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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Jan 15. 2024

116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단  하나'는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대회 나가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토록 오매불망하며 미치도록 원했던 포핸드 드라이브로 결정구를 내자 3구 연습을 함께 하던 이질러버 고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독학으로 5부까지 올라간 그는 올해 62세로 웬만해선 뚫리지 않는 수비와 날카로운 공격으로  젊은 사람들도 까다로워하는 전형이다. 작년에 그는 김좌진배 등 오픈대회 단체전에 나가 여러 번 입상했다.


그는 "인생에서 요즘만큼 행복한 때가 없다. 그런데 젊은이들과 계속해서 대회에 나가려면 실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실력이 되면 팀에 끼워 주겠냐? 그래서 8년 만에 레슨을 받아보기로 했다."라며 탁구에 대한 열정을 활활 불태우신다. 체육센터에서 탁구를 치며 가끔 나타나던 그가 난생 처음 레슨을 받겠다며 탁구장에 박혀 수행을 하겠다며 비장한 마음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의 눈에 난 어떻게 비칠까?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다. 그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은 대략 3가지다. 탁구 로봇을 붙잡고 연습하거나 회원들과 연습하거나 레슨 받거나. 그러곤 유유히 퇴근. 평화롭기 그지없는 세계. 똑같이 탁구를 치고 있는데 그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살고 있고 나는 절대적인 평화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어느 날 그가 물어왔다."게임을 왜 안 하시는 거예요? 지금 당장 하셔도 충분할 것 같은데 " 충분하다 충분하지 않다의 문제가 아닌데.  "고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냉혹한 세계가 제 성향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릇이 작아서 그런가 봅니다. 게임하면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닐 것 같아요. "라고 답했다. 함께 연습을 하던 동생 역시  "언니 누구랑 게임해 봐요. 언니가 이길 것 같은데요? " "아니 나는 그냥 이렇게 연습하는 게 더 좋은데." 라며 얼버무렸다.


탁구장 회원들은 수시로 게임을 하라고 권한다. 아무리 연습이 좋다 해도 소용없다. 그러려니 하다가도 마치 순번이 있는 것처럼 한 번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게임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기에 없기에 하는 말들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부를 내지 않는다니 어이없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 하나 탁구장에서 연습만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 눈치가 좀 보이더라도 내가 즐거운 내가 재미있는 연습을 꿋꿋이 다.


이것도 민폐려나? 아! 모르겠다. 본디 즐겁자고 하는 것이 취미의 본질일진내 본질에 충실하겠다. 그래서 연습하고 싶어 하는 회원들하고만 연습한다. 내 욕심만 차릴 순 없어 "게임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하자고 하세요."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연습하다가도 상대에게 게임할 사람이 나타나면 "게임해야 하지 않나요? " 비켜서기도 한다. 눈치껏 한다.  내 방식만큼 상대의 방식도 중요하니까.


한 번은 고수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늘 씨는 탁구 치면서 스트레스 없지?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데. " 게임 하는 비꼬는 말투였다. 사실이기도 하니까  그저 말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탁구를 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아예 없는 아니다. 스트레스 제로인 세계가 있을까? 승패를 가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없지만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 기술 등 탁구 기술을 어제보다 좀 더 낫게 완성해 나아가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다. 이질 고수님과 3구 연습을 하면서 드라이브에 치중되어 있어도 너무 치중되어 있다는 걸 여실히 알았다. 백 드라이브는 자신감이 뻗치는데 포핸드 드라이브는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걸 주저주저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이질 고수님과의 연습 덕분에 알게 된 포핸드 드라이브 기술의 부족함을 메꾸어 가려고 노력 중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힘들어서 안 하려고 빼먹기 일쑤였던 포핸드 드라이브 기계볼 연습을 시작했다. 백 쪽 연습만 하던 패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레슨도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 두 개의 기술 밸런스를 맞추는데 집중하고 있다. 백 드라이브 하나, 포핸드 드라이브 하나를 연결해서 걸기도 하고 두 개를 불규칙으로 걸기도 하고 백드라이브 하나 하고 백 쪽에서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 하나를 걸기도 한다. 어제는 레슨을 받는데 포핸드 드라이브 거는 게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는 걸   수 있었다. '이렇게 탁구 로봇 연습과 레슨을 병행하며 이질 고수님과 연습하면 금세 좋아지겠는 걸?' 혼자 뿌듯해다.


다시 맨 앞 고수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지금 당장 대회 나가셔도 될 것 같은데요?" 라는 그의 질문에 이번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너무 백 드라이브에 치우쳐 있더라고요. 포핸드 드라이브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고 백 드라이와 포핸드 드라이브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이루면 그때 대회에 나가볼까 합니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랠리를 하던 5부의 젊은 고수가 내 말에 어이가 없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그러려면 한 3년 더 걸리겠는데요?"

"3년이요? 그렇게나 오래요?" 금세 좋아질 거라고 김칫국부터 한 사발 쭉 들이키다가 허를 찔렸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에 자신감이 조금 싹튼 난 다행히 예전처럼 의기소침해지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웃으면서 말했다.  "앞으로 20년 이상(70세까지?) 탁구 칠 건데 3년 걸리면 뭐 어때요? "



그래. 앞으로 탁구 칠 날은 많고도 많지 않은가? 느리게 가더라도 목표인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탁구인'이 되는 길 위에 있으니 너무 조급해지지 말자. 이렇게 한 발씩 나아지면 되지.

'나한텐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이 있지 않은가?'



게리 켈러와 제이 파파산의 책 <원씽>에 훌륭한 답을 찾도록 고안된 훌륭한 질문인 '초점탐색 질문'이라는 개념이 있다. "초점탐색 질문은 큰 그림(Big Picture) 질문(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목표물을 겨냥해야 하는가?) 말고도 작은 초점(Small Focus) 질문(큰 그림 완성하는 길에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답할 수 있게 도와준다."


큰 그림 질문은 "나의 단 하나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탁구에 있어 나의 '단 하나'는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탁구인이 되는 것"이다. 작은 초점 질문은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포핸드 드라이브를 자신감 있게 칠 수 있을 때까지 탁구 로봇 가지고 매일 연습하기, 레슨은 백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 밸런스 맞추는 데 집중하기" 다. 대회에 나가지 않아도 내게 중요한 단 한 가지를 위해  아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단  하나'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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