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끙거리며 레슨을 받고 있다. 있는 힘 없는 힘 쥐어 짜내다 보니 끙끙거리는 소리는 이제 나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한 회원이 “소리 때문에 게임에 집중을 못하겠다.”라며 민원을 제기한다. 관장님 왈 “저런 소리도 이겨내야 해. 괜찮아. 선수들도 드라이브 걸 때 다 소리 내잖아. 신경 쓰지 말고 더 열심히 해.”라는 주문을 한다. 민원을 제기한 회원에게는 오히려 “이렇게 시끄러운 상황도 이겨내야지." 라며 그를 타박한다. 나는 그를, 그는 나를 이겨내야 한단다.
한 상위부수 회원과 게임 중이다. 한참이나 실력이 부족한 하위부수와 게임을 해 준다니 감사한 마음이다. 한창 재미있게 게임을 하고 있는데 한 회원이 “와! 하늘 씨 많이 늘었네. 공 줄 데가 없네. 야! 진짜 잘 친다.”라며 나를 칭찬한다. 상대는 그가 던지는 말에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더니 급기야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제발 그만 좀 하라고요.’ 당장 달려가 그 회원의 입을 막고 싶지만 상대가 공을 주우러 간 틈을 타 그만두라는 눈짓을 보낼 뿐이다. 고수가 게임을 해 주는데 하수만 내리 칭찬하니 내가 고수의 입장이라도 기분 좋을 리 없다. 어쩜 저리 눈치 없는지.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난처함은 온전히 내 몫이다. 게임 후 “그 회원이 그런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고수님 보기에 난처해 죽는 줄 알았다.”라며 관장님께 넌지시 말했다. 관장님은 “그런 상황이 한두 번이야? 하늘 씨도 그 회원도 그런 말들 이겨 내야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도 나도 이겨내야 한단다.
모처럼 커트 서비스를 연습할 시간이 생겼다. 요놈의 커트 서비스는 언제 원하는 만큼의 회전으로 들어갈런지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공을 러버에 묻힌다고 생각해.” 주문을 외우며 공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한다. 제발 러버에 공이 묻히기를 바라면서. 지켜보던 관장님이 “말로만 하는 거 아냐? 진짜 러버에 묻혀서 보내는 거 맞아?” 라며 찬물을 확 끼얹는다. 연습한 지 얼마나 됐다고? 갑자기 맥이 탁 풀린다. 의욕 상실. “관장님, 자신감이 필요하다고요. 믿어주고 격려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탁드렸더니 관장님 왈 “이런 것도 이겨내야지.”라며 하신다. “아니 관장님은 제 편 아니었어요? 관장님 말까지 이겨내야 해요?” 갑자기 냉혹한 탁구라는 세계에 홀로 던져진 것 같다. 외로움이 사무친다. 승부를 가려야 하는 세계는 원래 다 이런 건가?
뭘 그렇게 다 이겨내야 하지? 이겨내야 할 것들 투성이네. 탁구 기술 늘리는 건 어찌어찌 될 것 같은데 이겨내야 할 것들은? 솔직히 자신 없다. 불편하다. 마음이 무른 건지 정신상태가 흐리멍덩한 건지 정신 무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그런데 뭘 위해서 그렇게 다 이겨내야 하지? 한 고수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탁구라는 세계를 떠나지 않는 한 이겨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한술 더 떠 “탁구라는 세계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겨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진다.”라고 조언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가수 이효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히기는 싫다.”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 아니냐고 되묻는 손석희 앵커에게 그녀는 “가능한 것만 꿈꾸는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저에 대한 욕심은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냥 제 욕심인 것 같아요.”라고 답해 그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맞아요. 이겨내는 건 싫고 탁구 실력은 늘고 싶다고요. 욕심도 맞아요. 하지만 가능한 것만 꿈꾸는 건 아니잖아요?" 이효리 말에 묻어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