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1936)- 막스 에른스트
독일 화가이자 조각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삶의 기쁨(1936)>. 멀리서 보면 이 작품은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그림 같은 푸른색 가득한 식물들이 펼쳐져 색감으로 볼 때는 편안하다. 그러나 그림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중앙 아래쪽에는 날카로운 눈을 뜬 채 아래를 응시하는 사마귀의 형상이 보이고, 그 앞쪽에는 실체를 알지 못하는 생명체가 위협하듯 입을 벌리고 있다. 그리고 그 생명체가 펼친 기이하게 긴 팔의 한쪽 끝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고 두 손가락을 펼친 손이 보이고 반대쪽 팔의 끝에는 아래로 향해진 꽃을 움켜잡은 푸른 손이 보인다. 꽃들은 탐스럽지 않고 시든 모습이다. 꽃을 움켜잡은 손을 따라 위로 시선을 돌리면 엷은 색의 작은 여인의 모습이 보이고 그 앞을 지키는 듯한 머리는 말과 개를 닮은 듯한 괴수의 형상이 보인다. 전체적인 색감은 녹색이지만 그림 속이 형상들은 대부분 불안한 느낌을 준다. 화가는 이 그림에 '삶의 기쁨'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자세히 보면 그리 기뻐 보이지 않는 그림을 이렇게 명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1905-1906)>을 풍자한 것이라 한다. 다음 그림이 마티스의 작품이다.
마티스의 다채롭고 따스한 색채와는 달리 에른스트의 짙은 녹색 가득한 그림은 오히려 '삶의 기쁨'보다는 불안이 가득해 보인다. 아마도 마티스의 작품이 제작되었던 20세기 초반의 파리는 소위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불렸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탓에 행복 가득한 느낌이 넘쳐흐르는 분위기가 그림 속에 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른스트가 이 작품을 제작했던 시기는 1936년, 독일은 나치 정권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에른스트는 다다이즘 예술가에서 초현실주의 화가로 제2차 대전 발발 후 프랑스 남부로 갔다가 독일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기도 했고 이후 자국의 나치 정권에 의해 쫓기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삶의 기쁨'을 마티스처럼 아름답게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안하고 어쩌면 괴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그의 정서에는 더 적합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러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그림이 탄생했는지도.
독일 화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는 독일 쾰른 근처 브륄 출신으로 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피카소와 데 키리코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당시 독일 표현주의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의 지도로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1920년 장 아르프, 요하네스 테오도르 바르겔트와 함께 '쾰른 다다이즘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전시회가 폐쇄된다. 1922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면서 앙드레 브르통을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 대표적 화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 콜라주로 불안정한 이미지를 표현하였으며, 나무나 돌, 잎사귀 표면에 종이를 대고 비비는 프로타주 기법으로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여러 겹의 물감을 칠하고 그 위를 긁어내어 표현하는 그로타주기법, 한쪽면에 물감을 바르고 접어서 전사하는 데칼코마니 기법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영국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했고 에른스트의 작품 이미지는 검색되지 않아서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을 편집하여 등록한다. 마티스의 작품은 네이버 검색으로 내려받았다.
*글의 제목은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할 때 남긴 유명한 말을 차용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