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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탁구냐? 실속 있는 탁구냐?

by 하늘

“와! 한방에 제끼는 저 드라이브 좀 봐. 정말 멋있다.” 게임을 지켜보고 있던 회원들이 5부 회원의 드라이브에 일제히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의 탁구 스타일은 거의 한방으로 상대가 커트로 공을 넘기면 무조건 제끼는 드라이브를 구사한다. 파워도 세고 속도도 빨라 수비할 틈이 없다. 드라이브가 잘 들어가는 날에는 그를 당해낼 자가 없다.

그는 “이런 날에 오픈대회를 나가야 하는데.” 라며 자신의 플레이에 흡족해한다. 이어 “대회 나가면 제 게임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아요. 제가 시원시원하게 친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하는데 어깨는 한껏 올라가 있고 얼굴은 자부심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드라이브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들어갈 때는 잘 들어가는데 한번 안 들어가기 시작하면 계속 미스를 한다. 모 아니면 도?

그러나 대부분의 회원들은 그의 경기를 보며 “탁구답게 탁구를 친다. 보는 재미가 있다.” 라며 부러워한다. 대부분의 탁구인들 로망이 그처럼 ‘한 방에 제끼는 포핸드 드라이브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필요하다. 하체 힘도 받쳐주어야 하고 거리와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은 물론 자세도 낮추어야 하고 임팩트도 정확하게 주어야 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어려우니까 로망이겠지.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의 드라이브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다. ‘드라이브로 제껴서 한방에 끝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꾼다. 그렇게 꼭 쳐보리라. 그렇게 치려고 연습 중이다.


물론 반대되는 의견도 있다. 관장님은 “공을 골라 드라이브해야 하는데 무조건 한방에 제끼려고 하니 미스가 나는 거다. 루프 드라이브도 적절히 섞어서 드라이브의 안정성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보다 상위 부수인 한 회원은 “겉멋 든 탁구다. 멋있어 보이지만 실속은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겉멋 든 탁구라고? 드라이브의 기복이 심하니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내 멋에 산다는데 겉멋이 들면 좀 어떤가? 앞으로 안정성을 보강하면 되지. ‘멋있어 보이지만 실속은 없다?’ 이 말 역시 뭔가를 할 때 꼭 이익을 찾는 습성이지 않을까? 뭔가 결과를 내야만 안심이 되는? 니코스 카잔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도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 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의 말처럼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며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이 있다. 실속 있는 일들은 평상시에 수도 없이 많이 하며 살고 있으니 탁구장에서만큼은 겉멋 든 탁구 좀 치면 어떤가? 삶에는 때로 무용한 것들로 채워지는 날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꾼다. 겉멋 든 탁구를 한 번쯤은 쳐 보리라 용을 쓴다. “뭐 하러 그렇게 무리하게 한 방에 끝내려고 하냐? 그러니까 지는 거 아니냐?"라고 묻는 회원에게 말한다. “더 나이 들면 해 보고 싶어도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재미있어요.” 상대는 “그럼 할 말 없죠.”라고 두 손 두 발 다 든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희성(변요한)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그렇소. 나도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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