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탁구가 쉽대?

by 하늘

풍경 1

무슨 운동을 하냐고 묻길래 탁구를 한다고 답하니 반응이 영 별로다. 익숙한 반응이기에 마음에 두지는 않는다. 골프처럼 간지가 나는 것도 아니고 배드민턴이나 테니스처럼 멋있게 보이지도 않는 탁구를 하느냐고 상대방의 눈빛이 대신 말해줄 때마다 탁구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알게 되어 씁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풍경 2

“탁구가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 탁구 안 할 거다.” 한 여성회원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럼 그만두면 되지. 누가 말리나요?” 아니란다. 여태까지 한 게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하겠단다. 경제학 용어 중에 ‘손실 회피’라는 말이 있다. ‘손실 회피’는 손실을 이익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그녀 역시 탁구를 그만두면 손실을 확정 지어야 하는데 그 결정이 고통스러워 그만두지 못하는 건가?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탁구가 별 건가? 라켓만 잡으면 누구나 쉽게 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만만하게 생각했다. 레슨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2-3년 정도 배우면 그것만 가지고도 평생 재미있게 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 기술적으로 들어가 보면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탁구 기술 또한 다양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술들이 쉽사리 늘지 않는 데 있다. 기술을 익히는 시간도 필요하고 이 기술들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도 필요하다. 탁구장에 쏟아붓는 시간 대비 잘 늘지 않는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공을 다룬 경력 즉 구력이 중요한 이유다. 골프의 경우 하수, 중수, 고수로 나눈다면 3년 정도만 치면 중수 정도는 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탁구는 10년을 쳐도 한 부수도 못 올리는 탁구인들이 부지기수이다.(탁구는 보통 최하위 부수인 8부부터 최상위 부수인 1부로 나뉜다)

물론 탁구를 치는 연령대가 높은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 경우 46세에 탁구를 시작했다. 불혹의 나이에 "꽃다운 나이다."라는 말을 탁구장에서 처음 들었다. 탁구인의 평균 연령은 40대에서 60대가 주를 이룬다.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평균 연령은 다른 운동에 비해 높은 편이다. "어릴 때 1년 배운 탁구가 어른이 되어 3년 배운 탁구랑 비슷하다.'라는 말도 나이 들어 뭔가를 배운다는 것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초등생을 보며 “너는 일찍 배워서 좋겠다.”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기 일쑤다.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애는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라켓을 잡아야지."라는 진심 가득한 우스갯소리도 들려온다.

그녀 말대로 탁구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 알았다면 나 역시 탁구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레슨에 투자하고 시간을 쏟아부어도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 현실. 사실 비용도 다른 운동에 비하면 싼 편인데 만만한 탁구에 그렇게 비싼 레슨비를 지불해야 되느냐는 일반적인 인식이 심리적 기제로 작용해 마치 쓰지 말아야 할 곳에 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또한 탁구를 만만하게 보는 시선 안에서 싹튼 편견일 수 있다. 예전에 나를 가르쳤던 코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탁구를 너무 만만하게 본다. 그것부터가 잘못되었다.” 분개하곤 했다. “레슨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 왜 빨리 실력이 안 느냐? “등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른 종목에서는 굳이 묻지 않을 질문을 왜 유독 탁구에게만 묻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탁구라는 운동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는 그럴 수는 없다."며 얼굴 가득 불만을 드러내곤 했다.

마음먹었던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름대로 열심히 레슨을 받고 레슨 받은 걸 꾸준히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연습벌레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럼 3년의 결과는? 어느 기술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그동안 뭘 한 거냐?’ 자문해 보지만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해?’ 짜증이 몰려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마음에 코치에게 "도대체 언제까지 레슨을 받아야 하느냐?"라고 물었다.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받으셔야지요." 만족할 때까지? 인간에게 만족이라는 게 있단 말인가? 만족할 때까지 레슨 받으라는 건 평생 받으라는 건가? 평생 공부라지만 언제 만족할지도 모르는데? 더 반항심이 드는 건 탁구에 입문할 때의 마음과는 반대로 탁구라는 늪에 점점 빠지고 있는 스스로가 감당되지 않아서다. 2-3년만 배우고 나머지 시간은 운동 개념으로 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탁구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시간도, 돈도, 열정도. 그 요구들이 싫다면 과감하게 정리하면 되지만 이미 탁구라는 세계에 빠져 헤어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본래의 궤도에서 이탈한 것 같은, 이미 내 통제력을 벗어나 버린 탁구를 어떻게 하지? 그녀처럼 손실을 확정 짓고 싶지도 않고, 그러자면 계속 탁구를 쳐야 하는데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느는 것 같지도 않으니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만두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3년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요구하는 탁구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40년 구력의 관장님은 ”어려우니까 탁구가 재미있는 거다. 40년 동안 탁구 이야기를 하는데 매번 새롭다.”라고 말씀하신다. 탁구를 그리 오래 쳤는데도 매번 눈을 반짝이는 건 쉽게 정복되지 않아서인가? 탁구에서 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사람마다 다양한 구질을 가지고 있어 매번 새롭다는 거다. 어렵기도 하고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슷한 구질은 있어도 똑같은 구질의 탁구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실력을 쌓아 산을 넘었다 싶었는데 또 다른 산들이 굽이를 넘을 때마다 계속해서 나타난다. 그래서 탁구가 재미있는 건가? 그래서 다들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건가?


“내가 몸으로 체험하지 못한 앎은 모두 편견일 수 있다.”라는 문학 평론가 신형철의 말이 떠오른다. 나 역시 만만한 운동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탁구라는 세계에 입문했다. 세상천지에 만만한 세계는 어디에도 없는데 잠시 그걸 잊고 있었다.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쩌다 탁구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