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동굴에서 잘 쉬고 나왔을 때 에너지가 생깁니다.

(필사의 말들) 김경일 『마음의 지혜』

by 하늘

“내향인을 대표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겐 길고 확실한 나만의 동굴이 필요합니다. 전 동굴에서 잘 쉬고 나왔을 때 에너지가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친구들 앞에서 활기차게 말을 할 수 있고 장난도 잘 칩니다.”(p.26)

누군가를 만나 2-3시간 이야기라도 나누고 오는 날이면 진이 빠진다. 잠깐이라도 누워 있어야 하고 긴 시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본래의 나로 돌아온 것 같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외부에 쓸 사회적인 자원이 적지만 내면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어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집중력을 얻으면 다시 세상에 나와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이 맞는 듯하다. 주중에 모임이라도 한 번 있으면 꼬박 일주일을 집에서 칩거해야만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돌아온 것 같고 다시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생기니 말이다.

사람들 속 세상 속에 오랜 시간 있다 보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기질의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이런 기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의 조언이 8할의 역할을 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격, 못 고칩니다. 성격은 다른 말로 속성, 혹은 기질이라고 하는데 다시 말해 타고난 것이지요. 내 성격의 장점을 잘 살리는 것을 우리는 ‘성숙하다.’라고 말합니다. 저 또한 제게 필요한 적정 수준의 에너지와 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p.28)” 그래. 못 고친다잖아. 이런 성격의 나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나는 왜 이 모양이지?’라는 자책을 항상 품고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유와 행복을 가로막는 이러한 자책에서 해방시켜 주는 그의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렇게 타고난 나를 질책하기보다는 단지 사회적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먼저였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은 숱하게 하면서도 정작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건 이렇듯 쉽지 않다.


아! 내가 사회적 에너지가 없는 인간이었구나!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치고 바꿔야 할 개조해야 할 인간이 아니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일 내가 아니다. 무의식 중에 나머지 2할을 찾고 있었는데 김경미 시인의 <약속이라면>라는 시가 딱이었다. “두세 달에 한 명이면 충분하죠. 그 이상은 교제가 과합니다 과해요. 한 번 만나고 오면 맥 수치가 영점 이하로 떨어지니 덕분에 불과 몇 사람 만에 일 년 치 약속이 이미 꽉 찼습니다. 일곱 번째 약속은 할 수 없이 내년으로 넘깁니다.” 이 시를 읽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살고 있고, 나보다 더하지만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는 그녀의 안부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김경일 교수에 이은 김경미 시인의 응원가. 이런 응원가는 많을수록 좋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내게 주어진 에너지를 적절하게 사용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였다. ‘이번 주에 사회적 에너지를 얼마나 썼지? 조절이 좀 필요한 거 아냐?’ 체크하면서 살면 되는 거였다. 사회적 에너지를 어느 정도 쓸 때 최적의 만족감을 느끼지? 알아가면 되는 거였다.

주중에 외출 한 번 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정기적인 모임을 4개나 하고 있다면?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겠지? 하지만 인생은 모순덩어리이고 내 인생 역시 이 모순 속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모순과 손을 맞잡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에 두 번 만나는 대면 독서 모임, 한 달에 한 번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문화체험 모임, 한 달에 한 번 엄마, 여동생 셋이 이곳저곳을 다니는 친정 모임, 두 달에 한 번 줌을 통해 만나는 전국구 독서 토론. 이렇게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모임 외에도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 번 일대일로 만나는 동네 지인이 있고, 그녀와 함께 서울에서 가끔 내려오는 또 다른 지인을 만나는 모임도 있다. 이 모임들만으로도 한 달이 ‘꽉’ 차 있다.


그나마 한 달에 두 번 만나는 대면 독서 모임이 아이들 여름, 겨울 방학 때 두세 달 휴식기를 갖고, 한 달에 한 번 참석이 원칙인 줌 토론의 경우 자체조절을 통해 두 달에 한 번 참석하기에 사회적 에너지가 적은 내가 이렇게나 많은 모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아마 진즉에 모임에 눌려 압사당했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4개의 정기적인 모임을 잘 유지하는 것,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번 달에 모임을 몇 번 가졌지?’ 주기적으로 체크하지 않으면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고 만다. 여기까지가 딱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모임의 최대치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였던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탁구장 동생 둘과 급속히 친해지면서 또 하나의 모임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지면서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마음속에서는 ‘모임 한도초과’라는 경보음이 ‘삐요삐요’ 울렸지만 이제 막 만들어진 모임의 신선함은 적색경보를 무용지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분명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특히 나이 차이가 있는 동생들과 탁구는 물론이고 개인적인 취향, 남녀 생각의 차이, 세대 차이 등 여러 주제들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구장은 물론 구장 밖에서도 소소한 만남을 이어갔는데 연말쯤 과부하가 걸렸다는 걸 심리적 평형 상태가 깨졌다는 걸 알았다. 누구도 모르고 나만 안다.

그렇게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닌데 사회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는 걸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걸 알았다. 굴을 파고 들어가야 할 때가 왔다는 걸, 길고 확실한 나만의 동굴에서 푹 쉬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 심리적 평행 상태의 회복은 늘 그렇듯 집에서 홀로 조용한 시간을 갖는 거였다. 12월 29일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자체 방학을 한 후 두문불출 집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2025년 내가 한 일을 돌아보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을 읽어가기로 했다. 각기 다른 모임 톡방마다 들어가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가만히 살펴보기도 하고, 수북이 쌓여있는 핸드폰 갤러리 사진들을 찬찬히 보기도 했다.

탁구장 모임은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사진들을 통해 일 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일들을 하고 다른 공간들로의 변화무쌍한 이동을 확인하면서부터였다. ‘사회적 에너지 적은 사람 맞아?’ 할 정도로 많은 시간, 바깥세상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 년 치 에너지 총량보다 훨씬 많이 썼으니 몸이 알아서 굴을 파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방전되었다고나 할까? 사이사이, 잠깐잠깐 충전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걸 못해 연말에 한꺼번에 몰아서 충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총량의 법칙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이미 다 써린 에너지를 어떻게든 충전하고자 길고 긴 동굴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휴식을 취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주일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년 치 총량을 다 쓴 것 같아 일 년이 통째로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분간 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올해는 아무래도 길고 확실한 나만의 동굴에서 잘 쉬는 해로 보내게 될 것 같다.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기질의 나를 긍정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지 않을까? 사회적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는 사람으로서 에너지를 얼마나 썼을 때 최적의 만족감을 느끼는지, 얼마나 썼을 때 고갈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다. 화가 프리다 칼로를 다룬 영화 '프리다'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프리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너 자신이 되고 싶었어." 우리는 일생을 통해 나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부터가 나에 대한 탐구부터가 시작이 아닐런지. 지금은 에너지가 다시 생길 때까지 동굴에서 잘 쉬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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