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 높은 산의 바위인 듯한 곳에 선 남자는 지팡이를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산과 산 사이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안개는 마치 바다처럼 펼쳐진다. 아마도 안개는 바람을 타고 일렁이고 있을 테지만, 그 움직임이 바다의 파도처럼 격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안개는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 일렁이는 물결일 수도 있고, 고요한 그의 삶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로 인해 점점 더 커지는 파문일 수도 있다. 느리지만 천천히 변하는 안개 바다의 움직임, 그 고요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남자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의 뒷모습이 보여주는 느낌은 보는 이의 현실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광활하고도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에 대한 감탄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모호한 선택의 기로에서 어지러운 마음이 펼쳐지는 흔들림일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신비로운 세계로의 입구로도 보일 수 있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에는 인물의 뒷모습이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 뒷모습에 보는 이의 시선이 겹치면서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감정을 그림 속으로 떠올리게 하여 개인적인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제시해 주는 것은 아닐지.
오늘, 당신의 안개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19세기 독일 초기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는 포메라니아 지방의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났다. 그라이프스발트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였으며, 이후 당시 가장 진보적인 미술학교였던 코펜하겐의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그는 플랑드르 화파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였으며, 이것이 이후 그의 낭만주의 풍경화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드레스덴으로 이주하여 다양한 작품 활동에 집중했다. 그러나 낭만주의가 쇠퇴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고 사후에 그의 작품들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한다. 20세기 초 그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나,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이를 독일의 나치 정권이 국수주의적 작품으로 선전하게 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한동안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그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었고, 독일 낭만주의 대표 화가이며 국제적 화가라는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는 자연 자체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자연이 주는 영적인 느낌과 신비로움을 표현하였으며, 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하는데 집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어린 시절 어머니와 두 명의 누이, 동생의 죽음을 맞이했기에 죽음에 대한 성찰에 익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감정은 후기 작품으로 가면서 나타난 우울한 감성의 기반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의 신비로운 풍경화는 비록 세상에 대한 우울한 관조의 전형이 되었으나, 인간에 대한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표현을 담아낸 아름다운 작품으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그는 알브레히트 뒤러 다음으로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독일 함부르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