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탁구 로봇이랑 대체 뭘 하는 겁니까?
탁구 로봇을 이리저리 세팅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지켜보던 고수님이 묻는다.
“탁구 로봇이랑 대체 뭘 하는 겁니까?”
그러게 나는 탁구로봇이랑 뭘 하고 있는 걸까?
기계실 밖에서 보면 탁구 로봇 앞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모양새가 웃기기도 하겠다.
탁구장 문을 빼꼼히 열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탁구 로봇이 있는 기계실에 누가 있는지의 유무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탁구 로봇과 정해진 시스템을 연습한 후 레슨을 받거나 회원들과 연습하러 나간다. 나름의 루틴이다.
정해진 시스템이란 것도 사실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거다. 아니 저절로 만들어졌다. 여성회관에서 탁구를 배우다 사설 탁구장으로 옮겼는데 초보라 마땅히 탁구 칠 사람이 없었다. 쳐 달라고 매번 부탁하기도 민망해 틈만 나면 탁구 로봇을 붙들고 연습했다. 그 당시는 포핸드와 백핸드 위주의 연습이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로봇 앞에 서 있던 내가 떠오른다. 어떻게 맞추어야 정타인지 몰라 라켓을 휘두르면서도 쭈뼛쭈뼛하던 시절.
그때부터였나 보다. 로봇과 절친이 된 것이. 요즘의 ‘쉬리’처럼 ‘음악 틀어줘’ 하면 자동으로 음악을 틀지는 못하지만 세팅을 하면 원하는 공을 적재적소에 잘도 던져 준다. 로봇은 공을 던져주고 나는 그 공에 맞춰 움직인다. 마치 로봇과 한 팀이 된 듯하다. 기계치인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기계라고나 할까? 로봇과의 연습 시스템도 포핸드와 백핸드 위주에서 장족의 발전을 했다. 로봇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지금의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대략의 시스템은 이러하다. 먼저 쇼트(백핸드)부터 시작한다. 우선 공의 길이를 짧게 해 놓고 오른발로 들어가 정점에서 빠르게 쇼트로 상대의 백 쪽으로 보내는 연습을 한다. 화쪽으로 보내는 연습도 병행한다. 이러한 연습 덕분인지 게임 중 짧은 공이 올 경우 자연스럽게 오른발로 잡은 후 빠른 쇼트를 해 점수를 낼 수 있었다. 탁구는 대부분 탁구대에 붙어서 치거나 떨어져서 치는데 탁구대 앞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연습으론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수준에서 그렇다는 거다. 다음은 공의 길이를 길게 해 놓고 쇼트 가르기를 한다. 백 쪽으로 한 번, 화쪽으로 한 번 번갈아 한다. 화쪽으로 보내는 게 부족하다 싶으면 화 쪽으로 만 보내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최종 목표는 쇼트를 마음먹은 대로 자유자재로 보내는 데 있다. 마지막 쇼트 연습은 공의 속도를 빠르게 해 놓고 코스 가르기를 한다. 빠른 공이 왔을 경우 코스를 가르기 위해서다.
다음은 백 드라이브 차례. 백 드라이브도 쇼트와 비슷하다. 커트 공의 길이를 짧게 해 놓은 뒤 오른발로 잡고 들어가 백 쪽으로 백 드라이브를 한다. 화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기도 한다, 백 쪽보다 화쪽으로 백 드라이브하는 게 확실히 더 어렵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되지 않겠어?’라는 마음으로 연습한다. 실제 게임에서도 짧은 커트 공이 많이 오는데 상대에 따라 커트 공이 오는 달라지기 때문에 박자를 잘 타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공의 속도를 조절해 연습하기도 한다. 다음은 커트 공의 길이를 탁구대 모서리에 길게 떨어지도록 하게 한 후 코스 가르기를 한다. 백 쪽으로 한 번, 화쪽으로 한 번. 백 쪽보다 약한 화촉은 좀 더.
