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도 생선이냐

by 조건

갈수록 포악해지는 태양은 포도를 녹여 진흙길로 만들고, 들녘의 황소 불알을 한자쯤이나 키워놓고는, 긴 혀를 내밀고 이제 자리를 물려줄 준비를 하는 듯하다. 빨간 고추잠자리는 비행연습을 하고, 달궈진 바람 뒤에는 서늘함이 숨어있다. 섬돌 밑에는 성급한 귀뚜라미가 날개를 스트레칭 하고 있다.

오늘 세 번째로 컴퓨터를 켜본다. 첫날은 제목을 잡는데 골몰하다보니 아무것도 못했다. 다음날은 첫 문장을 지우고 쓰기를 수없이 하다 덮고 말았다. 모임에서 원고 마감 한다고 전화가 왔는데 마음은 급한데 머릿속은 하얗다. 나 자신이 참으로 후안무치한 화상이 아닐 수 없다. 문단을 모욕해도 유분수지 이런 개망나니 같은 인간이 한 짓을 돌아보자.


코로나가 들불처럼 번지던 2019년 즈음 어디에서 심심한데 글이나 써볼까? 수필이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토대로 느낌과 생각과 가지고 있는 나의 서정을 예쁘게 꾸민 글이라 한다기에 일기도, 회고록도 자서전도 아닌 소속도 장르도 없는 괴상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엉겁결에 응시한 글이 문학지 신인상에 당선이 되어 문단의 말석이라도 차지하게 되었다. 옛 말에 곰보도 둠벙에 물괴는 맛으로 살고, 째보는 입술사이로 바람 새는 맛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무식한 이 화상 이제 글쟁이랍시고 문학박사인 친구에게 구걸하여 우보(牛步)라는 호도 하나 떡하니 달고 다니니 제법 흉내는 낸 것 같다. 어쨌거나 신인상에 당선을 시켜주신 심사위원님께는 대단히 송구하오나 내 작품을 선정 해주신 거는 단체로 전날 회식을 하여 숙취가 있으셨든지, 아니면 실수가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언제 등단했느냐고 물으면 붉어진 얼굴로 아직 못했습니다. 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면 금세 나를 바라보는 눈이 측은해진다. 속으로 이러겠지. “이제 양계장에서 막나온 햇병아리구만. 고생길이 쉽지 않을게야..”


이제 등단하여 어깨를 떠억 펴고 “네 등단한지 3년 됐습니다.”라고 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책은 몇 권이나 내셨나?” “네 아직 준비 중에 있습니다.‘“그래? 급할 것 없지. 서서히 준비해서 내면 되지.”하면서도 먼 산을 바라보시며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은 본인의 걱정 때문인지 아님 내가 한심 하고 애처로워서 인지 그 깊은 뜻을 어찌 알까 마는 나도 내가 걱정된다.


“선생님은 몇 권이나 내셨는지요?” “나? 그냥 뭐 댓권 냈어. 다음 달에 한권 더 내려고 준비 중이야” “우와! 대단하십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첫발을 떼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 다음부터 수월 해져. 해산 하는 거와 비슷하지. 첫애는 무척이나 고생하고 많은 어려움이 많지만 둘째부터는 힘만 주면 나오게 되지. 아 왜 옛날에 어머니들은 밥 하다가 부뚜막 에서도 낳고 일하다가 논두렁 에서도 낳기도 했지 않아. 허허 화장실에서 일보다가도 하나 건지고 술집 작부하고 실실 거리다가도 하나, 상가 집 문상 가서도 건지기도 하지. 처처에 부처가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 속에 수필이 숨어있어.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는 혜안이 필요하지.“


그렇다면 사물을 그대로 보지 말고 파헤치고 분석하며 보이지 않는 이면을 상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한 것 인데 아득한 먼 나라의 이야기일진데 피나는 노력이 요구된다. 가령 예쁜 꽂을 보고 아름다움을 볼게 아니고 예쁨을 피워내기까지의 고난을 읽어야 하고 벌과의 아픈 사랑을 무지갯빛 색깔로 그려내는 화자의 기발함을 얘기 하는 것 같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시다. 여기까지 오기 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렸을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모자란 것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채우면 되지만 생각이 모자란 것은 빌릴 수도 없고 타인의 지식으로 대신할 수도 없다. 몽둥이 밖에는 약이 없을 것 같다. 등단했다는 것이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라도 한 듯이 수필 모임이란 모임은 무작정 가입하다 보니 지출이 심각한 지경이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가는 곳마다 대단하신 문우님들이 계신다. 년 수 또한 많은 시간들을 활동하시고, 상들도 많이 수상하시고 책 또한 발간도 놀라울 만큼 하시어 부럽기가 그지없다.


문단의 중진이신 어느 분의 얘기를 빌리자면 하루에 두 세권씩 책이 집으로 온다고 하신다. 대충 보신 후에 앞장의 본인의 이름을 제거 하고 집 앞에 내어 놓으면 가져다가 고물상에 내다 파는 할머니가 계신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얘기다. 문단의 말석을 차지한 이 불한당에게도 한 달이면 다수의 책이 오고 있다.


어느 다큐 에서 본 얘기가 있다. 거북이는 한 번에 수백 개의 알을 낳지만 생존율은 10%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거북이는 알을 낳고 무심코 먼 바다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 자식을 위해 길을 떠난다. 살고 죽는 것은 자식들의 몫이니 어미의 의무는 낳기 까지가 전부이다. 어차피 생존율은 적지만 살아남은 그들에게 후대를 맡기는 것이다.


책은 내가 낳은 자식이다. 내 자식이 고물상에 있을지,헌 책방에 있을지, 대형 서점에 있을지 모른다. 누구나 꿈은 내 자식들이 값을 받고 절찬리에 팔려 나가기를 바란다. 누가 피와 땀으로 점철된 나의 분신이 비 내리는 고물상에 처박히기를 바라겠는가. 불현 듯 어느 때는 욕심을 내볼까? 하는 마음도 생기지만 언감생심 아서라 하고 마음을 추스른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죽음을 전제하는 책이라는 사생아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가진 것만 해도 기특할 뿐이다. 비록 책 한권 못낸 바보로 살지언정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두세 명 이라도 나의 글을 읽고 책꽂이에 두고서 가끔은 기억해주는 그런 경지에 간다면 그때 나는 부지런을 내볼까한다.

글감이 어쩌다 생각이 나면 글을 써야 하는데 글씨를 쓰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좋은 작가님들의 명구들을 적어 놓은 메모장이나 뒤적여서 베끼는 초동이 되었으니 말이다. 옛적에 문단의 선구자적인 분들의 야사를 들으면 만취하여 벌거벗고, 소등에 앉아 풍류를 즐기는 기행을 하셨다고 한다. 어설픈 이 화상 그 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하다가 하수구에 처박혀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누가 나에게 멸치도 생선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목청 높여 답하리라.

“국수는 멸치로 우려낸 국물이 최고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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