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언니, 저는 이런 게 궁금해요.
(4개월 차 탁린이가 묻고 5년 차 탁구인이 답하다)
독서모임을 함께 하는 동생이 여성회관에서 탁구를 시작했다. 이제 4개월 차로 올해 42세다. 나 역시 46세에 바로 그곳에서 탁구를 시작했다. 5년 전 시스템과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 10명의 회원이 돌아가면서 10분 정도 레슨을 받는단다. 그녀와 탁구 이야기를 하노라면 탁구 라켓을 처음 잡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라켓에 공을 맞추지 못해 허둥대던 그 시절이, 어설픈 포핸드 랠리를 이어가던 그 시절이. 육아를 핑계로 운동이라곤 담쌓고 살던 인생에 그래도 운동이라는 걸 시작했다는 뿌듯함으로 집에서 여성회관으로 종종종 발걸음을 옮기던 내가 떠오른다. 그때 내가 걸었던 길을 그녀도 지금 똑같이 걷고 있겠지?
그녀에게 탁린이로서 궁금한 점은 없는지 물었다. “탁구가 무슨 운동이 되냐고 하는데 막상 해 보니까 운동량이 엄청나요. 그리고 생각보다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예상치 못했다는 말투다. 그녀 역시 탁구라는 운동을 만만하게 생각했으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분야든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세계는 쉽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해 봐야 안다. 세상에 만만한 건 하나도 없다는 걸. 나도 그랬다. 그녀는 “언니, 저는 이런 게 궁금해요.”라며 질문을 쏟아낸다. 4개월 차인 그녀가 묻고 초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수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5년 차인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 대답한다. 내가 아는 딱 그만큼.
“저는 탁구에 부수 체계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게 뭐예요?”
“맞아. 나도 탁구를 하지 전에는 부수라는 게 있는지 몰랐어. 지역마다 다른데 보통 최상위부수인 1부터 최하위 부수인 8부까지 있더라고. 나는 5년 차지만 가장 최하위부수인 8부고 동생도 나랑 똑같이 8부야. 지역대회에 나가 승급을 해야 7부, 6부로 올라갈 수 있어. 애들 태권도처럼 우리도 승급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게 놀랍지 않아?”
“그냥 탁구 치는 사람도 많은데 굳이 레슨을 받아야 하나요?”
“다른 운동에 비해 레슨 받지 않는 사람이 많긴 한데 그래도 제대로 배우려면 레슨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레슨 받지 않고 탁구 치는 사람을 일명 ‘사파’라고 하는데 본인을 사파라고 자칭하는 분이 그러더라. 자기는 레슨을 받지 않아 실력 향상에 한계가 있다고. 먼 미래를 위해서는 발전 가능성을 위해서는 레슨을 받는 게 아무래도 좋다고.”
“언니, 자세가 중요하다는데 왜 중요한 거예요?”
“모든 운동이 자세가 중요하지 않아? 특히 탁구는 스윙 폼을 중시하는데 제대로 된 자세여야 제대로 된 스윙이 나오니까 그러나 봐. 하지만 너무 스윙 폼에 연연하다 보면 스트레스받아서 탁구를 때려 칠지도 모르니 방향성은 정해 놓되 자세에 너무 목매지는 말아야 돼.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 특히 아시아 탁구는 스윙 폼을 중시하는데 유럽은 스윙 폼보다는 자신의 신체에 맞는 탁구를 더 중요하게 여긴대. 자신이 잘 쳐지는 스윙 폼으로 탁구를 친다고 하더라고.”
“탁구 기술 중 포핸드가 왜 중요한 거예요?”
“포핸드가 탁구의 가장 기본이라서 그러는 거겠지? 포핸드 스윙이 제대로 잡혀야 스매싱도 하고 포핸드 드라이브도 잘할 수 있으니까. 탁구를 배우는 초기에 포핸드를 잘못 배우면 이걸 고치기 굉장히 힘들어. 10년 된 언니가 포핸드를 고치겠다고 1년 이상을 포핸드만 연습했는데 원래의 습관으로 자꾸 돌아가 쉽지 않더라고. 나도 포핸드 스윙 폼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한참 애 먹었어. 지금도 포핸드를 땡겨 치고 있어. 잘못된 걸 알지만 습관이 돼 잘 고쳐지지가 않네. 그러니까 좀 늦더라도 지금 포핸드를 잘 배워놔야 해. 중국 선수들은 다른 건 안 배우고 5년 동안 포핸드와 백핸드만 연습한대. 그만큼 포핸드가 중요하다는 거겠지? ”
“탁구는 왜 나이 든 사람이 많이 치나요?”
“나이 들어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선택지는 많지 않은 것 같아. 수영, 요가, 헬스, 배드민턴 정도인데 배드민턴과 비교한다면 탁구는 그렇게 과격한 운동도 아니고 부상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 나이 들수록 위험한 운동은 피하게 되니까. 배드민턴을 하다가 부상당하거나 힘에 부쳐 탁구로 넘어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공만 넘기면 될 것 같은 만만함도 있고.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 잘만 배워 놓으면 70, 80이 되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게 매력인 것 같아.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탁구를 많이 치지만 그래도 평균 연령은 다른 운동에 비해 높은 편이야. “
“탁구를 제대로 치려면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리나요?”
“처음 탁구를 시작할 때 2-3년 잘만 배우면 평생 재미있게 칠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탁구를 정말 만만히 봤더라. 원하는 목표인 ‘포핸드 드라이브와 백핸드 드라이브 자유자재로 걸기’를 위해서는 시간이 꽤 걸린다는 걸 5년이 지나서야 알았어. 우선 자신의 목표를 정해야 해. 즐겁게 탁구를 칠 것인지(즐탁), 기술의 완성도를 높일 것인지. 탁구에는 유난히 10년 이상 치신 분들이 많아. 10년부터 무려 40년까지. 5년 차인 나는 그분들에 비하면 새싹이지. 제대로 치는데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몰라. 사람마다 다르고 제대로 친다는 기준점 역시 다르니까.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것 같아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러니 누가 알려주었으면 좋겠어. 탁구를 제대로 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최상위 부수인 1부 고수가 그러더라. 탁구 친 지 20년 되었는데 이제야 탁구에 대해 좀 알겠다고. 그런 게 탁구인가 봐. 탁구라는 게 진짜 어려운 거 같아.”
아! 말이 점점 길어진다. 그녀의 질문에 답이 됐으려나? 답이 충분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횡설수설한다. 단지 먼저 시작한 것뿐인데 마치 탁구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아는 체한다. 탁구에 대해 뭘 안다고.
내가 했던 질문들을 그녀도 똑같이 하고 있다. 그녀의 질문은 이제 시작되었다. 5년 차인 나 역시 여전히 탁구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을 하면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시기마다 질문들은 다르다. 그녀도 다르지 않으리라.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질문들이 그녀에게 쏟아질지. 어쩌면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탁구라는 세계에 발을 내디딘 후배님, 격하게 환영합니다. 탁구라는 늪에 빠질 준비는 되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