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붕어빵
이렇게 추운 날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찬바람이 스며든 붕어빵 봉지를 품속에서 꺼내어 식탁에 놓아두곤 하십니다.
저는 조금 이른 저녁잠을 자다가도, 기름이 묻은 고소한 밀가루 반죽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오면 부스스 일어나 식탁에 앉곤 합니다.
밤늦게 간식 먹지 말라며 꾸중하던 어머니도 어느새 부엌에서 접시와 음료를 슬그머니 챙겨 오십니다. 아버지는 웃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식탁 머리맡에 서 계시다 어머니와 제가 붕어빵을 집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하나 집어 드십니다.
"팥이 좋더라"
하며 항상 꼬리 부분부터 드시는 아버지입니다. 어머니는 부드럽고 달큰한 맛의 슈크림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저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팥을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 아버지는 붕어빵 아홉 개를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뒤에 줄 서 있던 여학생이 붕어빵 사기를 포기하고 가버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조금만 주문했을 텐데, 너무 빨리 걸어가서 미처 불러 세우지 못했어”
라며 못내 마음을 쓰셨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는 항상 붕어빵을 여섯 개만 사 오십니다. 양껏 먹을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종이돈을 꼭 움켜쥔 채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가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이튿날 저녁에도 아버지는 달콤한 빵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셨습니다. 분명 이 근방에서 포장마차를 본 기억이 없는데, 매번 기름이 반질반질 묻어 투명해진 붕어빵 봉지를 들고 오시는 아버지를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아버지가 구두를 채 다 벗기도 전에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붕어빵을 매번 사 오는 거냐며 옷자락을 붙잡고 여쭤본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그건 비밀이지”
하며 품속에서 의기양양하게 붕어빵 봉지를 꺼내 보이실 뿐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여섯 개의 붕어빵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는 이 붕어빵을 사서 집에 오는 순간을 가장 기다리시지 않을까.
바쁜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저마다 자유시간을 보내느라 가족끼리 대화는커녕 눈 맞춤도 어려운 요즈음이니까요.
아버지는 붕어빵을 핑계 삼아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는 오붓한 순간을 기다리시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붕어빵 가게의 위치를 알아낸다면, 아버지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는 격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골똘히 생각하며 붕어빵 하나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는 저를 보며 아버지는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라며 짐짓 장난스러운 말투로 꾸중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붕어빵 봉지를 뒤적여 가장 크고 토실토실한 붕어빵을 골라 제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두 번째 붕어빵은 조금 더 천천히 팥 알갱이를 음미하며 달게 먹었습니다.
붕어빵을 처음 먹었을 때의 기억은 희미합니다. 아마 아주 어릴 적부터 먹어와서겠지요. 사진첩을 펼쳐보면, 키가 아버지의 무릎까지 오던 어린 시절의 저는 손에 먹을 것을 하나씩 꼭 쥐고 있습니다. 그중엔 붕어빵을 든 사진도 있는데 그때도 역시나 팥 붕어빵을 좋아했는지 조그만 입가에 팥앙금을 군데군데 묻힌 모습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버지는 제게 기분 좋은 단맛을 선물해 주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매일 붕어빵을 사 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가 일이 늦게 끝나거나 포장마차가 일찍 닫기라도 한 날에는 씁쓸한 미소를 띤 채, “오늘은 붕어빵 없다“하며 들어오십니다. 아버지가 붕어빵과 같이 퇴근하는 날엔 밀가루 반죽과 달콤한 설탕 냄새에 묻혀 몰랐습니다.
붕어빵 없는 아버지의 품속에서는 조금 쓸쓸하고 고독한 바람 냄새가 난다는 것을요.
언젠가, 이른 아침 전날 먹다 남은 붕어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출근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식탁 한구석에 앉아 차가운 붕어빵을 드시고는 가족들이 깰세라 조용히 신발을 신는 아버지를 보고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었지요.
그 후로, 저는 퇴근하실 때마다 늘 현관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재빨리 거실로 뛰어나가고는 합니다. 그날따라 지쳐 보이는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지요. 아버지는 저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행복해하시는 듯했습니다.
이내 쑥스러워진 저는 헛기침하며
“오늘은 붕어빵 대신 저녁 먼저 드세요”
라며 아버지를 의자에 앉혀드렸습니다. 그날만큼은 우리 가족 모두 둘러앉아 따뜻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차갑게 식었지만 여전히 달콤한 붕어빵도 오순도순 나누어 먹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이 글을 참 좋아하십니다. 본인이 주인공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요즈음은 붕어빵을 잘 사 오시지 않지만, 대신 어머니와 종종 손 잡고 동네를 걸어 다니며 두 분이서 맛있게 드시고 오는 것 같아요. 조금 질투는 나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흐뭇하고 보기 좋은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