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weekly biz 기고, 2010년 8월 14일
베스트바이(Best Buy)는 현재 북미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가전제품 양판점이다. 미국·캐나다는 물론, 중국·터키까지 115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연 5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작은 오디오 판매점에서 출발했던 베스트바이를 지금의 모습으로 키운 사람은 전 CEO (2002~09년)인 브래드 앤더슨이다. 그가 취한 전략은 고객을 집단으로 묶는 대신 각 개인의 개성을 고려해 철저히 개별화하는 접근이었다.
그리고 마케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 개별화 전략을 이후 회사 직원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한다. 직원 역시 각자의 특성을 고려해 대우해 줄 때 갖고 있는 특유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세분화된 HR(Human Resources·인사 관리) 체계가 바로 2004년 도입된 '결과 중심 근무환경(ROWE·Results-Only Work Environment)'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일의 과정 대신 성과로 업무 수행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근무 장소와 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었다.
직원은 내부 고객… 근무 장소·시간 자율화… 복지내용도 스스로 선택
스페인의 대표적 은행 중 하나인 바네스토(Banesto)는 직원을 내부 고객으로 인식하고 관리해 나가는 색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은행에는 'I-CRM(Internal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라는 직원 관리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직원들을 직무 특성과 업무 성과(저성과자 vs. 고성과자), 미래 핵심인재 가능성, 채용 구분(신입 vs. 경력직 입사)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세분화한다. 그리고 개별화된 집단마다의 성과 차이를 분석, 조직 구석구석까지 성과 관리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관리한다.
이처럼 조직 내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사 관리 기법을 '세그먼트(segment) HR'이라고 한다. 마케팅의 고객 세분화(segmentation) 전략이 고객을 위한 것이라면, 세그먼트 HR은 종업원을 위한 것이다.
세그먼트 HR의 필요성은 업무 형태의 변화라는 큰 트렌드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과거 공장의 생산라인에는 업무가 표준화됐고, 인력은 쉽게 대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일의 양보다는 차별화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경쟁하는 시대이며,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세그먼트 HR을 통해 세분화된 조직 운영을 하다 보면 당연히 획일적인 방식보다 더 많은 수고와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최근의 정보통신 기술 발전은 인재 관리 세분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들을 실행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혁신을 이끄는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효율성, 평등, 공정성 등의 명분 아래 단일 인사 시스템 내에서 인적자원을 관리하고 있다. 직원 모두에게 똑같은 지식을 교육하고,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보상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동기부여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이제 국내 기업의 종업원들도 저마다 천차만별의 능력과 업무 방식·선호도, 동기부여 방식 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상 근무가 활성화되고, 여성 인력이 늘어나며,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종업원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외부 환경의 변화이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니즈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그룹을 세분화하는데 앞서, 조직 내부에서 먼저 다양성의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세그먼트 HR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HR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 즉 인사·복지·관리·교육·급여의 방향에서 각각 세그먼트 HR에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인사의 경우 마케팅의 고객 세분화 전략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즉 그룹별로 특성이나 요구에 맞는 인사제도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업인 맥머리에서는 '탈레오'라는 시스템을 활용, 직원 개인의 과거 경험·관심 분야·성격·전공 등 개별 특성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정보를 맞춤화해 제공하고 있다. 가령 특정 직원이 인사 분야 업무에 관심이 있을 경우 메일을 통해 인사 분야의 업무 특성, 현재 채용 포지션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생일이 되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 취향에 맞는 선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둘째, 세그먼트 HR 방식의 복지는 원하는 메뉴를 골라서 세트를 구성할 수 있는 맥도날드 방식과 유사하다. 즉 종업원들에게 다양한 복리 후생 메뉴들을 제공해 직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글의 경우 일정한 예산을 개인별로 부여하고, 그 안에서 개인별로 미용실·헬스클럽·수영장 등 자신에게 적합한 복지 지원 항목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인도 출신 직원들을 위해 별도의 구내식당 식단을 제공하는 것도 한 예이다.
셋째, 관리 측면에서의 세그먼트 HR은 포괄적인 룰(rule)을 제시하는 것으로 대표된다. 회사는 포괄적이고 기본적인 회사의 가치관만 제시·관리하고, 나머지 영역에 대해서는 직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직원들이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넷째, 교육에 있어서의 세그먼트 HR은 직원들이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는 환경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기술 덕분에 직원들은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다 잘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최근 기업에서 점차 늘어나고 있는 비정형 학습 방식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또는 지식과 지식을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조직 내 혁신과 학습이 더욱 활성화되도록 하는 데 있다. 액센츄어의 경우 전 세계 18만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스킬과 경험을 데이터베이스화해 활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급여에 있어서의 세그먼트 HR은 '세분화된 보상체계'라 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 중에는 단일화된 급여 관리 체계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융·통신·에너지 분야 일부 기업은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고, 때로는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보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늘어난 인건비 절감을 위해 오히려 숙련되고 우수한 인력들을 어쩔 수 없이 주기적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게 되기도 한다. 세분화된 보상체계는 개인의 역량과 직무 특성,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고려한 유연한 보상으로 특징지어진다.
기업 핵심가치 정한 뒤 공정한 룰 만들어야… 사외 인재도 적극 활용
■세그먼트 HR의 성공 조건
그렇다면 한국 기업에서 세그먼트 HR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특별히 어떤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까? 다음의 네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다양성을 흡수할 포괄적 룰을 통해 기업 핵심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경영 환경이 복잡해지고 예측이 불가능할수록, 또한 인사 제도가 더욱 세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전 직원이 유지해야 할 핵심가치의 정립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화 및 세분화가 진전되면 기업이 지향해야 하는 비전과 방향성 공유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존슨앤존슨, P&G 등 해외 기업뿐만 아니라 LG와 같은 국내 대기업들도 핵심가치 이행도를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인사 담당자들을 핵심가치 전파자로 임명하여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뜻 세분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가치나 정책 기준을 폭넓게 제시해 오히려 직원들의 자율성을 넓혀주는 모델이라 볼 수 있다.
둘째, 사내·외를 가리지 않고 가장 적합한 인재를 활용해야 한다.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의 시대이다. 내부 인력 중심의 운영을 넘어 다양한 외부 집단과의 협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세그먼트 HR은 외부 집단까지 포괄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 회사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특정 업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인력과 집단들을 세분화해 관리·조합하는 것이 미래 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셋째, 공정한 룰을 만들고 투명하게 실행해야 한다.
개인을 세분화해 관리하게 되면 각자 적용받는 혜택의 양상이 다양해진다. 이런 환경에서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직원들 사이에 인사체계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세그먼트 HR을 위해서는 내부 시스템의 공정성 확보가 필수다. 또한 모든 이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오픈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원칙은 반드시 직원들에게 문서화돼 공유되어야 한다.
넷째, 네트워킹 기술을 토대로 개인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
직원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최근 다양한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 시스템이 인적자원 관리에 응용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카데미 모바일(Academy Mobile)'이라는 시스템으로 협업에 기초한 교육 환경을 구축했다. 기존의 회사 내부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장시간 강의를 듣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시스템은 10~20분 단위의 짧은 교육 프로그램이 비디오·게임·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포맷으로 제공되고 있다. 교육 자료 작성에는 희망하는 임직원이 직접 참여한다. 우수 자료를 만든 직원에게는 기프트숍에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하는 등 보상 체계도 마련돼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런 다양한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 지속적 혁신과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