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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Nov 20. 2023

108.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매일 탁구장에 출근하는 루틴형 인간이 탁구를 일주일 이상 치지 않았다면?


여행은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을 해 봐야 자신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견딜 수 없어하는지 안다고 말한다. 여행이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거다. 내게 있어 여행의 이유란  내가 발 딛고 사는 일상을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기 위이  다.

          

4박 5일 여행을 마치고 일주일 이상 탁구를 쉬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저녁 탁구장으로 출근하던 루틴형 인간에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탁구장에 안 가면 마치 큰 일 나는 것처럼 눈이 오는 빙판길에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에도 탁구장으로 향하던 사람이었다. 하루쯤 쉬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꾸역꾸역 탁구장으로 운전대를 몰며 이렇게 중얼거리던 사람이었다. ‘뭔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탁구장으로 달려가는 거니? 루틴을 좋아해도 그렇지. 정도가 심한 거 아니니?’ 그런 인간이 잠깐 여행을 다녀오더니 어영부영 15일을 쉬었다. 여행기간 5일을 빼도 10일을 쉰 거다.

     

그게 뭐 대수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번도 이렇게 오래 쉬어 본 적이 없기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으레 한 번씩 집안을 싹 다 뒤집는다. 배낭 하나 들고도 가뿐히 여행할 수 있는데 사는데 별 필요 없는 물건들을 괜스레 이고 지고 사는 것 같아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과감히 버린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정리를 감행한다. 예전 같으면 탁구장을 다니면서 병행했을 터인데 이번에는 오로지 정리 그 자체에만 몰입했다. 물건 정리만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져 탁구란 놈을 생각해 보는 탁구에 대한 마음 정리도 필요했던 걸까? 탁구를 매일 치던 내게 주는 일종의 휴가다. 탁구 휴가? 그런데 웃기다. 제주도까지 여행 가서 굳이 탁구장을 찾아가던 사람이 집에 돌아와 탁구 휴가라니!

     

그럼에도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운동이란 게 그런 것 같다. 매일 가면 매일 갈 수 있지만 한 번 안 가기 시작하면 가기 쉽다. 어인생의 모든 건 양극단만이 존재하는지. 어찌 되었든 탁구장에 가는 8시에서 10시까지의 저녁 시간 대부분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보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탁구장 안 가도 괜찮은데? 뭘 그렇게 매일 탁구장에 가야 하냐고?’ 반복되는 일상을 돌아보는 질문이었다.


 이어 또 다른 질문. “너는 루틴으로 매일 탁구장에 가는 행동 자체가 중요한 거니? 아니면 탁구 치는 것 자체가 좋은 거니?” 탁구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던 예전과 다르게 아무런 감흥 없이 탁구장으로 향하던 요즘 내 모습에 대한 물음이었다. 달리면서는 할 수 없었던 질문들. 그렇다고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닌 질문들. 그럼에도 하고 살아야 하는 질문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한 건가? 당연하다고 하는 행동들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으니.

      

아! 그런데 내일은 탁구장에 가야겠다. 선수들은 3일 이상 쉬면 탁구 감각을 잃는다던데 10일을 쉬었으니 여태 쌓아온 감각이 전부 없어졌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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