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봄은 다시 어김없는 꽃 잔치를 위해 떨켜를 열고 준비를 한다.
겨울의 칼바람을 피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많은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이제 따뜻한 봄의 덕스러움으로 새잎과 꽃을 피우려 한다. 다만 계절도 나이 많아 겨울이 떠나지 않은 자리를 밀쳐내고 꽃망울을 맺기도 하고, 개나리, 진달래 꽃잎에 폭설을 쏟아 부어, 마치 늙은이가 배변을 못 참아, 옷을 버려 놓고 며느리 눈치를 보듯 어색한 물안개로 수줍음을 감추려한다. 이제 봄이란 계절이 나에게 준 멋진 술안주를 회억 하며, 천상의 맛으로 지워지지 않는 몽환적인 그 미감을 곱씹어 보려 한다.
전-군간 벚꽃 백 리 길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익히 알려진 전북의 자랑이다. 이 길의 벚꽃은 재일교포가 기증하여 아름다운 꽃길을 만들었기에 어느 것보다 소중하게 관리 하였다. 나무마다 번호를 매겨 담당자를 지정하고 나무가 병들거나 죽으면 인사고가에 반영하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다. 4월이면 축제가 열리는데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니 그 규모가 불문가지(不問可知) 이다.
우리는 백구 면에 사는 친구가 있어 동네 부녀회에서 축제 때 막걸리도 담고, 음식을 만들고, 장사를 하여, 마을 공동기금으로 비축하는 행사에 초대되는 행운을 얻었다. 네 명의 친구들은 점심시간에 맞추어 행사장에 도착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손님들로 손님행세를 할 겨를도 없이 우리 모두는 써빙을 하며 정신없이 장사를 도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서야 우리는 손님 대접을 받았다. 부녀회장인 친구 와이프는 많은 음식을 준비했다. 밀려드는 손님을 피해 우리는 길옆 논바닥에 전을 벌리고 앉아 광란의 주연을 시작했다. 바닥에는 볏짚을 깔고 큰 그릇에 토종닭이며 해물파전, 홍어회, 등을 돗자리 위에 놓으니 우리는 바로 어릴 적 시골의 모내기 하던 시절, 새참을 먹던 코 흘리게 시절로 회귀하여 술도 마시기 전에 낭만의 늪 속에 빠져 버렸다. 아랫목에서 따뜻한 장작불로 숙성시킨 동동주는 고래(古來)로 술꾼들이 주로 쓰는 전문용어가 환장하게 하는 술 맛이라고 한단다. 누가 마오타이가 명주이며 100년 된 와인을 부러워하겠는가? 만개한 벚꽃의 탐스러움은 신부의 드레스만큼 출렁이고, 심연에서 폭발하는 눈부심은 우리를 혼미케 하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의 군무는 어느 고승의 다비식에 출렁이는 만장(挽章)이고 매창의 님 을 그리는 절절한 통곡의 눈물이었다. 거기에다 국문학 교수인 친구가 이매창의 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를 낭송하자 모두가 유희경이 되어 신발을 벗어 바닥을 치며 통곡을 한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 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술은 신경을 마비시키고 서정은 파도가 되어 술꾼들의 가슴을 때리니 광인이 따로 없다. 어둠의 자락이 술판을 가리고 추위가 소리 없이 내리자, 마을에 간 친구는 모닥불을 피울 장작을 가져다 이글거리는 불을 피우므로 스러져가던 술꾼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교교히 흐르는 달빛에 흩날리는 꽃잎은 동동주위에 사뿐히 내려앉고, 그게 또 무슨 낭만이라고 “캬! 죽인다”를 연발하며 악을 썼다. ‘돌아와요 부산항“이 ”싼타루치아“ 로 가더니 ”비목’을 안고 통곡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막걸리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얼마가 지나 누군가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동네에 있는 친구가 깨운 것이다. 일어나보니 볏짚을 덮고 자고 있었다. 친구가 쓰러진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볏짚을 덮어 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덮어본 이불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코 볏짚이불을 꼽는다. 뛰어난 보온성과 사각거리며 속삭이는 소리는 천사의 속삭임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꽃놀이를 해 보았다. 며칠 후 친구로부터 날아온 청구서는 경악이었다. 막걸리가 2L용량의 주전자로 15개를 먹었고, 안주가 10접시를 먹었단다. 사람이 소보다 더 먹는다는 얘기를 우리가 증명한 것이다. 다시 꽃피는 계절이 돌아 왔다. 이때만 되면 심한 병통으로 가슴앓이를 한다.
벚꽃구경을 가서, 잘 익은 막걸리를 마시고, 볏짚을 이불삼아 자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중병을 앓는다. 만일에 이런 짓을 아내가 직접 본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정신분석학 에서는 미친놈 이라고 진단이 내리고 곧 이어서 이혼장이 날아오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꼭 한번 해보고 싶기는 한데, 내가 생각해도 상태가 심각 한 것 같아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