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讚歌

소를 노래하며

by 조건

소! 참 정감있는 이름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동물이 있을까? 이글을 통해 나는 소를 이해하고, 소의 우직하고 충직함을 그의 희생과 수고로움을 노래하고자 합니다. 본인은 소장수도 아니고 더구나 정육점을 하는 사람도 아님을 정중히 밝힙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마누라가 병원에 있어 가야한다고, 어느 친구는 당뇨가 심해 밥을 집에 가서 먹어야 한다고 ... 지겨운 시간은 여름날 엿가락처럼 늘어져 바닥에 흐르고 누구하나 찾아 주는 이 없고, 전화 한통 없는 지루한 시간들이다. 고독이 벗이 되고 외로움이 내 몸을 감싸는 시간들이 겹겹이 쌓일 즈음에 복지관을 알게 됐고, 캘리그라피 라는 생소한 장르를 접하게 됐다. 정기적인 전시회도 있고, 자체 평가전을 가져야 한다며 낙관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호가 있어야 한단다. 언감생심 나 같은 무지랭이가 호를 가진다 하니 부끄러움이 앞서고 가당키나 한일인가 싶고,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인가 싶다.


앞에 계시는 선배님에게 혹시 호가 무엇이지를 물어봤다.

“네, 제호는 송해 에요. 성은 황 씨고요.” 황송해?

하마터면 웃음보를 터트릴 뻔 했다.

얼른 표정관리를 하고 “호가 참 멋있네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우둔한 머리로 생각해 보니 황송해 라면 얼마나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자세이며 소나무의 바다라는 그 뜻은 어느 고고한 호와도 견줄만하고 특히나 최장수 인기 사회자인 송해 선생님을 연상케 하니 얼마나 기발한 호인가.


누구라도 이호를 듣고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 같고, 멋스러움이 묻어나며 정감 있어 보였다. 하긴 17번이나 투옥 됐던 항일운동의 대표적 시인 이었던 이 육사 시인은 수인번호를 호로 쓰지 않았던가? 과연 항일정신의 멋진 저항에서 오는 시인다운 결단이며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든가? 언뜻 생각나는 건 고스톱 판에서 쓰던 낙장불입이 생각났다. 낙장? 홍단? 구사? 고심을 하던 중 국문학 교수인 친구를 만났다.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자문을 구하니

“도박꾼다운 발상인데 호는 자기의 상징성과 대표성, 생각과 취향에 따라 짓 는 게 좋다며 원하면 하나 만들어 주는데 공짜는 안 되고 두둑한 봉투를 만들어야한다 ” 며 거하게 한잔 사란다. 얼마 후 그를 만나서 받은 호가 牛步(우보)였다.


소의찬가.JPG 출처 Pinterest


“너는 소처럼 우직하고 정직하게 항상 느리고 순박하게 서두르지 말고, 교활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가라는 뜻이며 나아가 소처럼 단순하게 살라는 뜻이니, 우보라는 이호에 먹칠 하지 않게 품행을 단정히 하고, 언행을 삼가며 사고치지 말고 잘 살아라 “

훈장 선생이 초동에게 훈계하듯 마무리 한다. 나는 소라는 그 말에 “교수님 감사합니다. 명심하여 그 유지를 받들겠습니다. 그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소다. 고맙다 소처럼 살께”


그날 밤 우리는 냉장고 술병이 부족할까 걱정하며 몇몇 친구들과 문 닫아야 한다는 주인장에게 쫓겨날 때까지 마시고 일어섰다. 술값은 그 친구가 미리 계산 했다니 촌지는 그만두고 술빚을 졌으니 이일을 어이할거나. 이렇게 고귀한 호를 얻게 되어 소와의 연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소와의 잊지 못할 추억을 생각해 본다.

나는 시골의 외딴집에서 자랐다 옆집이 2km 를 가야 사람을 볼 수 있는 야산을 개간해서 얻은 허허 벌판의 산골 이였다. 우리 집엔 세 마리의 소가 있었다. 야산 3만평의 밭을 갈기 위해 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느린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어느 날 장에 내다 팔기위해 수확한 수박을 지금은 익산 이라 불리는 이리 약간에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데 전날 싸이나 라는 독극물을 먹고 죽은 꿩을 일꾼 4명이 나누어 먹고 탈이 나서 초죽음이 되어 읍내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하루를 재울 수 없는 생물이라 고등학생 이었던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던 소달구지를 몰고 어머니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되었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멍에를 소의 어깨에 내려 씌우고 “이랴” 하고 소리치니 힘차게 앞으로 나갔다.


땀에 젖은 소를 달래고 어르며 2시간여를 어려운 밤길을 헤치고 무사히 약간에 도착했다. 약간은 지금의 청과시장과 같은 곳이다.

