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이코노미 2010년 2월 3일 기고
클린턴 시대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히는 “단일국가 제품이나 기술, 단일국가 기업, 그리고 단일국가 산업은 존재하지 않을 전망이다. 단일국가 경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했던 개념과는 다르다. 국경 안에 계속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은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예측한 바 있다.
액센츄어는 전 세계 6000여개 기업을 4년여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 500개를 추려냈다. 이들 기업을 ‘글로벌 고성과 기업(High performance company)’으로 규정했다. 고성과 기업이란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이나 리더십(경영진) 교체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경쟁기업보다 높은 성과를 보이는 기업을 말한다.
고성과 기업이 되기 위한 공통적인 요소는 시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 차별화 능력, 그리고 인재개발을 중시하는 기업 마인드를 꼽을 수 있다.
인재유치보다 인재유지가 중요
그중에서도 글로벌 인재의 확보와 유지는 글로벌화의 성공 요소로 더욱 중시되는 추세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의 유럽·아시아지역 법인을 인수한 노무라증권은 구조조정으로 인력시장에 쏟아져 나온 뉴욕 월가의 우수 인력을 공격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글로벌 투자은행으로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조만간 미국법인 인력을 40% 정도 늘릴 계획이다.
이제 글로벌 인재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먼저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글로벌 상품(Commodity)이 됐다. 선진국가가 인구고령화와 숙련기술 부족으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신흥 경제권의 인재 풀(Pool)은 빠르게 늘었고, 신흥 경제권에 귀중한 기술과 능력을 공급하고 있다.
글로벌 무대를 향해 뛰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점점 늘고 있지만 글로벌 인재를 확보,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 체계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들은 무엇일까.
① 다양성을 존중하라
글로벌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모국 기반이 아닌 광범위하고 다양한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직원의 다양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급관리자에게는 여러 국가에서의 근무를 장려하고, 20여개국에 있는 대졸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폭넓은 채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GE도 다양성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기회를 창출하는 무한한 원천이라 믿고, 인재관리에 있어 다양성을 매우 중시 여긴다.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는 특정 국가·인종의 독점물이 아니라, 각기 다른 문화·상황에서의 독특함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근간으로 하는 글로벌 인재 마인드는 비단 기업에만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글로벌 인재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싱가포르는 빈약한 천연자원, 적은 인구,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출산율 등을 극복하기 위해 범세계적으로 다양한 인재를 수용한다. 다문화 사회 구성을 촉진한다는 목표 아래, 이민정책을 장려하고 있다.
또한 타국에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우수한 교육환경 제공 및 기업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국가적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같이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인재의 확보 및 육성을 위해 범세계적으로 국적, 인종과 상관없이 인재를 채용하고 성과와 역량에 기초해 공정하게 대우하는 마인드를 갖춰 글로벌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② 차별적 가치를 제시하라
글로벌 인재 확보를 위해 기업들은 잠재적인 지원자들에게 ‘차별적 가치(Value)’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인재들은 단기적으로는 주로 금전적인 보상에 관심을 갖지만, 근속기간이 늘어나면 회사 안에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미래 사업 비전은 어떠한지 등을 더 중시 여긴다.
글로벌 인재들은 회사를 선택할 때, 다양한 국가를 넘나들며 일하고 싶어 하며 궁극적으로 글로벌 관리자로 성장하고자 한다. 일과 가정의 균형, 바람직한 조직 문화와 조직의 성장 전략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한다.
회사가 비전을 갖고 성장하지 못하거나 ‘좋은 일터-Great workplace’로서 바람직한 문화 등을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많은 돈을 들여 인재를 양성한 뒤, 경쟁기업에 공급하는 단기 인력 훈련소로 전락하기 쉽다. 이는 회사가 단순히 금전적 보상이 아닌 보다 넓은 시각에서 차별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우수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③ 글로벌 인재의 속성 육성 프로그램을 확보하라
글로벌 기업인 존슨앤존슨은 글로벌 핵심 인재관리 프로그램인 IRDP (International Recruitment & Development Program)를 운영하고 있다. IRDP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사업성공을 목표로 글로벌 차원의 인력 확보와 신속한 육성을 함께 고려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존슨앤존슨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미국 내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니저 직급의 업무 수행에 ‘준비된(Ready Now)’ 인재나 ‘잠재력이 큰’ 인력들을 채용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국가에서의 근무를 전제로 채용되지만 동시에 글로벌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해당 국가 언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 활용 능력이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IRDP에 선정된 인력은 12개월의 육성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업무에 투입한다. 12개월 동안 △회사의 가치 △구조 △핵심 프로세스 △리더십 등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해당 국가로 돌아가 차별화된 경력관리를 받는다.
이들은 회사의 핵심적인 유지 인력 대상이며 이에 상응하는 보상과 함께, 국가 간 이동을 통한 경력관리, 회사의 주요한 혁신 과제 등을 수행하며 회사의 핵심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존슨앤존슨뿐 아니라 보잉, GE, BASF 등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별도의 글로벌 인재 트랙을 통해 글로벌 차원에서 인재를 보다 빠르게 육성할 수 있는 ‘가속 프로그램(Acceleration Program)’을 두고 있으며, 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사업 단위를 책임지는 리더의 육성에 15년이 걸린다면 이를 11~12년 정도로 단축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도 글로벌 인재를 선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장기적인 육성체계를 확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교육 프로그램은 그 목적과 교육과정이 정교하지 못해, 실제 업무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연례행사로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기업들에도 글로벌 인재 확보 및 유지를 위한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 도입이 시급하다.
이는 실제 글로벌 차원의 사업 성과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축, 활용돼야 한다.
④ 글로벌 수준에서 HR 시스템을 통합하라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들은 범세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국외 현지 인력들이 한국인 주재원의 경영 방식에 불만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우리 회사를 한국 회사로 인식해서 한국적인 업무 방식을 강요한다. 주재원들은 현지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글로벌 방식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한국 기업의 방식을 적용하려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와 같은 불만이다. 이와 같은 이슈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외 사업에서도 글로벌 수준의 업무 환경을 구축하는 게 꼭 필요하다. 이 중 인사시스템의 글로벌 통합은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인사시스템 통합은 ‘높은 성과를 내는 우수 관행의 글로벌 차원의 공유’ ‘범세계적인 업무환경 통합을 통한 협업 극대화’ ‘동일한 제도 및 시스템 환경을 통해 범세계적인 인력 이동 및 활용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문화적인 공유의 상당 부분이 구성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특히 ‘기업문화 공유’의 수단으로서도 글로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최종연 파트너는 현재 액센츄어코리아에서 경영컨설팅 인재 및 조직관리 부문을 총괄하며, 주로 국내외 대기업의 조직관리, 인재관리, 글로벌 HR, 구성원 역량 개발 분야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경영학 박사로 인재 및 조직관리 분야에서 16년의 컨설팅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최종연 액센츄어코리아 인재 및 조직관리 부문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