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운동이라고는 1도 해 본 적 없는 내가 ‘운동 하나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건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나면서부터였다. ‘고령화 시대에 운동 하나쯤은 필수다.’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운동치인 내게 탁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솔직히 만만해 보였다. 그것이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지만. 마침 운명처럼 집 앞 여성센터가 문을 열고 1기 탁구 수강생을 모집했고 발걸음도 가볍게 탁구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흔하디 흔한 중년 여성의 탁구 입문기다. 이 낯선 세계가 일상을 어떻게 쥐락펴락할지 상상도 못 한 채 그렇게 탁구 생활체육인이 되었다.
(그런데 어쩌다 작가 지망생이 탁구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나요?)
전업주부로,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간으로 10년을 살았다. 어느 날 ‘평생 남의 책만 읽고 살 거니?’라는 생각이 턱밑까지 차올라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았지만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기에 마침 갓 입문한 탁구를 통해 체력을 키우면 될 것 같았다. 탁구가 글쓰기를 위한 조연으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글 쓰는데 미친 시절을 보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겼다. 나 자신과 약속한 글의 양과 필사의 양, 책 읽기, 토론, 글쓰기 방법론 등 매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탁구란 놈이 자꾸 끼어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필사를 하다가도 “아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들었다. 글쓰기에 미치고 싶은데 틈만 나면 탁구가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성은 글쓰기를 외치고 몸과 마음은 탁구로 향해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탁구와 글쓰기 둘 다 서로 미친 시절을 보내겠다고 난리였다. “야, 탁구, 너는 글쓰기를 위한 조연이라고. 저리 가 있어.”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머릿속은 점점 탁구에 대한 생각으로 부풀어 올랐다. 중심을 못 잡고 한참을 휘청거리다 방법을 찾았다. 차라리 탁구에 관한 글을 쓰면서 글쓰기에도 탁구에도 미친 시절을 보내기로.
우선 탁구 관련 책들을 찾아봤다. 선수 출신 코치들이 쓴 탁구 기술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요가, 피트니스, 달리기를 하는 생활체육인들이 쓴 책은 많은데 탁구 에세이는 없었다. 황세진이 쓴 <아티스트의 탁구 노트>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5부로 시작한 저자가 2부로 승급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기에 입문자로서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새내기 탁구인으로서 선배 탁구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탁구를 치고 있는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탁구라는 길을 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다른 탁구인이 쓰지 않았다면 내가 한번 써 보리라는 무식함과 용감함을 탑재한 채 탁구에 관한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잠깐만요. 그런데 5년밖에 안 된 탁구인이 탁구에 대해 뭘 안다고 글을 쓰나요?)
“5년밖에 안 된 네가 탁구에 대해서 뭘 안다고? 부수도 최하위 부수면서?”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탁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하니 누군가는 “부수가 낮아서 문제다. 과연 사람들이 하위 부수의 글을 읽고 싶어 할까?”라는 말을 한다. 그 말에 혹해 ‘부수승급부터 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탁린이로 시작해 5년 차가 되어가는 과정은 아무도 쓴 사람이 없으니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내 수준, 내 위치에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쓴다면 탁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계속 써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썼는데요?)
원래 궁금한 게 많은 인간이다. 지인들에게서 "질문이 많아 피곤하다. 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러한 기질을 활용해 탁구 기술뿐 아니라 탁구장에서 오가는 말, 행동, 감정, 심리, 인간관계 등 탁구에 관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썼다. 탁구장에서 탁구만 치는 건 아니니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건 어디나 비슷하니까.
(왜 당신 글을 읽어야 하죠?)
이 글은 탁구를 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질문들과 고민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탁구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글을 통해 탁구인들이 “나도 이런 거 궁금했는데, 나도 이런 고민한 적 있는데, 우리 탁구장에도 이런 사람 있는데 ”라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탁구에 대한 생각, 사람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 좋겠다.
탁구계에 "똑같은 구질의 탁구인은 하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 탁구 생활체육인 185567명 중 한 명이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기준) 어디에선가 이렇게 탁구를 치는 인간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어디에선가 함께 뛰는 러닝메이트가 있다고. 그러니 당신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앞으로 탁구이야기가 흘러넘쳤으면 좋겠다.
(이게 끝인가요?)
탁구에 관해 '끝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끝이 없다는 걸 탁구를 통해 다시 한번 알았다. 내가 다니는 탁구장에는 휴식 테이블이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탁린이부터1,3,5,10,15,40년 구력을 가진 탁구인들이 눈을 반짝이며 탁구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한다. 탁구로 대동 단결한다. 매일 이야기하는데도 질려하지 않는다. 이런 눈들의 반짝임이 좋다. 이런 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뭔가를 이리도 오래 좋아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40년이 지났는데도 탁구가 재미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길래? 그 이유가 궁금해 탁구에 관한 글을 계속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 코치님이 이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 20년 탁구를 쳤는데 이제야 탁구가 뭔지 조금 알겠다.” 그러니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막 탁구라는 세계에 한발 발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