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그럴 필요 없는데, 아니 그래선 안 되는데, 언제나 경제적인 인간으로만 살아가게 되어버린 우리가 이 책에 있다." (p.299)
퇴직을 2년 앞둔 어느 날 퇴직연금 DC형 계좌에 정산된 퇴직금이 입금되면서 잔잔하던 일상에 그야말로 투자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퇴직연금 DC형은 각자가 알아서 운용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마다 수익률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블로거, 유튜브, CHAT GPT 등을 통해 알게 된 퇴직금 운용 방법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언제부터 에스엔피 500, 나스닥 100, 다우존스 배당 ETF가 투자의 기본값이 되었지? 글로벌해진 투자 환경에 놀라고, 이러한 방법으로 수십 년에서 몇 년째 투자 중인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들과 나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구나!
고령화 사회이기에 퇴직 후 모아놓은 돈으로 살아야 할 기간이 최소 30년 이상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더 바빠졌다. 이제라도 연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운용 시스템을 짜는데 매진하기로 했다. 남편이 고생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지키는 일이자 노후 생활의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솔직히 이곳에 생존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나 민망하고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기도 했다. 실은 탐욕인데 욕구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솔직히 재산을 늘리고 싶으면서 노후를 핑계 삼아 내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었지만 모른 체했다. 그렇게 투자라는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우선 금융 문맹이라는 걸 빠르게 인정하고 낯선 금융 용어와 운용 방법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했다. 공부하는 사이사이, 오랜 기간 금융상품에 투자해 온 지인을 만나 연금 운용방법에 대한 실제 사례를 듣기도 했고, 증권사 직원을 만나 상담을 하기도 했다. “전체 자산 중 퇴직 연금 비율이 어떻게 되죠? 그걸 알아야 연금 운용의 방향성을 알 수 있어요.”라는 증권사 직원 한 마디에 자산 현황을 A4용지 한 장에 적어보기도 했다. 지금쯤은 알고 있어야 것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때가 되어 한자리에 모인 듯했다. 종이 위에 적힌 숫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퇴직 전 인생 성적표를 받아 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잘 산 건가? 아닌가?
부동산 자산, 연금성 자산, 현금성 자산으로 나누고 비율을 계산해 보니 대략 7:2:1 정도였다. 아이들이 대학에 간 후, 평수를 줄여 이사 가기로 마음먹고 산 집이 있었는데 거실 창 가득 나지막한 산 전체가 보이는 지금의 집을 포기할 수 없어 세를 주고 있어 부동산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지방 아파트지만 보유세가 강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퇴직 후 현금성 자산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비상시에 흔들리지 않는 노후생활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이번 기회에 매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을 내놓은 지 일주일도 안 돼 팔려버렸다. 3-5개월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약과 동시에 이틀 후 잔금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빨라도 너무 빠른 속도에 어질어질했다. 금융 언어들에 익숙해지느라 퇴직금 운용 시스템을 짜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데 갑자기 거금의 목돈이 생기니 스트레스가 배가 되었다. 비상금이지만 30년에 걸쳐 사용할 자금이니 이 돈도 운용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이제 막 투자라는 세계에 막 발을 들여놓았는데 연금 운용도 해야 하고 현금성 자산도 운용해야 하다니!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 같았다. 보수적으로 안정형으로 투자하면 편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벌고 싶은 욕망은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맘때쯤 유튜브 영상들은 하나같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왔으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사야 한다"라며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지금 사지 않으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산 사람과 안 산 사람과의 자산 격차는 나중에 정말 크게 날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은 머니무브의 시대다. 가계 포트폴리오가 바뀌고 있다. 자산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옮겨갈 것이다.” 지금이 기회인가? 자산상승의 기회?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침 아파트를 매도한 자금도 있으니 두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이야말로 시대적 흐름을 발 빠르게 캐치하고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 아닌가라는 환상에 빠졌다.
