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대신 먹는 건강보양식 한 그릇
새로운 해가 밝았다.
나도 이제 꽤 많은 새해를 겪어와서 그런지, 예전과는 한 해의 시작을 맞이하는 감흥이 많이 다르다. 담담하게 맞이하게 된달까.
새해 첫날에 처음으로 듣는 노래처럼 그 해가 지나간다
위와 같은 속설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 해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고민하고, 그에 맞게 재미있는 선곡을 한다.
주로 본인의 행복과 사업의 번창을 위한 노래를 지인들과 같이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새해 첫 끼는 어떨까?
나는 사실 노래보다는 밥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 첫 끼만큼은 아무래도 신경 써서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 자신을 알뜰살뜰 보살펴주고, 잘 달래서 한 해도 힘차게 시작하자고 말해주고 싶은 기분.
지글지글- 계란 지단을 부쳐서 떡국을 끓일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왠지 떡국은 조금 뻔한 느낌이라 망설여졌다. 여태까지 해마다 수많은 떡국 그릇을 비워왔지만, 딱히 달라진 것 없는 삶 때문일지도 몰랐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근교로 닭백숙을 먹으러 갈까?”
나의 고민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어머니께서 먼저 말을 꺼내주셨다.
식당은 막 일출을 보고 온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추위에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가족끼리 삼삼오오 모여 들뜨는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서로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도로록 도로록- 돌아가는 식당 앞마당의 물레방아 소리, 그 밑으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며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들.
바로 옆 산에서는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일제히 흔들리며 마치 파도소리 비슷한 음파를 만들어내었다.
“평화롭다...”
자연의 품 속으로 풍덩 빠져들어온 기분이었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커다란 압력솥이 김을 내뿜으며 등장했다. 직원은 능숙한 솜씨로 백숙을 해체해서 식탁 위에 내주었다.
찹쌀, 인삼, 대추 등 다양한 잡곡이 눈에 띄었다. 흑임자로 인해 검은빛을 띠는 백숙에서는 담백하고 고소한 향기가 났다.
쫄깃쫄깃한 가슴살을 조금 찢어 입에 넣으니, 온갖 몸에 좋은 재료들을 넣고 푹 고았다는 가게의 안내문 말마따나, 향긋한 한약향이 입안을 맴돌았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정성껏 끓인 음식. 왜 백숙을 건강보양식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압력솥 안에는 죽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독오독 씹히는 통통한 수수알이 입에 착 감기면서 유독 쫄깃한 식감을 자랑했다.
첫날의 아침식사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또다시 새로운 해가 찾아왔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벅참이 느껴졌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한 한 해의 시작.
올해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몰라도, 떡국 대신 닭백숙으로 시작한 한 해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싱거운 생각을 하며 창 밖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