달구지를 한쪽에 대고 어머니와 둘이서 수박을 내리고 있던 중 갑자기 옆에서 트럭의 크략숀 소리에 놀란 소가 뛰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나는 소를 쫓아 같이 뛰기 시작했다. 커브를 돌때에 인도의 턱에 바퀴가 들리면서 수박은 쏟아져 깨지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비명이 어우러져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다행이 옆에 있던 아저씨가 달려와서 무사히 소를 진정시켜 데려와 사태는 마무리 되었다. “소를 말뚝에 매놓아야지 그냥 두면 놀라서 뛰는 거여” 절반은 깨져서 버리고 나머지를 헐값으로 넘기고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소는 영특해서 주인을 알아보는 것이여. 아마도 네가 낯설었나 보다, 그래도 이만한 것이 다행이다. 사람 안 다치고 소도 무사하니 감사하자”

집을 향해 오는데 조금가다 소가 걸음을 멈추고 요지부동 움직이질 않았다. 원인을 몰라 무지막지한 회초리로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코뚜레를 피가 나도록 잡아 당 기고 발길질을 해도 그저 거친 숨만 내쉴 뿐이었다. 과연 황소고집 이라 더니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누렁아 왜 그려 고집 고만피고 어서 집에 가자 ”


신통하게 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시 때때로 소죽도 쑤어서 주고 수고했다고 머리를 쓰다듬던 어머니의 사랑을 알기라도 한 듯... 그러기를 몇 번을 거듭한 뒤 집에 도착했다.


며칠 후 일꾼 아저씨의 얘기는 충격적 이었다.

소의 발톱이 너덜거리고 배 밑이 줄에 씻겨 상처가 났던 것이다. 멍에와 연결된 뱃줄을 단단히 묶어야 했는데 헐거워진 탓에 상처가 났던 것이고, 발톱은 놀라 뛸 때 다쳤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고 답답했을까를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하고, 누렁이가 말을 할 수 없어 무언의 시위를 한 것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했던 것인데, 무지막지 하게 매질을 했던 내가 얼마나 우매하고 미웠던지, 소보다 못한 나를 자책하며 마음속으로 누렁이에게 용서를 빌었다.


소는 느리지만 우직하고 인내하는 동물이다. 힘들다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주인의 말에 순종하고, 염소처럼 경망스럽게 울지 않으며, 어설프게 들이 받지도 않는다. 소박하기도해서 추운겨울 가마니를 쫙 펴서 등에다 얹어 새끼줄로 묶어주면 멋진 외투를 선물이라도 받은 듯 고마움의 뜻인 듯 고개를 끄덕여 감사 할 줄 아는 착한 녀석이다.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맡은바 그 몫을 다하고 주는 풀 몇 줌으로 허기를 달래고, 어쩌다 아저씨가 주는 막걸리 한잔을 맛있게 마시고 혓바닥으로 쓰윽 콧잔등을 핥으면 그것이 안주며 주인에 대한 고맙다는 인사다.


정지용 시인은 향수에서 노래하기를 “얼룩 배기 황소가 해 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이 얼마나 가슴시리며 금방이라도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애절 함이 소 때문만은 아니리라.


우리의 고향은 거름 냄새가 코끝에 베여있고, 땀 냄새가 모시 적삼을 적시며, 모깃불 내음에 정겨운 고향. 그렇게 심연에 자리한 초가에는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향수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학교가 파하면 소꼴을 베며 온갖 즐거운 장난과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지막 소꼴을 걸고 자치기로 마무리한다. 진 사람은 해가 저물도록 풀을 베고 이긴 자는 의기양양 진자의 소꼴을 가져다가 소에게 저 녘 만찬을 베풀어준다. 소는 요즘 반려 견이나 반려 묘처럼 호사스러움을 원치 않는다. 그저 쌀을 도정하고 남은 쌀겨를 섞어 주면 감사함으로 음메 하고 정겨운 울음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쑤어 줄때면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그 모습이 손자들의 재롱만큼 사랑스럽다.


그 소중했던 누렁이는 집안의 대소사나 가족 중에 큰 병이 걸리면, 어김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소장수의 손에 이끌려 동구 밖을 나서며 길게 목멘 울음으로 이별을 아쉬워해야 했다. 언니가 시집갈 때에나, 오빠가 장가 갈 때, 그리고 아버지 환갑잔치 에도 그의 몫을 다했다. 특히나 아들의 대학 등록금 때는 어김없이 그는 떠나야 했으며 어머니는 부뚜막 아궁이 앞에서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 내곤 했다. 그리하여 혹자들은 대학을 象牙塔 이라 칭하지만 그것은 진정 牛骨塔 이었다.


그는 느림의 미학을 아는 충직한 일꾼이다. 멀리가기 위한 여유이며 준비인 것이다. 그 큰 눈으로 슬퍼 할 줄 알며 울어야 할 때에 눈물을 흘리는 진정한 로맨티스트다. 묵직한 그의 울음소리는 세상의 고뇌와 처연한 슬픔을 잉태한 해산의 외침이다. 막걸리 한잔에 기쁨을 토하고 즐거워하는 진정 흥을 아는 놀이꾼이다. 서두르지 않는 소의 걸음으로 인내와 서두름이 없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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