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도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 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가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p.429)
나 역시 식료품 상점과도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덧셈과 뺄셈의 계산기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머릿속에 저울 한 벌을 넣어두고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넉넉지 않았던 신혼 초부터 20년 이상 가계부를 써오면서 이러한 버릇은 더 강화된 듯하다. 사용한 돈의 출처를 수십 년 적다 보면 어느 순간 저울 한 벌이 몸의 일부가 된다. 머릿속 저울은 장을 보면서도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얼마를 지불했는지 1차로 계산한 후에는 2차로는 지불한 금액이 득인지 손해인지 다시 계산한다. 지극히 계산적인 인간이 되었다. 계산하려고 들면 세상은 계산할 것 천지다. 때론 이런 내가 너무 싫어 “이 정도쯤은 계산기를 돌리지 않겠다” 큰소리쳐 보지만 머릿속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저울은 이미 계산을 끝내놓고 속삭인다. “이것 좀 봐. 오늘은 얼마를 썼네. 뭐가 손해고 뭐가 이득이야?” 가끔은 저울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건만 번번이 실패한다. 신체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머릿속 저울의 통제를 받고 살고 있는 것이다.
분명 내가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니었을 텐데 그리 되었다. 그나마 가계부를 쓰면서 계산적인 인간으로 몇십 년만 살면 남편의 퇴직 후에는 이러한 일상에서 좀 자유로워질수 있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다. 쉽진 않겠지만 머릿속 저울을 며칠쯤은 빼놓았다 다시 넣을 수 있는 날을 꿈꿨다. 그런데 내가 만든 ‘남편의 퇴직 이후’라는 기준점은 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유물이었나 보다. 임금피크제 시행 전 정산된 남편의 퇴직금이 연금 계좌에 입금되면서 전혀 다른 시대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DC형이라고 불리는 퇴직연금 계좌를 스스로 운용해야 한단다. DC형이 뭔지도 처음 들어봤는데 운용까지 하라고?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균등한 것은 아니다.”라는 윌리엄 깁슨의 말처럼 이미 이런 시대였는데 나만 몰랐나? 퇴직 후 열심히 일한 대가인 퇴직금으로 편하게 살 줄 알았는데 ‘ 아니, 이거 다른 종류의 저울이 하나 추가된 거 아냐?’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퇴직금을 운용해야 된다는 것까지는 시대의 흐름이니 거부할 수 없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DC형 퇴직연금이 뭔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정체부터 알아야 했다. 우선 DC형 퇴직연금에 대한 블로거들의 글을 읽고, 유튜브 영상들을 보기도 하고, CHAT GPT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DC형 퇴직연금이 무엇인지,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가닥을 잡으려 했다. 운용하는 법의 정보는 그야말로 차고 넘쳤는데 전문가나 일반인 할 것 없이 미국의 에스엔피 500 ETF, 나스닥 100 ETF, 다우존스 배당 ETF, 금현물 ETF 등의 금융 상품을 비율을 정해 사라는 것이었다. 얘네들은 또 뭐지? 낯선 금융 용어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금융 문맹인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ETF의 뜻을 찾아보니 상장 개방형 펀드로 주로 주가지수나 채권가 지수 등 특정 지수를 추종하여 거래소에 상장되어 거래되는 펀드라고 한다. 펀드라고는 절세를 위해 20년 전 가입한 연금저축 펀드가 유일하고 코스피밖에 모르는데 미국 지수 추종 펀드를 사라고? 100년의 역사 동안 연 10프로의 수익을 내 온 에스엔피 500 ETF를 사야 한다며 너도나도 외치고 있었다. 에스엔피 500이 뭔지도 모르는데? 아니, 언제부터 우리의 투자 환경이 이렇게 글로벌해졌지? 과연 미래는 이미 와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 것이다.
