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을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 이번엔 다를 거라고 믿는것

(필사의 말들) 베르나르 베르베르 『파피용』

by 하늘

“평화 다음에는 전쟁.

중앙 집권화 다음에는 분권화.

대도시들 다음에는 작은 마을들.

의회 체제 다음에는 독재 체제.

안정 다음에는 광란.

무정부 상태 다음에는 전체주의.

학살 다음에는 출생.

화려한 패션 다음에는 경직된 패션.

파피용호의 탑승자들은 이렇게 후세 사람들이 <인간 무리의 역사적인 호흡>이라고 정의한 순환을 겪고 있었다.”(p.307)

지구에 희망이 없게 되자 14만 4천 명이 파피용이라는 우주 범선을 타고 천 년간 여행한다는 이야기. 애초에 갈등을 없애고자 종교나 차별, 성격 등을 모두 고려해 선발된 14만 4천 명. 하지만 1세대가 모두 죽고 2세대, 3세대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유발되고 지구에서처럼 종교, 국가, 권력 등이 파피용호 안에 등장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반복되는 일들이 우주선 안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새로운 세상을 원해 떠났지만, 또다시 <인간 무리의 역사적인 호흡>이라고 정의한 역사의 순환이 되풀이된다.

그럼 왜 우리는 왜 이런 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존 세상을 비난하고 혁신을 원하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순환 속에서는 결국 도돌이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왜 항상 같은 도식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거지? 인간이란 존재를 쉽게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요. 우리 모두는 타인에 대한 편집광적인 인식 체계를 지니게 되었어요. 젊은 시절에 우리 부모들, 학교, 일터, 텔레비전이 우리를 눌러서 거푸집에 넣어 버린 결과죠. 거기서 쉽게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요. 여러 해 동안 우주여행을 해도 그렇게 우리 의식 속에 뿌리내린 것들을 뽑아내기는 어려워요.”(p.244) 인간이란 존재가 그리 쉽게 변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겠고, 그래서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것도 알겠다. 그렇다면 쉽게 변하기 어려운 존재인 나는 이 거대한 역사의 순환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번역가 황석희 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가 좋아하는 뮤지컬 <하데스 타운> 역시 인류 역사의 순환과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하데스의 유혹에 빠진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하데스 타운에 내려간 오르페우스.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보내주며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고 오르페우스는 결국 뒤를 돌아봤다가 에우리디케를 잃는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에우리디케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무한 반복의 플롯이다. 그가 좋아한다는 대사에서 내 나름의 답을 얻었다. “결말을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 이번엔 다를 거라고 믿는 것.” 거대한 역사의 순환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든 시도해 보는 것이 아닐까? 결말을 알면서도 시도해 보는 것,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믿고 나가는 것만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아야 할 방향성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역사의 순환이 하나의 시스템이라면, 이 시스템 속에 있는 자그마한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떤 일이든 이번엔 조금은 다를 거라는 믿음의 한 조각이지 않을까? 이런 믿음이 없다면 이런 희망이 없다면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 『파피용』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엘리자베트와 맥 나마라는 마치 프로젝트의 전진이 생물학적 재건 과정에 불을 지피기라도 한 것처럼 건강이 좋아졌다.”(p.132) 요트 챔피언이었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엘리자베트 말로리와 폐암에 걸린 억만장자 가브리엘 맥나마라 역시 새 행성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 덕분에 건강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희망은 우리를 나아가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살아있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지구의 일도 해결하지 못한 채 멀리 있는 별을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이지만 결과를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 결과를 알면서도 시도를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면 조금은 납득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실패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시도했을 거요. 누군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이오.”(p.162)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역시 이번엔 다를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세대에 걸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오늘 또다시 시도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결과론적으로는 비슷비슷하게 역사가 순환되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각자 이 안에서 계속해서 시도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살다 가는 건가? 나의 이전 세대가 그랬듯 내가 그러하듯 나의 다음 세대 역.


인간이란 존재는 쉽게 변할 수 없어 항상 같은 도식에서 빠져나올 수 없지만 반대로 인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결말을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 이번엔 다를 거라고 믿는 것.” 인간이 이런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뭔가를 끊임없이 시도하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적어도 시도는 해 봤으니까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결말을 알면서도 노래하고 있다. 엄청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쓴 글이 어제 쓴 글보다는 조금은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다. 설령 다르지 않더라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들인다. 결말을 알면서도 쓰는 것밖에는 나를 나아가게 하고 시도하게 하는 게 없으니까. “결말을 알면서도 노래하는 것” 이런 일상이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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