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Pietà), 고요하고 억제된 슬픔의 표현

십자가의 상(1929)-임용련

by 낮은 속삭임
십자가의 상(1929)-임용련, 개인 소장

우리나라 근현대화가 임용련의 <십자가의 상(1929)>.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다룬 최초의 서양화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그 도상이 일반적인 십자가 고난과는 조금 다르다. 먼저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나무에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예수를 내리는 중이라면 그리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 예수의 못 박힌 손이 보이지 않고 팔이 위로 뻗쳐져 있어, 예수는 아직 매달린 상태이다. 엘 그레코의 그림처럼 길게 늘여진 팔다리이지만 그 균형감이 떨어지지 않고 근육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예수의 얼굴은 고통 속에도 '다 이루었음'을 표현하듯 고요하다. 예수의 다리를 붙들고 우는 여인은, 상복처럼 검은 옷을 입은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썼지만 어깨에는 얇고 투명한 숄을 걸쳤으며 하얀 치마를 입고 있다.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로, 통상적으로 이런 유형의 그림에서는 매우 화려한 옷차림으로 그려진다. 물론 이 작품은 연필로 그려진 것이라 색채를 입히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인들의 옷보다 섬세한 주름이 정성스레 표현되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 아래쪽에 눈을 감고 고요한 슬픔을 보여주는 여인은 성모 마리아이다. 후광이 둘러진 성모의 비탄을 이보다 더 담담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억제된 슬픔이 그녀의 몸짓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팔을 뻗고 꿇어앉은 나체의 남자이다. 도상으로 보자면 그는 사도 요한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표현된 사도 요한은 없다. 그래서 또 다른 해석은 이 인물은 화가 자신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라 한다. 아리마테아의 요셉, 사도 요한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임용련의 이 인물은 여전히 수수께끼 같다. 마리아 막달레나 뒤쪽에 손을 모으고 서 있는 여인은 예수의 이모 마리아 살로메 또는 마리아 야코피로 여겨진다. 통상적으로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리는 그림에는 이 세 여인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왼쪽에 슬퍼하는 여인 셋을 더 추가하여 슬픔을 더 슬프게 표현하고 있다. 구름이 가득한 너머로 보이는 산은, 성경 속의 골고다 언덕과는 다를 테지만, 원경에서 이 슬픔을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이 고요하고 억제된 슬픔을 표현된 작품이 오늘 눈에 들어왔다.

화가 임용련은 1901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했으며,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 쫓겨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난징의 난징진링대학에서 2년 수학했으며, 1921년 임파(任波)라는 이름으로 중국 여권을 받아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그는 시카고 미술학교를 졸업한 이후 예일대학에 편입하였으며, 이 작품을 유화로 제작하여 제출한 작품으로 예일대 수석 졸업생이 된다. 수석 졸업 특전으로 1년간 유럽미술여행 장학금을 받았으며 파리에서 미술 전람회에 출품하는 등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파리 유학 시기에 만난 화가 백남순과 결혼하였고 1930년 귀국하여 여러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1931년부터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영어와 미술을 가르쳤는데, 이때 그의 제자 중 하나가 이중섭이다. 광복 직후 북한의 공산화 추세를 피해 부인 백남순과 함께 남하했는데, 이때 대다수의 작품들을 북한에 두고 와서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몇 점 되지 않는다고 한다. 6.25 전쟁 발발 즈음에 북한군에 연행된 이후 임용련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작품의 수가 적고, '이중섭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에 가려진 임용련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천재 화가였지 않을까.

*이 작품은 개인 소장으로 알려져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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