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잘 모르는 런던의 기후, 그리고 물 이야기
"런던? 그 매일 비 오는 도시에서 우울해서 살 수 있겠어?"
내가 처음 런던행을 결정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다.
흔히들 영국 런던하면, 비가 많이 와서 습하고, 햇빛도 보기 힘들며, 기온도 추울 것이라고 많이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나도 사실 실제로 가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걱정도 많이 했다. 가뜩이나 홀로 타지생활을 하는 학생 입장에서, 날씨까지 매일 우중충하고 흐리다면 향수병과 우울증의 콜라보로 시름시름 앓다가 일찌감치 한국으로 돌아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름 비옷과 튼튼한 소형우산, 두꺼운 옷을 여러 벌 챙겨서 떠났다.
그러나 웬걸, 도착해 보니 한국보다 맑고 따뜻한 날씨가 나를 반겨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우리나라 기준 겨울인 12월이 런던에서는 가벼운 코트와 목도리를 돌돌 매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기온이었다. 거리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두꺼운 롱패딩을 껴입고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조깅을 하는 사람들은 죄다 반팔에 반바지, 아니면 얇은 쫄쫄이 차림인 게 아닌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한겨울에 반팔티를 입고 운동하는 상남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대부분 얇고 짧은 것이, 마치 "이 정도의 열정도 없다면 조거(jogger)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물론 비는 자주 온다.
서안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도시답게, 대서양 근처라는 점과 편서풍 때문에 비가 자주 내리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차고 굵은 빗방울이 아닌, 민들레 홀씨처럼 솔솔 날리는 가랑비랄까? 가끔 보름 넘게 비가 지속적으로 내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정말이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니라 해가 뜨지 않는 나라라고 불러야 될 것만 같다.
툭하면 쫌쫌따리 비가 와서 그런지, 런던 사람들은 귀찮아서 우산 없이 아예 비를 맞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만약 길에서 우산을 쓰는 사람이 있다? 유심히 보길 바란다. 99% 확률로 관광객이다.
하지만, 이러한 런던도 여름이 되면 전혀 다른 기후가 펼쳐진다. 마치 한국의 봄을 연상케 하는 맑은 날씨가 흔해지고 낮 자체도 꽤 길어져서 종종 공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얇은 나시와 선글라스를 걸치고 돗자리도 없이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런더너들을 볼 수 있다.
영국 내에서 런던은 그나마 일조량이 높은 편에 속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위쪽 스코틀랜드나 맨체스터만 놓고 비교해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실제로 본인이 스코틀랜드에 놀러 갔을 때, 5일 내내 해가 뜨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날씨가 이어져서 사진을 단 한 장도 못 건졌던 슬픈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흔히 하는 오해들과 달리 런던은 여름에 따뜻하고 겨울에 춥지 않은, 전체적으로 고만고만하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진다. 비를 싫어하지 않는 인간이 살기에 딱 좋은 도시랄까. 한여름인 7월의 평균기온이 18.7℃라고 하니, 서늘한 기온을 좋아하는 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강수량이 연평균 고른 것과 대비되게, 실제로 쓸 수 있는 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석회질 토양과 석회수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런던에 가뭄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국보다 수도 요금이 비싼 이유이다.
역사를 곰곰이 뜯어보면 더 재미있는데, 영국에서 차(tea) 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바로 이 석회수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냥 끓여 먹기는 심심하고, 향기로운 차 티백을 띄워 마시다 보니 수많은 유명 차 브랜드들이 생겨났고 또 발전했다는 것이다.
석회수는 엄연히 알칼리토금속 수산화물 용액인 만큼 알칼리성을 띠어 단백질을 녹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접촉한 피부나 두발을 조금씩 녹인다. 그래서 사실상 영국인들을 따라 한답시고 비를 무작정 맞다 보면 조기 탈모가 되기 십상이다.
석회수는 세탁용수로도 좋지 못하다. 물에 녹은 수산화칼슘이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탄산칼슘이 되어 내부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런던 주거지 근처에 런더리샵이 많이 보이는 이유도, 드럼 세탁기의 구조가 석회수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최적화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세워서 회전하는 세탁기는 침전물이 가라앉으며 회전축을 점점 마모시키는데, 드럼 세탁기는 누워서 회전하는 방식이다 보니 가라앉은 침전물이 회전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나라이든지, 멀리서 책이나 미디어로만 접한 곳을 막상 실제로 가보면 전혀 다른 경우가 정말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100%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나라고 문화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오는 시대이지만, 내가 꾸준히 글로 기록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앞서 간 누군가 경험했던 어떤 상황이,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기억으로 또다시 집필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