한 미술교육 체계 개선 및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북한에 전수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3개월 예정의 체류 기간이었으나, 평양예술대학 학장직을 맡으면서 15개월을 체류한 그는 북한 예술인들의 초상화와 북한 근대사 기록화, 풍경화 등의 다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으로의 영구 귀화를 요구받았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였고 따라서 북한 입국이 거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 당시 소련(현 러시아)과 수교를 맺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일련의 정보조차 없는, 그야말로 모르는 화가였다. 1954년부터 레핀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여러 작품을 제작한 그는, 한-러 수교 4개월 전인 1990년 5월에 사망하였다. 한참 늦었지만 2016년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한국근대거장 탄생 100주년: 100년의 신화-변월룡 전>이 열린 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작품은 과천에 있는 국립 현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