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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사 Feb 11. 2024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

_ 03. 90분 동안의 졸업식은 9000줄이 넘는 쓰기로


: 03.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_ 중3 담임선생님 면담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시간. 체육 담당이셨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시름 놓은 표정이 역력하셨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나의 의중을 다시 한번 확인하셨다. "네. 괜찮습니다."


"어머님이 오늘 저와 첫 상담이신데요. 첫 상담이라 어렵기도 했지만 이런 경우가 참 어렵습니다." 인문계 커트라인에 아이의 성적이 걸려있었다. 인문계를 쓸 수는 있지만, 잘못하면 떨어질 수도 있는 아주 간당간당한 점수. 선생님이 어렵다고 하신 건, 이런 경우 인문계를 쓰겠다는 학부모가 많다는 얘기겠고, 선생님 얼굴에 화색이 돈건 흔한 학부모에 내가 포함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아이 성적으로 보낼 수 있는 특성화고는 어디일까요?" 청주공업고등학교, 청주하이텍고등학교, 충북공업고등학교, 청주농업고등학교 등 청주 시내에 있는 몇몇 학교를 불러주시며, "청주공고도 코로나로 면접이 없어져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고 덧붙이셨다. 청주공고라. 근데 선생님. 청주공고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청주 토박이로, 청주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청주공고는 처음 듣는 학교였다. 가경동에 공고가 하나 있던데 거긴가? 영 헷갈렸다. "어머님. 기계공고가 청주공고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네에??? 기계공고가 청주공고라고요? 거기에 갈 수 있다고요? 내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기계공고에 갈 수 있다고??


기계공고라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초록색 교복이 상징이었던(내 기억의) 기계공고는 인문계보다 점수가 높았다. 당시 남자 인문계는 미달이 많았고, 기계공고는 정원이 한정된 데다 기술 쪽(취업도)으로는 알아주는 학교였기에 인기가 많았다. 기계공고에 떨어진 남자아이들이 미달인 인문계에 가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는데, 나와 동갑이었던 엄마친구 아들도 기계공고에서 떨어져 인문계를 갔다. 


지금도 전기제어과, 반도체전자과, 항공모빌리티과를 비롯해 몇몇 학과는 인문계 커트라인보다 점수가 훨씬 높다. 면접도 재개되어 체감 성적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청주공고가 내가 아는 그 기계공고라고? 아이 성적으로 쓸 수 있는 과는 세네 개 과 밖에 없었지만, 나는 기계공고 아니 청주공고에 원서를 쓰겠다고 했다. 화색이 돌던 선생님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들었다.


"많이 어려울까요?" 청주공고도 코로나로 면접이 없어져서 가능성이 있겠다고는 말하셨지만, 가능성 안에는 붙을 가능성과 떨어질 가능성이 같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점수가 높은 과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낮은 과는 붙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도 포함됐다. "아직 시험이 한번 남았으니, 그때 성적보고 최종으로 결정하시면 될 듯합니다." 내 뒤로 입학상담을 하실 학부모님들이 줄지어 있어, 상담은 여기까지 하고 마무리했다.


고등학교 입학 시, 성적은 3학년 2학기 시험까지 반영된다. 입학 원서를 써야 하기 때문에 3학년 2학기 시험은 중간+기말 통합하여 한번만 치른다. 남은 시험은 한번. 청주공고에 안전빵으로 보내려면 어찌해야 하나?


1리터 음료를 마시며 게임을 하는 꼬맹이 아닌 꼬맹이


아이는 게임을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면 몇몇 친구들과 PC방을 다녔고, 친구들이 학원에 있는 시간에는 집에서 게임을 했다. 아이는 게임을 좋아했고, 나는 아이가 게임을 하는 소리가 좋았다.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이크에 대고 알 수 없는 외계어를 해만 그 소리마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아이 방안에 흘러넘쳤고, 세상 제일 귀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가 소리주인이었다.


청주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만 가!

"넌 멀미가 심하니까 시외로 가면 멀미 때문에 고생할 거야." 그저 청주시내만 가길 원했기에 평소에는 물론이고 시험기간에도 게임을 하는 아이를 다그치지는 않았다. 아이는 게임을 사랑했고,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사람이 간사한 게 청주시내만 가길 바랐음에도 이왕이면 좋은 곳이길 바라게 되더라. 청주시내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기계공고 아니 청주공고에 갈 수도 있겠다는 담임쌤 말에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의 사랑을 유지시키며 청주공고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초등 6년, 중등 3년 총 9년 동안 학원 한 번을 보내지 않았다. 축구나 합기도, 기타, 복싱 학원은 아이의 의지하에 보냈지만 학업 성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학원은 보내지 않았다. 학원 가볼까?라는 말을 아이의 입을 통해서 들은 적도 없고, 학원 가볼래? 내입을 통해 내뱉은 적도 없었다. 아이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나 또한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평생직업은 없어질 테고, 중고등 시절 공부를 꽤 잘했던 나는 입출금만 하는 경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데다, 지금 이 나이에도 자격증을 수집하고 다니고 있는 상황인데, 굳이 싫어하는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때가 오겠지. 때가 오면 아이도 하겠지. 그 언젠가 아이에게도 공부의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_ 90분 동안 진행된 졸업식 단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에서 성인이 된 아이의 졸업식은 제게도 의미 있더라구요. 특성화고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만큼이나 낯설었습니다. '특성화고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는 졸업을 했습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졸업식만이라도 기억하자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90줄, 900줄 점점 길어집니다. 9000줄까지는 안 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9000줄이라는 어감이 좋아(뭔가 대단히 길어 보이기도 하고) 소제목으로 얹어봤습니다. [ form_ Arisa ]


_ 비위가 약해, 어릴 때도 엄청나게 토를 했던 아이. 80매짜리 물티슈와 두벌의 여분 옷, 토한 옷을 담을 비닐봉지.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면 제 가방은 항시 무거웠습니다. 어찌나 토를 했던지..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고.. 지금도 차만 타면 멀미 하지만 다행히 토는 안 하네요. 대신 쿨쿨 잠을 잔답니다. 닭다리마냥 빼짝 마른 아이였는데, 지금은 뚱땡이가 되었다니... 세상 장담할 일 하나 없음을 또 한 번 느낍니다. :)


_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새해 복도 많이 받으셨을까요? 남은 연휴도 잘 보내시고, 못 받으신 복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복 듬뿍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D


01. 기본에 풍성함 약간 얹어 7만 원_ 졸업식 꽃다발

02. 내 졸업은 기억 못 해도 아이의 73회 졸업은 기억하리라! _ 졸업식 시작

03.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_ 중3 담임선생님 면담

04. 내 아이 성적표도 안 보면서, 조지아텍 성적표를 매 학기 보고 있다!_ 현실판 SKY 캐슬

05. 특성화고 보내겠다고 과외시키는 엄마라니 _ 특성화고 특별전형

06.



# 특성화고

# 졸업

# 대학입시

# 수시

# 특별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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