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은 자여, 두려워하지 말라

수태고지(受胎告知, 1426)-프라 안젤리코

by 낮은 속삭임
수태고지(受胎告知, 1426)-프라 안젤리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소장

15세기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수태고지(受胎告知, 1426)>. 누가복음 1장에 등장하는 동정녀 마리아의 성스러운 잉태 사실을 대천사 가브리엘이 내려와 마리아에게 고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 하단의 작은 그림들은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 세례 요한을 임신한 엘리사벳이 친척인 성모 마리아를 축복하는 장면, 동방박사의 경배, 성전에서의 아기 예수 봉헌, 마지막 장면은 아마도 성모의 죽음을 그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상단의 주된 그림의 오른쪽에는 짙푸른 망토를 걸치고 분홍빛 옷을 입은 마리아가 공손히 두 손을 가슴 앞에 포개고 천사를 맞이하고 있다. 왼쪽 윗부분의 끝에는 환한 태양빛으로 빛나는 광채 속 흰 손이 그녀를 향해 빛을 내리고, 그 빛을 따라 성모 마리아 앞의 기둥쯤에 성령의 비둘기가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비둘기 위쪽 기둥의 아치 사이에는 인물이 하나 그려져 있다. 빛 속에는 손이 있고 성령 비둘기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인물. 이는 성부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부 하나님 아래에서, 황금빛 날개에 천상의 부드러운 장밋빛 옷을 입은 가브리엘 대천사는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 성모에게 존경을 표하며 성스러운 잉태를 알린다. 아직 처녀인 마리아에게는, 그 잉태가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더라도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깊은 그녀는 세상을 구할 구세주가 자신에게서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 순수한 복종의 모습을 화가는 경건하고 고요하게 그려냈다. 성모 마리아와 가브리엘 대천사는 이탈리아 건축 양식에서 보이는 로지아 안에서 만났다. 아치형의 기둥이 서있는 발코니 형식의 건축양식이나 건물을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가브리엘 천사 뒤, 로지아 밖에도 누군가가 그려져 있다. 무성한 숲이 보이고 그 숲에서 울며 걸어 나오는 남녀 뒤로 천사가 그들을 막아서듯 날고 있다. 두 남녀는 원죄를 저지른 아담과 이브. 선악과를 따먹고 원죄를 저지르며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모습은 인간이 저지른 죄를 표현한 것이다. 이를 사하기 위해 이 성스러운 잉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아름다운 작품은 프라 안젤리코의 성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로 수태고지를 이야기한다. 작품을 실제로 보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 천사의 날개와 후광, 성모의 후광으로 표현되는 아름다운 금빛은 놀랍고 신비하다. 천상의 여왕, 바다의 별을 의미하는 성모의 푸른 망토는 그 신비로운 푸른빛을 어떤 물감으로 표현했을까 싶을 정도로 푸르다. 청금석에서 나오는 푸른 색소인 라피스라줄리를 활용한 울트라마린 색은 너무나 신비하고 오묘하다. 실제 그림 앞에 서면 그 아름답고 오묘한 색채에 깊이 빠지게 되고, 인물들의 고요하고 성스러운 표정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아마도 화가가 그런 마음으로 작품을 정성껏 그린 탓이 아닐까.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세밀화가이자 제단화가인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로 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신이다. 청년기에 삽화가로 도제 수업을 받았으며, 15세기 초반까지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1420년 경 피에솔레의 산 도메니코 수도원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프라 조반니(Fra Giovanni)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프라(Fra)'는 '수도사', '수사'라는 뜻이다.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사가 되었고, 기도의 행위로 그림을 그렸으며 '그리스도의 것을 그리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의 이름 '프라 안젤리코'도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편의 <수태고지>를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에는 인물의 풍부한 표정이 잘 드러나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르네상스 초기에 급격히 발달하고 있었던 영향이 그의 작품에도 표현되었을 것이다. 바티칸 궁전 장식을 위해 로마로 소환되기도 했었던 그는 이후 피에솔레로 돌아와 수도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수태고지'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제작했기에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성당, 수도원, 미술관에서 볼 수가 있다. 복음을 전하는 도미니코회 수도사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신앙의 대상물을 창조했던 재능 있는 미술가였던 프라 안젤리코.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아하고 고상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가져다주는 그의 작품은 잔잔하게 빛나고 있었다. 천사 같은 그의 성향처럼.

*이 작품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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