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여러분 스스로 충분한 돈을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더 많은 책을 쓰라고 권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에게 그리고 세계 전반에 도움이 도움이 될 일을 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p.158-161)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남편과 아이들이 먼저인 삶을 살았다. 전업주부니까 돈을 벌지 않으니까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삶의 무게 추가 전적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기울어져 있던 20년이었다. 돈은 참 별 게 아닌 것 같아도 별 게 맞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게 머리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그와는 별개로 자꾸만 움츠러드는 내가 있었다.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게 무슨 죄라도 지은 양 점점 위축되는 내가 있었다. 독서 모임을 위해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나만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져도 되나?’ 자책하기 바빴고, 나를 위한 물건을 살 것 같으면 나를 위한 소비가 사치나 허영의 산물은 아닌지 스스로 검열하곤 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져도 되나? 이렇게 좋은 물건을 가져도 되나?’라는 내 안의 끝없는 죄책감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하는 경제적 독립을 이룰 고정 수입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고정 수입이라! 친정엄마에게 “지독하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끼고 살다 보니 아이들이 대학에 갈 무렵 매달 들어오는 월세 즉 고정 수입이 생겼다. 당장 나가 일할 경우 최저 시급으로 받는 월급과 얼추 비슷한 수입. 육아를 위한 시간은 끝났으니 나가 일을 하거나 아니면 뭘 하고 살 건지 결정해야 했다. 마침 생긴 고정 수입이 고민의 무게를 줄여주었다. 돈을 벌지 않는 죄책감으로 잔뜩 움츠려 지냈던 사람이 남편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장 나가 버는 돈만큼의 고정 수입이 생겼으니 원하는 일을 하겠다.” 내 결정이 얼마나 정당하고 절박한 지 남편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고정 수입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징글징글하게 아끼고 살아왔는지, 아들과 딸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갈아 넣었는지 남편도 알았기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전업주부로서 20년의 시간을 갈아 넣은 고정 수입은 그렇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500파운드가 지금의 4000만 원인지 5000만 원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녀는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으려면 연간 어느 정도의 수입이 필요하며, 여성에게 고정 수입이 생긴다면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500파운드는 정해진 금액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인 것이다. 워낙 안 쓰고 살았기에 나를 위한 소비의 기본값이 최솟값이었기에 월세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정도의 고정 수입만 있어도 그녀 말대로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되고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것 같았다. 큰 소비만 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아도 될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었다. 빡빡한 살림살이에 힘겨운 육아에 숨통을 틔우고자 일주일에 한 번 독서모임에 참여한 지 15년쯤 되었을 때다. 머릿속에 밀어 넣기만 하는데 지쳤는지 뭐라도 써야 한다는 욕망이 끊어 올랐다. “글을 쓴다고? 네가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냐?”(p.84)라고 세상이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도 써 보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을 지우고 살았던 날들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고, 20년 치를 한 번에 정산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가 일하는 대신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이렇게 살기 위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지난날 나라는 개인을 지우고 산 20년의 시간 덕분에 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건가,라는 생각도 잠깐 스쳤다.
고정 수입이 생겼으니 나만의 방이 필요했다. 딸이 대학에 가 집을 떠나자마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딸의 흔적을 지우고 서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책상과 의자, 노트북 하나,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 유일했지만, 지금은 노트북 화면을 비추는 달과 태양을 형상화한 멋진 조명도 생겼다.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고정 수입은 나의 기질도 크게 변화시켰다. 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미국 작가의 빈티지 책상과 의자계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의자를 구입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물건을 가져도 되나?’라는 죄책감이 습관적으로 엄습했지만 “ 평생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 건데, 책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평균 3-4시간 일 텐데,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을까? 다른 소비를 좀 줄이면 되지 뭐.” 눈감아주기로 했다. 더 이상은 나의 소비가 사치나 허영의 산물이 아닌지 검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말도 크게 한몫했다. 그의 만년필 수집이 사치스럽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너는 평생 200원짜리 모나미 볼펜만 쓰다 죽어라.” 아이들이 남긴 책상과 의자만 쓰다가 죽고 싶진 않았다. 나를 위한 책상과 의자가 좋은 물건이었으면 했다. 좋은 걸 오래오래 매일 쓰고 싶었다. 더 이상 필요한 물건은 없다. 지금 내 방에는 필사한 문장을 인쇄한 A4용지가 쌓여가고 있고, 간간이 비어있는 책장엔 한 권 두 권의 책이 꽂혀가고 있다.
그렇게 고정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고정 수입은 뛰어난 재능이 없이도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게 했고, 나만의 방에서는 쓰고 싶은 욕망을 마음껏 분출한 끝에 내 이름이 박힌 첫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읽고 필사하고, 필사한 문장을 일상생활과 연결시키는 글을 쓰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와 내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필사하면서 찾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책 읽기가 아니라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자유롭게 선택해서 읽는 책들. 그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필사에 필사를 거듭해 한 편의 글로 혹은 두 편의 글로 태어난다. “횃불을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이 모든 것을 탐구해야 한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횃불을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필사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있는 중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유영하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이 되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건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강조했던 자기만의 방과 고정 수입 덕분이다.
"요즈음뿐 아니라 과거 이백 년 동안에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지요. 그리고 여성은 그저 이백 년 동안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습니다. 그러니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그녀 말대로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