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이 번쩍거리는 정보통신 시대의 낙오자다
(필사의 말들) 김훈『허송세월』
“나는 이 번쩍거리는 정보통신 시대의 낙오자다. 나는 어지러워서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나의 낙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p.175)
“이제 사람들은 정보의 힘에 이끌려서 살아간다. 이 정보는 선대로부터 전수된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체득한 것이 아니고 원리로부터 유추한 것이 아니다. 이 정보는 외부에서 가공되고 주입된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가 헤아릴 수 없이 넓은 공간을 날아다니면서 소문과 소비와 이윤을 일으킨다. 정보의 비산 거리는 무한하고, 이 무한공간 속에서 정보는 날마다 생겨나고 부딪히고 죽는다.”(p176)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다. 혹자는 유튜브가 새로운 지식 전달의 툴로써 학교보다 더 크게 작동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글 쓰는 방법을 유튜브를 통해 배웠다 해도 모자람이 없다. 당장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끊어 오르는데 어디에서도 글 쓰는 방법을 배워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시작하지?’ 답답했었다. 이때 힘이 되어준 건 글쓰기 선생님들의 유튜브 강의였다. 작가 강원국, 은유의 강의 영상은 통으로 필사하기도 했다. 마치 학교에 다니는 학생처럼 열심히 받아 적고 글 쓸 때 적용하고 싶은 것들은 포스트잇에 따로 옮겨 적었다. 노트북 키보드 한구석에 붙여놓고 수시로 보면서 적용해 나갔다. 응용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예전 같으면 차려입고 시간을 들여 찾아가야만 했던 작가들의 금쪽같은 이야기를 책상 위에서 편하게 받아 적고 있노라면 황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세계도 이런 신세계가 없었다. 소리를 크게 해 설거지를 하면서도 듣고 빨래를 개키면서도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내 세계도 듣고 보는 영상들만큼이나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글이 삶보다 너무 앞서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요. 제 글이 생활의 반경을 떠나지 않는 것도 책임의식 때문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을 쓰는 게 윤리적인 것 같아요.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여지를 조금씩 넓혀 나가는 거지요. ”라는 작가 은유에게 반해 그녀를 글쓰기의 롤모델로 삼았다. 생활을 떠나지 않는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이렇듯 나의 글쓰기는 유튜브 선생님들로 인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라고 해피엔딩으로 끝내면 좋겠지만 인생사 다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다.
책을 읽은 후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나보다. 너무 깊게 빠져버렸다. 작가들 영상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알고리즘을 타고 온 영상들은 아침마다 내게 속삭였다. ‘이거 안 봤지? 이거 한 번 봐 봐. 네게 큰 도움이 될 거야.’ 영상들은 내게 배달비도 받지 않은 채 매일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마치 봐야 할 숙제처럼 영상들이 쌓이면서 지치기 시작했다.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뭘 다 보려고 그래. 선택해서 보면 되잖아. ” 나도 그렇게 쿨했으면 좋겠다.
이 작가의 영상도 도움이 될 것 같고 저 작가의 영상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보고 싶은 영상은 많은데 머리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니 소화되지 않은 채 찜찜한 마음만 쌓여갔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 작가의 강의를 노트에 적고 있는데 '이게 뭐 하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내 생각은 없고 작가들 생각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그들의 생각에 파묻히다간 내 생각은 온데간데 사라질 것만 같았다. 가도 너무 갔다. 어째서 세상엔 양극단만 있는 건지 아니면 나만 양극단의 소유자인 건지. 잘 모르겠고 나부터 살아야겠다. 정신건강을 위해, 나의 고유한 생각을 보호하기 위해 작가들의 유튜브 영상을 당분간 끊기로 했다. ‘그래, 내가 모든 작가들의 생각을 다 알 필요는 없잖아?’ 냉큼 나를 안심시켰다. 유튜브와의 거리가 필요했다. 쏟아지는 정보와의 거리도 필요했다. 휴우! 숨 좀 쉬자고요.
그러던 어느 날,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당분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손가락은 유튜브 검색창에 작가 한강이라고 쓰고 있었다. 영상들은 흘러넘쳤다. 한강의 강의, 한강 책에 대한 다양한 해석, 20대부터 지금까지 했던 말들,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 분석 등등. 마치 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처럼(한국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일명 국뽕에 취해서) 감격해 작가 본인이 말하는 영상 3-4개를 이틀에 걸쳐 보았다. 이쯤이면 감동의 순간을 만끽했다 싶어 다시 유튜브 시청을 끊었다. 하지만 한강 관련 영상은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배달되어 왔다.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인가 다른 알고리즘으로 뒤덮이더니 사라졌다. 이렇게 정보는 날마다 생겨나고 부딪히고 죽는 걸까?
“나는 이 번쩍거리는 정보통신 시대의 낙오자다. 나는 어지러워서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나의 낙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라며 쿨하게 인정하고 다른 삶을 선택한 작가가 부럽다. 나도 그처럼 어지럽지만 대열에서 이탈하고 싶진 않다. 사실 그처럼 이탈해서 살 자신이 없다. 글 쓰는 방법을 배우고, 글 쓰는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지 배우고 만나고 싶은 작가를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유튜브는 내게 있어 선생님이다. 때론 선생님이 너무 많은 정보를 줘 토할 것 같지만 글을 쓰는 한 함께 가야 한다. 잘 데리고 가야 한다. 지금은 잘 데리고 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보가 헤아릴 수 없이 넓은 공간을 날아다니는 곳에서 길을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가공되고 주입된 정보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지금은 쏟아지는 정보들을 어떻게 취사선택할지
기준점이 서질 않아 겪고 있는 시기려니 생각하려 한다. 차츰 방향성을 찾아 가리라. 내게 맞는 방식이 찾아지리라.
사람들도 나만큼 과잉 소음, 과잉 연결이 버거운가 보다. 한 트렌드 분석가가 말하길 2025년도 마케팅 트렌드가 ‘조용함’ 이란다. 너무 시끄럽게 살고 있어 조용한 것이 욕망이 되었다고 한다. 조용함도 욕망이 될 수 있다니! 그런데 이걸 어디서 알았냐고요? 아주 친밀한 우리의 유튜브 알고리즘의 안내를 받아 알게 되었답니다.
이런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