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만족감 또한 다른 감정처럼 섬세하게 다듬어라
(필사의 말들) 김경일 『적정한 삶』
“나의 불안과 결핍을 제대로 감지하고 정확히 이해하듯 만족감 또한 다른 감정처럼 섬세하게 다듬어서 가장 친근한 심리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 기술이 바로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쟁취하는 무기가 될 것이다. 맥주는 얼마나 먹어야 충분한지, 여행은 1년에 몇 번을 가야 행복한지, 돈은 어느 정도 벌어야 살 만한지 내 삶의 과목별 만족의 지점을 조심스럽게 알아차리는 것이 지금부터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P.10)
“현대 자본주의는 무한대로 욕망을 추구하라고 부추겼고 많은 질병을 낳았다. 나의 만족감을 똑똑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은 삶을 꾸려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인데 말이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정밀하고 똑똑한 만족감을 배워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만족의 기준은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닌 나 스스로의 보람만이 나의 만족을 만들어 낼 수 있다.(p.352)
오늘 운동은 첫 단추부터가 루틴에서 벗어났다. 원래는 탁구장에 도착하자마자 탁구 로봇이 있는 기계실에 들어간다. 레슨이 있는 날은 레슨 받을 기술들을 연습하거나 레슨이 없는 날은 나름대로 짜 놓은 시스템을 연습한다. 로봇과 연습하는 회원이 있어 한 회원과 화백 랠리를 시작한다. 레슨 순서가 바로 다음이라 10분 정도 연습한 것 같다. 앞사람의 레슨 시간이 끝났다는 알람이 울리고 그가 공을 줍는 사이 잠깐 기계실에 들어가 드라이브를 연습한다.
연습시간도 촉박한데 한 고수님이 “지난번 알려준 백 서비스 연습 잘 되고 있어요?”라며 성큼 들어온다. 시범을 보이더니 따라 하라고 한다. 2-3번을 따라 하다 허겁지겁 레슨실로 불려 들어간다. 원래 빠릿빠릿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다. 탁구 로봇과의 연습과 레슨 사이, 회원들과의 연습 사이사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인간이다. 휘리릭 빠르게 전개되는 진행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 만약 정신이 숨이 찬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숨 한 번 안 쉬고 들어갔더니 레슨 받을 때의 집중력 역시 현저히 떨어진다. 전날과 비교해 확실히 공 하나하나에 마음을 다할 수 없다. 숨 가쁘게 레슨을 마치고 나왔더니 한 회원이 덩그러니 홀로 앉아 있다. 얼굴 가득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숨이 차 평상시라면 쉬어야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연습하시겠어요?” 보통 때 같으면 화백 랠리를 한 후, 백쪽에서 돌아서 스매싱하는 연습을 하는데 오늘은 분명 뭐에 씐 날임에 틀림없다. 내가 먼저 3구 연습을 하자고 한다. 뭐지? 일이 요상하게 돌아간다. 40분 정도 3구 연습을 한 뒤에야 연습이 끝났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매일 해오던 연습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란 걸 마음이란 놈은 이미 알고 있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 순간에도 운동을 제대로 했다는 만족감이 없어 찜찜하다.
탁구 칠 때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내가 정한 하루 연습루틴을 충실하게 이행했을 때와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게 탁구를 쳐 머릿속이 텅 비었을 때다. 오늘은 둘 다 충족되지 않았기에 기분이 산뜻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닌 나 스스로의 만족이 충족되질 않아서 상쾌하지 않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뭐에 씐 게 분명하다니까. 집으로 향하는 찰나 오늘로 아르바이트가 끝났다는 동생이 “언니, 맥주 한잔하고 가요.”라며 붙잡는다. 평일이라 보통 때라면 거절했을 텐데 웬일로 따라나선다. 운동에 대한 만족감을 맥주로 대신 채우려는 건가? 그런데 맥주 맛이 영 별로다. 예전 같았으면 운동을 빡세게 해서 꿀맛이었을 맥주가 오늘은 내가 한 운동처럼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다. 집에 와서도 기분이 영 별로다. 만족스럽지 못한 운동의 찜찜함은 그렇게 집까지 쫓아왔다. 이게 무슨 도미노 현상이란 말인가?
저자는 자기를 아는 것, 자기 만족감과 자기의 행복이 어떤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로부터 오는지 아는 것이 적정한 삶의 기본이 된다고 말한다. 탁구 칠 때 나는 내 만족감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매일 만족감을 느끼고 살면 좋겠지만 오늘처럼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그렇지 못한 날도 부지기수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어떻게 해야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알려주는 날이었을까? 그의 말처럼 만족감 또한 다른 감정처럼 섬세하게 다듬어서 친근한 심리로 만들어야 하나?
확실한 건 맥주는 두 캔 정도면 충분하고 여행도 자주 가는 것이 아닌 세 달이나 네 달에 한 번 정도 가면 족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부분별 만족도의 기준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다. 삶의 과목별 만족의 지점을 알아내는 것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모두의 만족이 아니라 나만의 만족 포인트를 알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같은 날도 겪으면서 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아야 하리라.
그럼에도 내일 탁구장에 가면 오늘 만족하지 못한 운동에 대한 미련이 덕지덕지 남아 탁구장을 두배로 뛰어다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 못한 로봇과의 연습도 분명 채워 넣을 것이고. 그래야 만족감을 느끼는 인간이다. 그래야 행복을 느끼는 인간이다. 만족의 지점을 찾은 건 좋은 일이나 때로는 이러는 내가 너무 버겁고 부담스럽다.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날이 분명 앞으로도 수두룩 빽빽일 텐데 기어이 오늘 느끼지 못한 만족감을 채워 넣겠다며 용쓸 내일의 내가 무섭다. 어찌 매일 만족감을 느끼며 살 수 있단 말인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날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없이 잘 흘려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