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명을 쓰고 살아왔다.
세상은 범죄인을 구별할 때 인상이 험악하고 덩치가 큰 사람을 살인자나 도둑놈으로 낙인을 찍는다. 체격이 왜소하고 곱상한 얼굴을 가진 자는 범행을 자백해도 믿기지 않는다며 그를 죄악에서 배제 하고자 한다. 그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선입견에서 오는 판단력 이라 한다던가?
이팝나무 흐드러지게 핀, 중학교 2학년 5월 어느 공휴일 날, 짝꿍인 친구가 넌지시 나에게 달콤한 유혹을 해왔다. “야! 휴일인데 우리 영화 보러 안 갈래? 일등 했다고 용돈 많이 받았거든” 기다릴 틈도 없이 “오케이”,그래서 가게된 것이 “누명쓴 사나이” 라는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침을 삼키며 몰입하고 있던 그때에 귓가에 대고 “재미있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 재미있다” 대답한지 얼마 후 다시 “재미있냐?” 묻는다. “그래 재미있어! 조용히 좀 해! 영화 좀 보자.” 옆을 돌아보니 뒤에서 누군가 우리 귓가에 대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기절 할 만큼 놀라고 말았다.
주인공은 저승사자 보다 무서운 훈육주임 선생님이셨다.
끌려나온 우리는 내일 교무실로 오라는 통보와 함께 밖으로 쫓겨 나오고 말았다. 그리하여 교무실에서 벌어진 재판에서 우등생인 친구를 내가 꼬드겨서 극장에 갔으므로 친구는 근신에 처하고 나는 일주일 동안 변소 청소를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누명은 나를 계속 따라 다녔다. 우리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우등생과 열등생, 우람한 체격과 여자 같은 여린 체격으로 선과악은 결정된 것이다.
그 후부터 나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은 상태로 고등학교까지 따라왔다. 불량학생 이라고. 학교에서 야외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면 “조건이 왔나? 그럼 인원점검 끝.” 담임선생님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은 호명 할 것도 없다며 나의 숨통을 조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크나큰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생긴 일이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친구들이 어울려 시내 구경을 가다가 골목길에서 부산 어디에서 온 학생들과 어깨가 부딪쳐서 시비가 붙었다. 친구 중 한명이 들고 있던 스틱으로 상대방을 선제공격 하므로 패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이 출동하고, 양쪽 선생님들이 진상을 파악하여 처벌하는 것으로 합의하여 일단 마무리 되었다. 피아간에 다치고, 머리가 깨지고, 했지만 치료는 학교별로 하도록 했다.
이 사건도 조사가 시작되니 모든 시선은 나에게 모아졌다. 먼저 싸움을 벌였던 친구는 체격도 왜소하고 공부도 중위권이라 그는 면죄부를 받았고 내가 주동자가 되어 무기정학을 당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거기 그냥 있어서 날아오는 주먹을 막아 냈을 뿐인데...
누명(?)으로 인하여 3학년 결석일수가 78일 이나 되었다. 예비고사가 처음실시 되어 학교마다 비상이 걸렸다. 합격률을 올려야 하므로 지원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나의 성적은 뒤에서 세는 것이 당연히 빨랐다. 나는 항변했다. 나의 성적은 누명에 의해 출석을 막았고 그로 인하여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합격할 수 있음을 피력했다.
하지만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겠는가? 동네 개 짖는 소리보다 못한 것을.
나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수시로 가방검열을 하시는 훈육주임 선생님이 수신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써놓은 정략적 유서였다. “사나이로 태어나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할 바엔 살아갈 의미가 없다”라고 써놓고 농약병을 가방에 넣어두었다.
사색이 된 담임선생님이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응시원서를 썼고, 기적을 만들었다. 합격을 한 것이다.
학교 앞 라면집에는 달력을 이어 만든 현수막이 붙었다.
“만경강의 기적! 조건 예비고사 합격하다”
여세를 몰아 국립대 사대가 처음 생겨서 국어국문학과를 당차게 지원하여 시험을 치르던 중에, 고개가 뻣뻣하여 좌우로 돌려 스트레칭을 하던 중에 감독 선생님의 퇴장명령에 기적은 망신으로 끝나버렸다. 이 또한 누명으로 한국역사의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만일 내가 국어 선생님이 됐다면 노벨 문학상이 진즉 한국으로 왔을 것이며 우리 문학계는 영광의 그 끝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누명이란 덫에 걸려 감옥 생활을 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위해, 목숨을 버리면서 죽음으로 세상을 향해 항변한다. 하지만 세상은 한 치의 놀램이나, 부끄러움 없이 잘 굴러가고 거기에 가담한 인간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구조적 모순에 익숙해있다. 선과악은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있음을 보는 혜안을 가지기를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위에 소리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