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탁구치고 싶습니다

by 하늘

oo 탁구장에서 열린 리그전에 다녀오던 차가 갑자기 로또를 파는 복권방 앞에 멈추어 선다. 본선 1회전에서 탈락한 옆 자리 언니는 “왜 졌지?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지다니. 아! 짜증 나.” 이 세 문장을 돌림노래처럼 반복한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기에 그녀의 말이 꼭 내가 하는 말처럼 들린다. 대회에 나가거나 게임을 다니다 보면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고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될 일이다. 탁구라는 게 원래 그렇다. 상대성이라는 것도 있고 똑같은 구질의 탁구인은 한 명도 없기에 이런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구력(탁구를 친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쌓이는 걸 알면서도 마치 처음 겪는 일처럼 매번 당혹스러워한다.

침통한 차 안 분위기는 복권 하나를 사면서 180도 달라졌다. 네 명 중 유일하게 본선 2회전에 진출한 동료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로또 1등 되면 내가 중국으로 탁구 유학 보내줄게.” 그녀는 “정말요? 진짜 중국으로 탁구 유학 가고 싶어요. 로또 맞으라고 기도해야겠어요.”라며 들뜬 표정이 된다. 곧 탁구 유학을 떠날 사람이라도 된 양 신났다. 50대 초반 둘, 50대 후반 둘은 그렇게 ‘중국 탁구 유학’이라는 단어 하나에 기분이 업 되어 어쩔 줄 모른다. 좀 더 나은 탁구를 위해서라면 유학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유학길에 오르는 나를 상상해 본다. 그러다가 탁구, 이게 뭐라고 반 백 살의 나이에 유학을 떠나서라도 잘해보겠다는 건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이 들어 무언가를 욕망하면 노욕이라는데 노욕이라고 느껴지기는커녕 마냥 즐겁다. 젊지 않은 나이에 이렇게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게 마냥 좋다. 앞으로도 노력하는 존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기에 마냥 행복하다.


5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도 없었던 욕망. 전업주부로 20년을 살았다. 한 번에 하나밖에 못하는 인간이라 아이 둘을 키우는 일도 벅찼다. 그 긴 시간 속에서 누구의 아내가 아닌,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 살게 해 준 건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일상은 잠시 잊고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그 시간들을 10년 넘게 이어 오고 있다. 그렇게 머리만 비대해져 가던 내가 탁구라는 운동을 일상에 들이면서 참 많이도 변했다.

책 읽고 토론하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고 몸을 움직이는 거엔 도통 관심이 없던 인간이 탁구를 함께 시작한 사람 중 가장 오래 버티고 있다. 버티는 건 잘한다는 걸 꾸준히는 잘한다는 걸 탁구를 하면서 알았다. ‘내게도 몸이라는 게 있었구나, 팔다리를 움직이면 몸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낯설고 신기했다. 한쪽으로만 치우쳐 머리만 쓰고 살던 인간이 그렇게 40대 후반의 나이에 자신의 몸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 자주 쉬어 주어야 했던 저질 체력의 소유자는 근육량이 2킬로나 증가하고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 생활체육인으로 거듭났다.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몸이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유쾌한 경험이다. '앞으로 내 몸이 얼마나 더 변할 수 있을까?' 기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육체가 달라지고 강해졌다는 자부심은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표정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어디에나 운동복을 입고 다녀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운동인이 되었다. 한 가지 유니폼만 입어 “하늘 씨는 옷이 그것밖에 없어? 제발 탁구복 좀 다른 거 입으면 안 돼?”라는 말을 듣던 사람이 이제는 남편으로부터 “아니 여기가 무슨 스포츠 매장이야? 전부 탁구복이네”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탁구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글쓰기와 더불어 하루도 빼먹지 않는 루틴이 되었다. 그렇게 탁구 치는 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글쓰기라는 세계와 탁구라는 세계를 넘나들며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살고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한다. 탁구라는 운동으로 중심을 잡으며 한 편 두 편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이제야 정신활동에 치우쳤던 일상에 신체활동이 자리를 잡아 나름의 밸런스를 찾은 듯한 느낌이다. 삶의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나이 마흔여섯에 라켓을 잡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신체적인 변화도 컸지만 탁구를 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내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스포츠라는 세계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포츠인은 물론 무용하는 사람, 댄서 등 몸을 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수 김종국을 예로 들자면 기존에는 닭가슴살을 갈아 마시고 헬스 좀 하는 연예인 정도로 알고 있었다면 성시경의 말마따나 '몸으로 책을 낸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매일 수행하듯 운동해야 그런 몸이 된다는 걸,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탁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책만 읽던 바보가 '인간이 몸으로도 책을 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스포츠 선수를 보면 “와! 잘한다.”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반복연습을 해야 저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굽이굽이 건너왔을지를 상상한다. 보이는 것들 너머가 보이기 시작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관점이 바뀌었다.


그럼 탁구 실력은 5년 전과 비교해 어떻게 변했을까?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기술 하나가 없다"라고 푸념하는 내게 관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공 속도가 20배(?)는 빨라졌다. 허벅지 좀 봐. 허벅지는 신유빈급이야. 그럼 성공한 거 아니야?” 그렇다.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용 됐다. 그럼에도 최종 목표인 ‘포핸드 드라이브와 백핸드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에는 갈 길이 멀기에 때로는 잘 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해하다가도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그나마 탁구라는 운동의 특성상 나이 들어서까지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조바심 내지 않으려 마음먹지만 또 마음만으론 되지 않는 게 인생인지라 매번 허둥댄다.

그럼에도 탁구를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대 놓고 탁구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일상이 탁구로 잠식당하는 게 싫어서 밀당도 참 많이 했다. 뭔가에 이토록 미쳐 본 경험이 없기에 탁구에 미쳐 가는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탁구에 제대로 바람이 났다. 5년이나 지났음에도 탁구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인다. 탁구 친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탁구 이야기에 아직도 열변을 토하시는 관장님을 보노라면 나 역시 이 길을 10년 아니 20년 이상 걸어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뭔가에 대한 애정을 수십 년 동안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 아닐까? 그런 존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빛날 수 있는 게 인간이지 않을까? ' 생각한다.

처음엔 수십 년 탁구를 쳐 온 사람들이 왜 그렇게 탁구 이야기에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눈을 반짝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그 누구보다 탁구 이야기에 눈을 반짝인다. 자체 발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목소리 톤도 점점 올라간다. 이때쯤 누군가 “왜 그렇게 탁구가 좋아요?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좋습니다.” 이유를 찾다가 포기했노라고. 좋은데 무슨 이유가 있냐고. 이런 마음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오래오래 탁구치고 싶다.

오래오래 탁구 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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