투자의 ‘투’자도 몰랐으면서, 기껏해야 한 달 동안 모은 정보가 다면서 아파트 매도 자금으로 두 회사의 주식을 사면서 ‘머니 무브’라는 시대적 흐름에 몸을 실은 냥 좋아라 했다. 금융의 변방에 있다 마치 금융의 선두에 선 것 같아 우쭐해졌고 마치 투자 전문가가 된 것 마냥 어깨도 봉긋 솟아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시장에 뛰어든 건 아니다. 모두가 외치고 있다한들 경험치가 없었다면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코스피는 쭉쭉 올라가는데 몇 년 전 내가 산 개별 주식만 줄곧 마이너스였다. 결국 매도하고 원금이라도 회복했으면 좋겠다 싶어 작년 10월에 잘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생소한 지수 추종 ETF인 코덱스 200 ETF로 갈아탔다. 그런데 그게 설연휴쯤 보니 수익률이 60프로가 넘어 있었다. 마침 매월 적립식으로 일정 금액을 15년간 불입한 변액연금의 수익률도 150프로로 천지개벽해 있었다. 분명 작년 1월까지 마이너스여서 쳐다보기도 싫어 애써 외면하던 계좌가 폭발한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산의 폭등, 나도 남편도 수익률에 놀라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금융상품의 뜻하지 않은 수익률은 “아파트 매도 자금 같은 거금으로 주식을 사도 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불쏘시개가 되어 우리를 부채질했고 우리는 겁도 없이 그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그렇게 아파트 매도 자금으로는 우리나라 개별 주식을 사고, 퇴직 연금 DC형은 미국시장에 투자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에스엔피 500, 나스닥 100, 다우존스 배당, 금 투자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비율을 정해 미국의 금융상품을 샀다. 그렇게 금융문맹인이 글로벌 투자자(?)로 거듭났다. 한 달 넘게 이 일에 매달리면서 읽고 쓰고 운동하는 일상의 루틴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로지 투자라는 세계에 잠식되어 기승전 투자에 관한 정보를 모으며 보냈다. 읽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모두 투자에 관련된 것들이라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피로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시스템만 만들어지면 알아서 돌아갈 테니,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삶을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투자라는 세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국 시장에 투자했으니 별 관심이 없던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알아야 했고, 투자한 회사의 근황도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챙겨야 했다. 머리로는 ‘잊고 살자’ 하면서도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주식창을 들여다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몸이 알아서 그렇게 반응했다. 삶에 집중해야 하는데 일상에 집중해야 하는데 매일매일 변하는 수익과 손실의 변동성이 하루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동생과 뒷산을 다녀오는 동안 지치지 않는 주식 이야기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틈도, 풍경을 감상할 여유마저 잃어버렸다.
내 삶에 무얼 들였는지 뭘 간과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 바로 그날이었다. 머릿속에 맨 먼저 든 생각은 ‘전쟁 났다고? 그럼 내 주식은?’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았다. 몇 년 전 한 지인이 “전쟁이 나야 내 주식이 오르는데 말이야. ”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릴 때 '저 인간 미친 거 아냐?’ 경멸에 마지않던 내가 어느새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다치고 죽는 사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산 주식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럴 필요 없는데, 아니 그래선 안 되는데. 언제나 경제적인 인간으로만 살아가게 되어버린(p.299)” 내가 있었다. 차라리 금융 문맹인이 나을 뻔했다. 투자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면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텐데 탄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다른 데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훼손되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투자라는 세계에서 발을 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깜짝 놀란 척 호들갑을 떨지만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듯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님의 말처럼 정말 ‘신자유주의 그 자체로서 신자유적 존재’가 된 건가? “우리가 다르게 사는 것은 우리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p.298)라는 말처럼 이제 다르게 살 순 없는 걸까? 아니면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잖아’라는 말에 기대어 또다시 핑계를 대고 있는 걸까? 오늘도 나는 투자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숫자와 맞바꾸면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대체 뭘 위해서 잃어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