다음은 스매싱 차례. 우선 공을 백 쪽으로 오게 한 후 돌아서 상대의 백 쪽으로 스매싱하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이번엔 화쪽으로 스매싱. 다음은 두 개를 연결한다. 첫 번째 공을 백 쪽으로 스매싱한 후 두 번째 공은 화쪽으로 스매싱. 일명 한 세트다. 마지막 연습은 공을 나의 화쪽에 오게 한 후 상대의 화쪽으로 스매싱을 한다. 이어 상대의 백 쪽으로 스매싱을 한다. 다음 단계 역시 이 둘을 연결시킨다. 첫 번째 공은 화쪽으로 스매싱하고 두 번째 공은 백 쪽으로 스매싱한다. 순서를 바꿔 백 쪽으로 스매싱한 후, 화쪽으로 스매싱을 하기도 한다.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연습은 체력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 연습하기 싫은 포핸드 드라이브다. 우선 커트 공을 백 쪽으로 오게 한 후 돌아서 백 쪽으로 드라이브를 건다. 다음은 화쪽으로 드라이브를 건다. 이번엔 커트 공을 화쪽 모서리 끝에 오게 한 후 화쪽으로 드라이브를 건다. 다음은 백 쪽으로 드라이브. 이어 공을 미들 쪽에 오게 한 후 드라이브를 건다. 모서리보다 겨드랑이 쪽으로 오는 커트 공을 드라이브 걸기 어려워 추가한 연습이다. 다른 기술들에 비해 유독 자신감이 없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게 스스로도 느껴진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금은 ‘최대치로 연습하는 건 레슨 시간에 하겠다’라고 마음을 비운 상태다. 매일 스트레스를 받을 순 없으니까. 한번에 다 할 순 없으니까.
이렇게 쇼트, 백 드라이브, 스매싱, 포핸드 드라이브 순서를 거쳐야 로봇과의 연습이 비로소 끝난다. 써 놓고 보니 이 연습만 잘해도 탁구가 금세 일취월장하겠다. 선수가 되고 도 남겠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 다른 법. 로봇 친구와 연습하는 날이 있는가하면 안 하는 날도 있다. 집중해서 빡세게 연습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연습하는 날도 있다. 꾸역꾸역 흉내만 내고 있는 날이면 관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늉만 하고 있구먼. 제대로 하란 말이야.” 이렇듯 진짜 시늉만 하는 날도 있다. 어찌 매일 집중해서 연습할 수 있단 말인가? 탁구 로봇과 연습한다고
사람이 기계일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연습이 몸 안에 쌓여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게임이나 3구 연습 때 쇼트, 백 드라이브, 스매싱의 코스 가르기가 무의식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럴 때의 기분이란! 말해 뭐 하겠는가? 몸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새겨져 있는 것이 저절로 나오는 그 찰나의 순간을 사랑한다. 내가 탁구를 치는 건지 탁구가 나를 치는 건지 모를 정도의 순간. 내게 탁구 칠 때 가장 큰 희열을 꼽으라면 이런 순간이 아주 가끔 모습을 드러낼때다. 이 순간을 위해 탁구를 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탁구 기술을 몸에 때려 박아 저절로 나오게 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렇게 저절로 작동되어지는 몸이 신기하다.
이나마 연습이 몸에 배어 습관이 된 건 다 탁구 로봇 덕분이다. 친구야,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안하다. 탁구 로봇을 좋아하는 회원들이 유난히 많은 탁구장이라 관장님이 했던 말이 귓가에 남아 있다. “우리 탁구장 로봇은 불쌍해. 쉬지도 못하고 혹사당하고 있어.” 여기에 크나큰 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순위권 안에 들 거다. 그래서 매일은 연습하지 않으려고. 너도 좀 쉬어야지. 그 김에 회원들과 탁구 치는 시간을 좀 늘려야겠다. 조금 있다 저녁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