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3. 핌플 적응기

by 하늘

핌풀의 귀재, 그가 나타났다.

시에서 운영하는 체육 센터가 수리를 이유로 문을 닫는 바람에 그곳에서 탁구를 치던 그는 사설 탁구장인 우리 탁구장에 일주일에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 5부 핌플 전형으로 지역대회 우승도 여러 차례 했기에 회원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게임을 하기 위해 미리 예약을 해야 할 정도다.

같은 부수인 A가 먼저 도전장을 낸다. A가 핌풀로 넘어오는 공을 상대의 백 쪽, 화쪽으로 코스를 가르며 포핸드 드라이브를 건다. “ 와! 저렇게 코스를 갈라 포핸드 드라이브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올해 제 목표는 포핸드 드라이브를 화쪽, 백쪽으로 자유자재로 거는 거예요. 그리고 백쪽에서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를 상대의 백 쪽, 화쪽으로 코스를 가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옆에서 나의 가당치도 않은 바람을 조용히 듣고 있던 한 회원이 “그게 다 되면 선수지."라며 비수를 꽂는다. 저도 압니다. 목표가 그렇다는 겁니다. 목표는 야심 차게. 그러니 바로 눈앞에서 그토록 갖고 싶어 하는 드라이브를 자유자재로 거는 회원이 얼마나 멋져 보이겠는가? ‘역시 핌풀 전형을 상대하려면 드라이브를 확실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해. 올해는 기필코 드라이브를 내 것으로 만들어보리라.’ 의지를 불태운다.

A가 핌풀 전형 다루는 걸 보니 모범 답안이다 싶은데 게임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A의 코스 가르기 드라이브가 좀처럼 먹히지 않는다. 랠리만 길어질 뿐이다. 드라이브를 거는 족족 그가 받아넘기니 넘어오는 공을 쉼 없이 거느라 A는 벌써 기진맥진한 모습이다. 탁구복은 흥건히 젖어 있고 체력이 바닥났는지 잦은 빈도로 수건을 가져다 땀을 훔친다. 드라이브도 한두 번이지 연타로 드라이브를 거느라 집중력이 흐려진 A가 미스를 하기 시작한다. 이 틈을 그가 놓칠 리 없다. 핌풀 전형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날카로운 공격을 하는 스타일인지라 사이사이 기회만 있으면 공격을 퍼붓는다. 공격은 뚫리지 않고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맹공을 퍼붓자 A는 그만 전의를 상실한다. 와르르 무너진다. 게임은 그렇게 그의 승리로 끝이 난다. ‘드라이브를 저렇게 잘 거는데 뭐가 문제지?’

허탈해하며 게임을 마친 A에게 같은 5부인 B는 “형님은 잘 치시는데 드라이브를 그렇게 이쁘게만 넘기시면 어떻게요? 루프 드라이브만 거시잖아요. 파워 드라이브로 한 방에 끝내는 것도 있어야지요.”라며 의기양양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라켓을 집어든다. 그와 B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B는 루프 드라이브와 파워 드라이브를 적절히 섞는다. B의 말대로 기회를 봐서 거는 파워 드라이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수비가 뚫리기 시작했다. 뚫리기 시작하니 그도 당황한 나머지 쉽사리 자신의 공격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 흐름은 B에게로 넘어가고 게임은 B의 승리로 끝이 난다. ‘아! A가 건 드라이브는 루프 드라이브였구나!’ 이제야 왜 A의 공격이 먹히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B가 말했듯 핌플 전형과의 게임에서는 루프 드라이브도 필요하지만 한 방에 제끼는 파워 드라이브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드라이브도 미숙한데 한 방에 제끼는 파워 드라이브까지. 드라이브도 종류별로 해야 하고 탁구의 세계는 갈 길이 멀고도 멀군.

모든 상위부수들과의 게임이 끝나고 이젠 내 차례. “서비스를 어렵게 넣을 필요 없어. 하늘 씨의 드르륵 길게 넣는 서비스가 오히려 핌풀 전형에게는 특화된 서비스야. 서비스 좋으니 잘해 봐.” 관장님이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씀을 하신다. 매번 ‘그 서비스만 넣을 거냐? ”라며 그렇게 구박하시더니 서비스가 좋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그와의 경기가 시작된다. 서비스를 넣고 돌아오는 공을 냅다 백 드라이브로 건다. 자신 없는 커트보다는 백 드라이브가 편하다. 연달아 넘어오는 공을 백 드라이브로 걸었더니 “8부 치고 백 드라이브를 잘 거네요.”라며 칭찬을 해 주신다. 고수의 칭찬에 힘입은 바 낑낑거리며 무조건 백 드라이브를 건다. 백 드라이브를 건 후에는 다시 리턴하는 공을 점수를 내기 위해 백 쪽에서 돌아서 포핸드 드라이브를 시도한다. 하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해 실수를 연발하고 실수가 반복되다 보니 돌아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포핸드 쪽으로 오는 공의 경우도 드라이브를 걸긴 거는데 무늬만 포핸드 드라이브일 뿐 루프 드라이브인지 파워 드라이브인지 정체가 모호하다. 명확한 포핸드 드라이브의 장착이 시급하다. 공이 넘어오는 박자도 제각각이라 각기 다른 박자를 타면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런 건 다 핑계일 뿐이고 연습부족, 실력부족이다.


핌풀 전형과 게임을 해 보면 나의 백 드라이브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포핸드 드라이브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게임을 해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와의 게임 덕에 “포핸드 드라이브를 제대로 해보자.”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막연하게 드라이브 레슨을 받았다면 이제는 뚜렷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11대 4, 11대 5로 택도 없었던 게임 스코어에서 이젠 11대 8, 9, 10으로. 심지어 1세트를 따기도 한다. 그렇게 꿈꾸었던 랠리 한 번에 백 드라이브 한 번, 포핸드 드라이브 한 번을 걸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희열이란! 나도 모르게 함성을 질렀다. “이렇게 탁구를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주에도 그가 구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드라이브 점검시간. 그러기에 오늘도 난 그와의 게임을 위해 드라이브 연습에 매진 중이다. 언제쯤 포핸드 드라이브에 자신이 생길까? 얼마큼 쳐야 자신감이 생길까? 탁구장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탁구 로봇을 이용해 포핸드 드라이브를 연습한다. 포핸드 드라이브를 코스로 가르는 레슨도 받는다. 랠리 한 번에 백 드라이브와 포핸드 드라이브를 동시에 구사하는 날을 꿈꾸면서. 아!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62. 뭘 그렇게 다 이겨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