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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차 배달부

새콤 달달한 매실차

by 녕인

따스한 온기가 지표면을 감싸는 초여름,

이맘때쯤이 꼭 재미있는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여름이 찾아오면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시는데요.

가족들을 아무도 깨우지 않고서요, 새벽빛이 내려앉은 부엌에서 살금살금 바쁘게 비밀 작업을 하십니다.


전날 미리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건조하고 차가운 얼음 조각들을 꺼내어, 젓가락 하나만 들고서 쿡쿡 부수어 작게 조각조각 나눕니다.


잘게 부서진 얼음 조각들을 커다란 텀블러에 하나씩 담고, 찬장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할머니표 매실청을 꺼내면 아버지의 아침일과는 끝입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러니까 아버지 무릎만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여름만 되면 시원한 매실차를 보냉주머니에 담아 온종일 들고 다니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옆에서 종종걸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걷던 저에게도 시원한 매실차를 내밀며 조금씩 목을 축여주셨지요.


어림잡아 1리터는 족히 될 법한 커다란 물병을 보며 무겁지 않냐며 핀잔을 주는 어머니께도 매실차 한 잔,

지나가다 경비실 아저씨에게도 고생하신다며 한 잔.


직장에 도착해서도 부지런히 누군가와 나눠마시는지, 퇴근할 즈음에는 깨끗이 비워 가벼워진 보냉주머니와 함께 통-통-소리 내며 계단으로 올라오셨지요.


아버지가 주시는 매실차는 참 특별한 맛이 납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얼음과 매실 원액을 섞어 만드신 매실차는 만들기도 참 쉽지만, 무엇보다 건강에도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시는 아버지의 웃음과도 잘 어울려 참 상큼 달달한 맛이 납니다.


친구분들과 등산을 갈 때도, 가족여행을 갈 때도, 하물며 어디 근처 산책하러 나가실 때도 아버지께서는 한사코 매실차를 고집하시며 부지런히 허리춤에 두고 마시곤 하시지요.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남다른 매실차 사랑을 볼 때마다 호호 웃으시며,

'이럴 때마다 너희 아빠는 참 어린애 같아.' 말씀하시곤 합니다.

씩씩하게 앞장서서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뒤로, 푸른색 보냉주머니가 통-통- 소리를 내며 따라갑니다.

달이 참 밝아서 그런지, 보온병을 끼릭거리며 닫으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유달리 매실차처럼 달아 보입니다.


어릴 적, 무엇을 먹든 자주 체하던 저를 위해 아버지께서 종종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가셔서 매실차를 타오시곤 하셨어요.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지요. 신기하게 아버지의 매실차를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고 잠이 솔솔 잘 왔답니다. 요즘은 무엇이든 잘 소화하는 저이지만, 종종 아버지만의 손 맛이 담긴 매실차가 먹고 싶어 질 때면 공연히 꾀병을 부리며 아버지의 근처를 맴돌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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