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말수가 없는 남편이라면 더더욱 대화가 없어서 그를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는 없다. 어느덧 남편과 26년째 함께하고 있다. 결혼기념일에 함께 기뻐하거나 선물을 주는 기회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남편은 한 방이 있었다. 매년 결혼 기념임에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지 않았다. 너도 선물을 안 해주니 나도 선물을 주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조용한 서로의 약속인듯하다.
그렇게 지내오다 남편이 결혼 10년 차에 서프라이즈 여행을 준비했다. 아이들과 제주도 여행을 위해 롯데호텔 예약과 사무실로 큰 꽃바구니를 보내었다. 뜻밖의 선물에 그 한방이 너무 커서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제주도 비행기를 탔다. 축하 케이크와 맛집에서 서프라이즈 축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 방이었다. 평소 말수가 없는 남편의 한방은 알 수가 없다. 글로벌 교육생 때 선택해야 할 운동을 골프로 선택하면서 남편은 그렇게 골프를 배우는 것을 반대했다. 그랬던 그가 나에게 또 한 방을 선물했다.
머리를 올리는 의식을 치르는 골프 첫 라운딩을 머나먼 태국 5일 여행으로 5일 동안 180홀을 뜨겁게 맛보게 해 주었다. 남편은 설마 내가 하루 36홀을 갈 것이라는 생각이 1도 없었지만, 초보인 내가 7번 아이언만 배우고 먼 타국에서 즐기는 골프 라운딩은 마냥 즐겁고 또 즐겁고 또 즐거웠다. 그때는 골프 라운딩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남편은 그렇게 반대하던 골프를 시작하는 나에게 캐디백과 골프채, 하프백 등을 필요한 모든 것들을 통째로 선물하였고, 첫 라운딩도 태국에서 5일 동안 함께해 주었다. 지금도 그때 기쁨을 생각하니 내 머릿속 추억으로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역시 남편은 고수다. 한 방을 어찌나 크게 쏘아주는지 평소 때 못했던 아쉬움은 사라지고 서프라이즈 같은 선물 기쁨으로 만끽하게 해 준다.
오늘 남편이 장유 아웃렛에 가자고 했다. 이때까지 생일이라고 제대로 챙겨준 적 없고 서로의 기념일 한 번 기대한 적이 없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쉬움이 있지 않다. 구두 수선을 맡겨서 찾으러 가야 하는 이유를 나중에 듣게 되어서 화가 났지만, 비 오는 날 장유까지 혼자 가서 남편을 만나야 하는 이 상황이 화가 났지만, 표현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불편함 마음은 가득했지만, 그냥 가고 싶었다. 근래 시아버님, 시어머님께서 집에 오셔서 남편 숙원사업 일박을 함께 하셨고, 시댁 세입자 문제도 해결했지만 그것 때문에 선물을 할 남편은 아니다. 남편과 아웃렛 구경을 하면서 슬쩍 "여보, 나한테 선물 하나 해주면 안 돼?"라고 말을 던졌다. 꼭 무엇을 받고 싶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함께 나온 김에 슬쩍 던져보고 싶었다. 남편이 " 골프 옷 하나 사줄게. 구경 가서 한 번 봐"라고 했다. 이런 횡재를 받다니 내 가슴이 뛰었다. 내 취향과 맞는 말본과 왁 브랜드를 방문했다. 결국 내 선택은 '말본' 잠바 2개와 티셔츠로 마무리하면서 남편은 100만 원 넘게 돈을 지불했다. 한 방에 휘청거렸을 남편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역시 이번에도 한 방을 쓰고 내 머릿속 추억을 남겼다.
거의 10년마다 오는 서프라이즈 선물인 것 같다. 1년에 10만 원씩 선물 주지 않고 10년마다 100만 원을 주는 한 방 선물을 생각하면 역시 남는 장사이다. 남편은 현명한 선택을 한다. 적게 받아서 기억 못 하는 선물이 아니라 10년 모아 한 방 큰 선물을 준다. 물론 이번 서프라이즈 선물 의미와 이유는 없다. 생일 선물 10년도 아니고, 결혼기념일 10년 동안 미룬 선물도 아니다. 그 남자가 나에게 해 준 말은 아무것도 없다. 무슨 의미인지, 왜 사주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은 남편이 준 '한방 선물'이다. 그렇게 보면 10년 모아 100만 원 선물을 해주는 한 방 선물이 가성비는 최고인 것 같다. 기대감 없어서 그랬는지 기쁨은 몇 배인 것 같다. 금융 치료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 속에 사는 인간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10년을 두고 한 방에 한다고 해도 선물 받은 오늘이 행복하다. 그냥 행복 충만한 하루에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도 남편 '한 방'이 내 머릿속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