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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멀었군 멀었어.

by 하늘


한 상위부수 회원과 게임 전 3구 연습을 하고 있다. 그가 말한다. “ 아! 안돼. 밀린다. 게임하면 지겠는데요?” 그러나 막상 게임은 그의 승리로 끝이 난다.

다음번 3구 연습. “왜 이렇게 늘었어요? 예감이 안 좋아. 지겠는데?” 진짜 패배한 사람처럼 한숨을 쉬다 못해 탄식을 한다. 이때까지도 난 참 해맑았다. 잘 들어가는 공격에 취해 흥분한 나머지 “연습할 때만 잘하는 거 모르세요? 게임하면 매번 지잖아요.” 겸손을 가장한 오만함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내게 던진 한 마디. “밑밥 까는 거예요.” 아! 게임을 위한 밑밥이었구나! 이게 바로 게임 전 심리전인가? 밑밥인 줄도 모르고 그 장단에 널뛰기 춤을 췄구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달리 고수가 아니군. 멀었군 멀었어.

한 상위부수 회원과 게임을 하고 있다. 오늘 그분이 오셨나? 공격하는 족족 들어간다. 서비스 리시브부터 백 드라이브를 시도하던 그가 미스를 몇 개 하더니 당황한 표정이다. 이번에는 아예 대 놓고 “서비스로 점수를 먹겠다.”며 호언장담을 한다. 점수 차가 많이 벌어져 심리적 압박을 많이 느낀 탓인지 서비스 중 하나는 힘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탁구대 밖으로 아웃되어 버린다. 나머지 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 라켓을 갖다 댔는데 운이 따랐는지 받아졌다. 눈이 똥그래진 그가 “안 돼. 정신 차려.” 황급히 외쳐보지만 이미 게임의 흐름은 나에게로 넘어왔다. 3대 0으로 나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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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그가 내게 던진 한 마디. “게임 조절한 거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 내 수준에 맞춰 게임을 조절한 거였구나! 그럼 조절에 실패한 건가? 조절하려 했으나 잘 안 된 건가?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조절했다”는 그의 말답게 그는 아예 처음부터 공격 모드다. 자세도 낮아졌다. 돌아서 드라이브를 걸고, 백 푸시로 공을 확 밀어 버리고, 있는 힘껏 스매싱을 때린다. 두 번째 게임은 3대 0으로 그의 승리. 게임을 조절하는지도 모르고 “집에 가서 일기 써야겠다. 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남겨 두어야지 ”라며 촐싹거렸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었다. 고수가 게임을 조절하는지도 모르고. 달리 고수가 아니군. 멀었군 멀었어.

한 상위부수 회원과 3구 연습 중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서비스가 잘 받아진다. 자신감 만땅이다. 이대로라면 '게임에서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 만만땅이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연습 중볼 수 없었던 서비스를 그가 넣기 시작한다.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를, 그것도 방향을 바꾸어 가며 요리 저리 넣는다. 빠르게도 넣었다가 느리게도 넣었다가 빠른 횡서비스였다가 회전량이 겁나 많은 커트서비스를. 이리저리 몰아치는 서비스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연습 때 못 본 서비스들이네요?” 물었더니 “아까는 잘 안 들어가던 서비스 2-3개만 연습한 건데요. 그리고 서비스를 왜 다 보여줘요? ”라며 오히려 내 질문을 어처구니없어한다. 아! 그런 거였구나! 그런 깊은 뜻도 모르고 연습 때 보여준 그의 서비스가 전부인 줄 착각했다. 그런데 어쩌나. 난 연습 때 내 서비스 다 보여주었는데? 몇 개는 게임을 위해 숨겼어야 했나? 달리 고수가 아니군. 멀었군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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