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쓸쓸함을 담은 채 광대들은 춤추고 노래하네

어릿광대와 피에로(1924)-앙드레 드랭

by 낮은 속삭임
어릿광대와 피에로(1924)-앙드레 드랭,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소장

20세기 프랑스 화가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의 <어릿광대와 피에로(Arlequin et Pierrot, 1924)>. 커다란 화면 속 두 인물이 악기를 연주하며 한쪽 다리로 서 있다. 오른쪽 흰옷을 입은 피에로는 기타를 받치기 위해 한쪽 다리를 무릎 위에 꼬아 얹었고, 왼쪽의 어릿광대는 만돌린처럼 보이는 악기를 늘어뜨린 채 연주하고 있다. 무표정한 그들의 얼굴은 어딘가 서글프고 또 담담하다. 사람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는 그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그들이 입은 옷과 과장된 몸짓들에 숨겨져 있는 그들 본래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의 뒤에 펼쳐진 풍경은, 어쩌면 그들의 마음속을 보여주는 듯, 황량하고 공허하다. 그 황량함 속에서 화면 왼쪽 아래에서는 푸른 식물이 고개를 내밀었다. 두 사람 쪽으로 뻗은 덩굴이 마치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 듯, 아니면 그들의 연주 아닌 연주에 맞춰 춤추는 듯. 맞은편 하단에는 바이올린과 물병이 낯선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전반적으로 강렬한 색채의 그림이지만, 화가는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을 화폭에 가득 담은 듯하다. 그림 속 인물들은 화가의 후원자인 폴 기욤의 주문에 의해 그려졌으며, 피에로는 폴 기욤의 얼굴, 어릿광대는 살바도르 달리의 얼굴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시대 그들의 표정에 저런 공허함이 있었을까. 어쩌면 그 시대가 가져다준 외로움이었을까.

프랑스 화가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은 파리 외곽 샤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원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외젠 카리에르(Eugène Carrière)에게 미술수업을 받고 미술을 배우면서 공학을 포기했다.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의 작품들을 모사하고 고향 풍경을 그리면서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다가 아카데미 쥘리앙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리스 드 블라멩크와 화실을 공유하면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풍경화를 그렸고, 병역을 마친 이후에는 앙리 마티스의 작품에 이끌렸다고 한다. 1905년 마티스, 블라멩크, 알베르 마르케와 더불어 살롱전에 참여했고, 그들 작품의 대담성과 거친 느낌에 충격을 받은 비평가들이 그들을 '야수들의 그림'같다고 평하면서 그들에게 '야수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조각에도 관심을 기울인 그는 야수파와 입체파를 조합한 독창적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11년 이후부터 색의 사용을 점차 줄이고 형태를 간소화시키기 시작했던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이 한창이던 그 시대에 로마를 방문하고 이를 계기로 고대 예술을 연상시키는 고전주의적 화풍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후 발레단과 오페라 무대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며 작품활동을 지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앙드레 드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독일의 초청에 응했다는 이유로 나치의 조력자라는 오명을 받으며 말년에 은둔자로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이전 25화'아탈란테여, 결혼하지 말라. 결혼하면 멸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