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누크빌의 처용가處容歌

살다보니 이런 일이

by 조건

IMF 의 위력은 대단했다. 지가 무슨 민주투사라고 좋은 직장 개 밥그릇 차듯 버리고, 빚내고, 형제들에게 아쉬운 소리해서 어렵게 자금을 만들어, 사업이라고 한다는 풍신이 남들이 사양 사업 이라고 떠나는 수출 포장 이라는 생면부지 한 구렁텅이에 빠져 간신히 밥이나 먹던 찰나에 IMF 쓰나미가 몰려와 입은 옷 한 벌 가지고 거리로 내 몰렸다.


남은 건 목숨하나! 소리 없이 피안의 세계로 간답시고 모악산 어디쯤에 튼실한 소나무에 광목을 걸치고 넥타이를 맸다. 그리고 뛰었다.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 죽은 놈이 허리가 아픈 것이 이상해서 둘러보니 복 쪼가리 없는 놈이 죽는 것도 수월치 않았다. 그 많은 가지 중에 썩은 가지에 매어 허리만 고장을 내고 말았다. 가문이랍시고 내 놓을 건 없지만 그래도 면 단위 장을 지내신 아버지를 생각 할 때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동생이 선교사로 나가있는 캄보디아에 가서 무소의 뿔처럼 조용히 바다에 들어가기로 작정 하고 행장을 꾸렸다.


삶은 때로는 우리의 의지에 상관없이 디아스포라가 되어 이방인 이라는 굴레를 쓰고 텃세를 감당해야하는 이중고를 겪으며 살게 하기도 하며,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고난을 주신다는 임계점臨界點에 희망을 가지며 죽음을 거부하는 현상도 생기나보다.


신은 절대로 공밥을 먹지 않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장로와 권사님이신 부모님의 새벽기도와, 동생의 하늘을 깨우는 산속의 절규는 하나님을 감복 시키시어 5년 만에 빚을 다 갚고 쌀독에 쌀 반절, 돈 반절을 채워 주셨다. 물론 나의 가식적 이지만 눈물의 회개도 일조를 했다고 본다.

이렇게 밥걱정 안하고 살 즈음에 전화가 왔다. “형! 연휴인데 우리도 피서나 갑시다.” 그래 따분한데 잘됐다. 시아누크빌에 예약하고 출발하자.“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의 바닷가 휴양지인데 우리나라 해운대정도라 할까? 유럽의 여행자들이 몇 달씩 쉬어가는 곳이다. 지명은 따로 있는데 한 시대를 풍미한 왕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시아누크빌 이라 불렀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겸 식당을 운영하는 곳이라서 먹고 자는 게 편리했다. 해변 가에 있어 모닥불이며, 폭죽놀이며, 통키타의 선율에 막춤은 한국인의 K-POP 의 원조쯤 되지 않을까? 현지에 있는 지인과 함께 우리들 광란의 술 파티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옷을 입고 지갑이며 핸드폰을 모두 주머니에 넣은 체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했으니 본인이 생각해도 미친놈도 아주 중증에 가깝다고 본다. 우리는 그렇게 바다가 지닌 무언지 모를 유혹에 빠지고, 풍만한 즐거움과, 아련한 그리움을 키우며, 그의 품속에 안기어 어머니 같은 향수를 찾으려 하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눈을 뜨고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을 때쯤에 밖에서 “아이고 사람 죽이네 사람 살려!” 단발마의 비명이 들렸다. 어디서 많이들은 목소리였다. 불을 켜고 일행을 찾으니 방에 없다.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니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고추장통이 터져 얼굴은 피범벅이고 눈이고 입술이고 부어서 괴물 같은 형상 이었다.


흥분한 그 사람을 일단 진정 시키고 주인은 우리일행을 응급조치를 한 뒤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도 한국인 이었다. 프놈펜에 사는데 현지인 아내와 함께 휴가를 와서 잠을 자게 되었다고 한다. 아침에 바닷가를 산책하고 방에 들어가니 웬 놈이 마누라를 껴안고 자고 있었다 한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후배의 답변은 이랬다. 잠을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더듬거리다 문이 있어 열고 들어가 벽에다 시원하게 일을 보시고 침대에 가서 형을 껴안고 잠들었는데 느닷없이 헤딩이 들어와 코피가 터졌다 는 것이다. 주인여자의 판결이 나왔다. “여기는 가족들이 많이 오므로 방마다 문을 만들어 서로 왕래 가 편리하게 해 놓았는데, 청소하는 아줌마가 문을 잠가야 하는데 깜박 잊고 열어 놓은 것을, 이 도련님이 비몽사몽간에 화장실로 알고 들어가서, 공짜로 거시기 해 버렸구만.” 다행이 모두가 한국인 이어서 이해가 되고 용서도 빨라서 사태는 잘 수습 되고 치료비 대신 자기가 한잔 내겠다고 해서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새벽부터 벌어진 술판에 어제 먹은 것 까지 더한 취기는 다시 의식을 흐리게 했다. 해변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먹은 엷은 비린내가 산에서 부는 새벽공기와 어울려 몽환적 향기를 내어 놓는다. 기분이 최고조에 이른 처용이 “목이 메인 처용가를 불러야 옳으냐.” 부르는 노래에 역신이 받아“ 아싸라비아! 영자야! 먹물 빼고 오징어 한사라!” 코러스를 넣는다. 입술은 터지고 눈두덩이 부은 그의 모습을 보며 저 화상들이 호모 사피엔스 후예가 맞나 싶다. 아무래도 아메바, 히드라 쪽이 가깝지 않나 싶다.

바다는 많은 것을 듣고 보지만 가볍게 입 열어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가슴에 묻어두고 세월의 흐름을 무상하게 지켜보며, 인간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고, 무심히 파도를 통해 속삭임을 전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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