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 켜

by 조건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한다.


다만 우리 인간들이 너무 험하게 사용해서 늘어진 테이프처럼 느리기도, 빠르기도 하고, 엉뚱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열대 지방에 눈을 주기도 하고, 한 시간에 500mm 의 물 폭탄을 쏟아 부어 수천 명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단어에 익숙해졌다. 폭염, 폭우, 폭설, 폭풍 ...

웬만한 사망자는 놀라지도 않는다. 수십 명부터 수백 명은 조금 정도 이고 수천 명 정도가 돼야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는 지경이니 감각이 무디어 져도 많이 무뎌 졌다.


환경단체는 악을 써도 반응이 시원치 않자 극단으로 가고 있다. 전시장에 있는 명화에 페인트를 붓는가 하면 고속도로를 가로막고 본드로 손을 바닥에 붙여 끌려가지 않으려 기후만큼이나 극성을 부린다.

어차피 기후도 미쳐가고 사람도 미쳐 가는데 실없는 소리로 시비나 한번 걸어 보겠다는 심사로 몇 자 적어 봐야겠다.


집 밖에는 코로나라고 하는 저승사자가 먹잇감을 찾아서 살생부를 들이대니, 지독한 외로움을 파리 떼 쫒듯 싸워 온지 거의 3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이해 할 수 없는 화두가 머릿속에 인절미처럼 눌어붙어서 떠나지 않고 있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1922년 발표된 “황무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왜 화자는 모든 생명이 태동하는 4월을 잔인하다고 했을까?

역설적으로 따뜻한 눈 이불을 덮고, 저장된 양식으로 잘살고 있는 겨울을 동경하며, 봄비로 잠을 깨워 생명을 시작하는 것이 잔인하다고 한 것이다.


그 시대의 사회상을 은유했든지 사랑하는 애인의 죽음을 비유했든지 간에 화자의 표현을 탓하거나 시비 할 것은 없다. 안을 보든 밖을 보든, 형이상학적으로 보는 시각은 시인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4월은 잔인하다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계절적 의미에선 쉽게 동의하기 어렵지만 예지적 차원에서는 조금은 수긍 이간다.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그리고 잔인 하게 죽어간 4.3제주도 사건, 4.16 세월호 사건 , 4.19 혁명까지를 반추 해보면 시인 보다는 예언을 노래했다면 정말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았을 것 같다.

다른 하나를 들추어 보자. 우리는 꽃을 보면 예쁘다는 탄성부터 나온다. 그리하여 책상위에 놓기를 원하여 서슴없이 꺾어서 화병에 꽂는다. 과연 그 꽃의 아픔이나 죽음을 슬퍼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대로 두었으면 벌과 나비와 함께 세월을 유희하며 결실을 잘 맺고 그의 생을 잘 마감 할 터인데 말이다. 나 자신도 아름다운 꽃을 보면 탐이 나서 곁에 두고 보고 싶은 욕망이 앞선다. 나의 식견이 짧아서 당대의 유명한 시인들이 꽃의 죽음을 슬퍼한 시가 있는지 모르겠다.


쉽게 생각나는 부안 어느 여류 시인은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 하는가. ” 이 얼마나 애달픈 애가이며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한 여인의 망부가 인가? 다만 무지한 소견으로 이렇게 노래했으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본다.

“꽃과 낙엽이 지니 너희의 죽음이 안타깝고, 나의 님 을 향하는 마음이 죽을 만큼이나 애절 하구나”


떨켜.JPG 출처 Pinterest


모든 식물과 나무들 에게는 떨켜 라는 세포막이 있다고 하네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꽃은 지고 가을이 오면 다가올 겨울의 혹한을 대비 하기위해 세포막으로 수분과 양분을 저장하기 위해서 떨켜를 닫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뭇잎은 떨어져 그의 몫을 다하고 죽음으로 바닥에 떨어진 낙엽은 부모의 이불이 되어 주고, 썩어서 비료가 되어 동생들의 탄생을 돕는다고 합니다. 나무는 살기 위해 그리고 다음 자식들의 양육을 위해 앙상한 알몸으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떨켜를 열어서 새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가을은 죽음의 계절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동네 개 짖는 소리로 들리겠지요. 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겠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가을의 화려함 속에서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해준다면 그만 이니까요. 만산홍엽 의 아름다움은 낙엽의 마지막 가는 수의를 예쁘게 차려 입었음을 기억해 주는 이가 있으면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겠지요.

우리는 보이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보이지 않는 숨은 것의 실체를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는 우리에게는 공포의 대상 이지요. 하지만 그 파도가 바람이라는 것은 잘 모릅니다. 바닷물은 아무 힘이 없지요. 바람이 숨어서 파도를 만들고 엄청난 힘을 과시합니다. 예쁜 단풍을 즐기면서 그들의 주검도 같이 봐야겠어요.

황, 청, 등, 적, 갈, 색의

색동옷을 입은 가을 산은 화려하다.

나무는 자식들의 마지막 생과의

이별 잔치를 바라보며 떨켜를 준비한다.

떨켜는 혹한의 한겨울을 생존하기 위하여

양분과 수분을 저축하기 위한 세포막이다.

죽음보다 더 아픈 마음으로 떨켜의 문을 닫으며

그들에게 낙엽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우리는 그 화려한 잎사귀의 몽환적인 자태에 취해

그들의 주검을 알지 못한 체 축제의 환호성을 노래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누명쓴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