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몇 시간 잤을 때 다음날 가장 지혜롭고 행복해지는가
(필사의 말들) 김경일 『적정한 삶』
“자네는 몇 시간 자는 사람인가?
몇 시간을 잤을 때, 다음날 가장 지혜롭고 행복해지는가를 묻는 걸세.”
“사람은 롱슬리퍼(Long sleeper)와 숏슬리퍼(Short sleeper)로 나뉜다. 롱슬리퍼의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10시간도 넘게 자는 대단한 롱슬리퍼였지만 한국 어린이들이 읽는 아인슈타인 전기에는 그런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유명한 숏슬리퍼인 에디슨이 하루에 3시간만 잤다는 내용은 거의 모든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p.331)
나는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처럼 하루 평균 8시간을 자야 하는 롱슬리퍼다. 롱슬리퍼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롱슬리퍼라는 걸 사람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잠을 가장 죄악시하는 나라이기도하거니와 ‘10시간 잔다.’라고 말하지 않고 ‘10시간 쳐 잔다.’라고 표현하는 나라이기에 ‘잠만 쳐 자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조심하는 거다. 하필 잠으로 가장 빡센 나라에서 태어나서는!
한 번은 누군가 물어왔다. “하루 평균 몇 시간 자요? 저는 6시간 이상은 못 자겠더라고요.” 그 눈빛엔 ‘나는 이만큼 부지런히 열심히 살고 있다고요. ’라는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저는 8시간은 자야 일상생활이 제대로 돌아가더라고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저는 6시간 이상은 자야겠더라고요.”라며 적당히 얼버무렸다. 마치 많이 자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아 정체를 꽁꽁 숨겼다.
하지만 숨긴다고 해서 마냥 숨길 수만은 없는 법. 친한 지인들에게 곧 탄로가 났다. 1년 가까이 네 명이 팀을 이뤄 낮 시간에 탁구를 친 적이 있다. 함께 점심을 먹고 운동하는 날도 있었는데 이런 날이면 그녀들에게 10분에서 20분 낮잠을 자고 오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잠깐이라도 낮잠을 자지 않으면 몽롱해서 운동에 집중할 수 없어요.”가 이유였다. 정말 그랬다. 집중하지 못한 채 깨어 있기만 한 것 같은 시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차해 놓은 차 시트에 누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왔다.
“참 특이하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잠이 자 져요?” 그녀들은 신기해했고 나는 내가 특이하다는 걸 알았다. 아! 나는 집중되지 않는 시간들을 힘들어하는구나.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질이 중요한 사람이구나.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한결 수월하다. 그녀들은 그러려니 했고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인가 “점심 먹고 잠깐 눈 붙이는 게 루틴이에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이때부터였나 보다. 숨기기 급급했던 수면시간을 여기저기 공개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당당하게 말하기엔 쑥스럽지만 예전보단 편해졌다. “저는 8시간 이상 자야 하더라고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눈빛이 ‘그렇게 많이 자?’ 물어올 때도 있지만 더 이상 움츠러들진 않는다. 8시간 이상을 자야 하는 이유도 낮잠을 자는 이유도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히 자지 않으면 깨어 있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깨어 있는 시간에는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인정하게 되었다.
깨어 있는 시간의 질을 높이려 그렇게 틈틈이 자려했나 보다. 틈만 나면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는 내 행동이 이해가 된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머리가 꽉 찼다 싶으면 30분 정도 알람을 맞추고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난다. 그러고 나면 분명 오늘 읽은 책인데 어제 읽은 것 마냥 책 내용과 거리감이 생긴다. 다음 일을 할 힘도 생긴다. 필사한 양이 많아 과부하가 걸려도, 작가의 강의를 통째로 필사하다 숨이 차도 잠깐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 다시 뭔가에 집중할 에너지가 생긴다. 몇 시간 동안 글을 써서 온몸이 소진된 느낌이 들면 또 냉큼 침대로 향한다. 저녁 운동을 가기 전 잠깐 소파에서 눈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건 “깨어 있는 시간에는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라는 나의 욕망 때문이다.
몇 시간 잤을 때 가장 지혜롭고 행복해지냐고요?
“8시간 이상 자야 하고 틈틈이도 자야 합니다.”
물론 매번 이렇게 따박따박 원하는 시간만큼 챙겨 잘 순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롱슬리퍼인 나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인정했다는 게 어딘가? 어쩌면 어떤 건 다른 사람보다 나를 납득시키는 게 더 어려울 때가 있다. 평생 함께 해야 할 잠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 다행이다. 잠을 줄이라는 말에 주눅 들지 않고 살 수 있어 다행이다. 글 한 편을 끝냈으니 이제 잠깐 눈을 붙이고 다른 일을 도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