남편의 몇십 년 수고가 담긴 퇴직금을 당장 운용해야 했기에 투자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게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투자라는 세계에 입문했다. 달라진 시대, 변해 버린 투자 환경을 알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했다. 연금 운영법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반복해서 들으니 어느새 교집합도 생기고 뼈대가 잡히는 듯했으나 그럼에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둘 다 투자의 세계에선 말 그대로 초짜였다. 그것도 자발적이 아니라 떠밀려 온 사람들. 다만 남편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남편은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의 조언을 대체로 따르는 사람이고 나는 금융 언어들의 정체부터 시작해서 왜 이 상품에 투자해야 하는지 알아야 되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투자의 세계는 무식하게 계산기만 돌릴 줄 알았던 내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유튜브를 넘나들며 새로 알게 된 정보를 통해 은행에 있는 IRP 계좌를 증권사로 옮기려고 하니 은행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객이 떠나는 걸 붙잡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퇴직 전 자산운용 방법과 퇴직 후 세금문제에 대한 조언을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어 약속을 잡고 못 알아들으면 상담의 의미가 없겠다 싶어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 필사를 하면서 어떻게든 금융 언어들과 친해지려고 용을 썼다. 필사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상담 말미에 직원으로부터 “금융권에서 일하셨어요? 거의 다 알아들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알아들었을 뿐 운용은 다른 문제였다. 우리에게 던져진 이 숙제를 어떻게 하면 잘 끝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아침마다 알고리즘이 차려주는 연금 운영법의 유튜브 영상들을 2주쯤 정신없이 먹어치우다 보니 한 번에 모든 걸 알아내겠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알았다. 어느 세계나 입문이 끝나야 기본으로 넘어가고 심화로 넘어갈 수 있는데 나는 이 과정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투자에 대한 공부는 앞으로 수년이 걸릴지 수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 우선 입문 과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공부는 차차 하기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다. 다행히 투자에 관심이 많은 지인이 있어 퇴직금 운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남편과 같은 회사의 직원 와이프라 비슷한 조건이어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 와닿았다. 수년 전부터 모임 회원들에게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 왔는데, 그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는데 이번에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다. 바로 내 옆 사람의 이야기라 더 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투자 노트를 만들어 연금 운용에 대한 입문용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서 필요하다 싶은 정보를 기록하는 것도 병행했다. 은행 직원과 지인을 만나고 투자 노트가 반 정도 채워졌음에도 운용 방법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남편과 함께 증권회사 직원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산 규모부터 알아야 연금 운용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산에는 부동산 자산, 연금성 자산, 현금성 자산이 있는데 이것들의 총합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의 비율을 앞으로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퇴직연금도 그에 맞춰 방향성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퇴직연금 운용이 쏘아 올린 공은 집안의 자산을 세세하고도 적나라하게 A4 용지 한 장에 정리하게 했고, 우리가 가진 자산의 실체를 흰 종이 위 숫자들로 마주하게 되었다. 자산 전체에서 보자면 퇴직 연금 운용은 일부이자 파편일 뿐이었다. 퇴직 연금 운용 포트폴리오를 짤 게 아니라 자산 전체 운용의 포트폴리오를 짜야할 시기가 왔다는 걸 알았다.
설 연휴 내내 자산의 현재 비율은 적당한지, 적당하지 않다면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 남편과 긴 회의에 들어갔다. 자산 포트 폴리오 조정에서부터 퇴직연금 포트 폴리오 구성과 비율까지 약 한 달간 이 일에 파묻혀 살았다.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사이사이 공부를 병행하면서 투자라는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무슨 금융상품 이름이 이렇게나 많고 잘게 잘게 쪼개져 있는지 놀랐다. 성격상 금융 용어와 사람들이 투자하라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지라 이것저것 공부하느라 투자라는 세계에 한 달간 푹 담겨 있었다. 지금도 몇 가지는 진행 중이다. 애당초 그렇게 금세 끝날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투자라는 낯선 세계가 신기해 보는 족족, 듣는 족족 보고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의 소중한 시간들이 투자 포트 폴리오 짜는 시간들로 대체되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퇴직 후 연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는데 어째 전보다 더 계산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전체 자산 중 투자 비율을 정하고, 포트 폴리오를 짜고 그대로 실행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 역시 착각이었다. 포트폴리오를 주기적으로 들여다보고 리밸런싱을 해야 한단다. 평생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어째 이상하다. 왜 점점 더 숫자에 갇히는 것 같지? 투자를 하고 난 뒤의 일상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분명 투자한 후에는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거금이 투자되었기에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안 보는 건 불가능했다. 평소 관심 없던 다우지수는 물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코스피 지수를 확인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증권회사의 투자창을 들여다봤다. 투자 상품이 올랐나? 떨어졌나? 빨갛고 파란 숫자들이 빠르게 변하며 그날의 시황을 알려주었는데 내 마음도 색깔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유튜브 역시 온통 연금 아니면 투자에 관한 영상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켰다. 퇴직 연금 운용에 떠밀려 투자라는 세계에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일상은 기승전 투자로 잠식되어 버렸다.
분명 내가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니었을 텐데 그리 되었다. 두 번째 변명. 계산적인 사람인 게 싫어서 머릿속 저울을 가끔은 내팽개치고 싶다던 사람이 투자의 세계에 입문하더니 그야말로 경제적 인간(호모에코노미쿠스; 윤리. 종교적인 동기를 배제하고 자신의 경제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거듭난 듯하다. 숫자는 숫자일 뿐인데 숫자들에 제대로 갇혀 버렸다. 갑갑하고 답답했다.
마침 돈과 이웃을 주제로 한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가 마지막 주 토론 도서라 이 소설로 냅다 도망쳤다. 나만 이런 건가? 소설에서 위안받고 싶었다. 해설을 맡은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신자유적인 이념이나 제도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신자유주의 그 자체‘로서’, 신자유주의적 존재로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이후를 말하는 건 꽤 어려워진다. 이념이나 제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다르게 사는 것은 우리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P.299) 계산적인 인간을 거쳐 ‘경제적 인간’이 되었다. 정녕 다르게 사는 방법은 정말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된 걸까? 이젠 머릿속에 저울이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저울들이 포트폴리오를 이루어 장착되어 있는 듯하다. 식료품 상점 같은 머리로 평생 계산만 하다 죽고 싶진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