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남겨진 온기
모든 게 꽤나 단순했던 옛날과 달리, 요즈음 카페에 들어서면 빽빽이 늘어선 새로운 메뉴들에 멍하니 압도될 때가 많다.
화려하게 구부러진 글씨체로 끝도 없이 적힌 메뉴판의 텍스트들.
달달한 슈크림라떼, 자두 요거트, 다즐링과 얼그레이티, 고소한 흑임자라떼까지...
눈앞에 쏟아지는 메뉴명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늘 종업원의 시선을 의식하며 익숙한 메뉴를 주문하고는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아무리 추운 날에도 차갑게 톡 감기는 목 넘김과 아메리카노 특유의 씁쓸하고 고소한 맛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새로운 카페를 가도 나는 늘 차가운 커피를 주문하고는 했다.
그런 나에게도, 문득 전혀 다른 음료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대학 시절, 밤늦게 과제를 하느라 하루에 커피를 못해도 1리터씩 마시며 밤을 새우던 어느 날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버티던 그 시기에 유행처럼 번지던 감기에 제대로 걸려버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끙끙 앓아누워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새벽이라 모두 잠든 듯했지만, 어머니만큼은 어찌 아셨는지 어느새 내 곁에서 이마를 조심스레 짚어보시는 게 느껴졌다.
“어디 아프니?”
따뜻한 어머니의 음성과 보드라운 손길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어머니는 이내 따뜻한 물에 적신 손수건을 가져와 밤새 내 얼굴과 팔, 다리를 닦아주셨다. 마치 새끼고양이가 된 듯한 포근한 기분과 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기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침대 머리맡에 컵을 내려놓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감기에 좋대서 생강차를 끓였어. 너 이런 거 안 좋아하는 거 알지만, 꿀도 넣었으니 꼭 먹어봐. 꿀 들어간 생강차는 무척 달단다.”
평소 생강을 좋아하지 않는 내 눈치를 살피며, 어머니는 컵 손잡이를 내 쪽으로 고쳐 두고 조용히 방을 나가셨다.
“따뜻하다...”
감기 탓에 흐릿해진 후각으로 컵을 입가에 가져가자, 훅 하고 진하고 쌉쌀한 생강 향이 먼저 목구멍에 닿았다.
딱 맞게 따끈한 온도, 달달한 꿀을 듬뿍 넣어 본연의 매운맛이 잘 가려진 어머니의 생강차.
어머니는 모르셨겠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감기에 걸릴 때마다 생강차를 떠올리게 되었다.
한 모금을 들이켤 때마다 느껴지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 늘 설거지와 빨래로 물 마를 날 없던 손은 여기저기 굳은살이 배겨 있었고, 잦은 습진으로 이미 여러 번 터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항상 어머니의 손길은 푹신한 솜이불보다도 더 부드럽게 느껴졌던 걸까.
쓴 생강차에 아낌없이 담긴 꿀처럼, 어머니의 온기는 늘 포근하고 달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 어딘가가 괜히 젖어들고, 밤새 내 곁을 지켜주던 어머니의 손길이 아직도 이마 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미각을 잠시 스치는 다른 음료들과는 달리, 생강차는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은 채 기억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까.
목구멍이 따끔거리거나, 평소보다 몸에 열이 조금 오르는 날이면 나는 자연스럽게 생강차를 찾게 된다.
마치 그날 새벽, 아무 말 없이 머릿결을 쓸어주던 어머니의 온기에 잠시 기대기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