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반에 시작하는 졸업식이었지만, 9시 50분쯤 도착하여 마련된 학부모 의자에 앉았다. 노스페이스 눕시 패딩이 유행이라더니 가뜩이나 시커먼 남자아이들이 죄다 시커먼 패딩을 입고 앉아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그놈이 그놈같아 보여아이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밍큐군의 엄마이지 않은가? 오늘도 매의 눈으로 스캔하여, 학부모 자리와 정 반대편에 점처럼 보이는 시커먼 아이들 사이에서 내 꼬맹이를 찾아냈다. 152cm의 반쯤 되는 짧은 다리로 번개처럼 달려가 아이가 나를 볼 수 있는 지점에서 폴짝거렸다.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하고 폴짝폴짝. 엄마 왔다구!! 아이도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는 잘도 앵기더만, 집밖으로 나가면 늘 시크해지는 남자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기에, 눈을 마주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카메라 성능이 일품인 갤럭시 S22 울트라 512기가로 13.7배로 확대하여 아이의 얼굴을 찍으며, 졸업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한 아이가 학부모 의자 쪽으로 달려온다. 아까 내 꼬맹이 얼굴을 확대하여 사진을 찍을 때 계속 앞을 가렸던 친구. 까까머리를 한 밤톨 같은 친구였다. 그 아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 잠깐 사이 익숙해졌다고 아이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밤토리는 나와 같은 줄에 나란히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안아드렸다. 허리는 90도로 꺾였지만 바라보는 나에게 아이의 애정이 느껴질 만큼 온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안아드리고 있다. 몸을 일으킨 아이는 발걸음을 돌려 한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니트 비니를 쓰고, 헤드폰을 낀 중년의 남자분. 빨간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등산패딩을 입은 그 남자와 아이는 미국 드라마에서나 볼 것 같은, 주먹을 위아래로 착착착착하면서 마지막엔 같이 주먹을 툭 맞대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한 치의 오차 없이 스웩 넘치는주먹인사를 아이와 나누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분은 할머님이시고, 중년의 남자는 아이의 아빠인 듯하다. 얼마나 많이 해봤길래 저리 딱딱 맞을까? 부자지간에 흐르는 따뜻한 에너지에 흐뭇했다. 주먹인사 후 아이는 아빠를 안아줬고_이 또한 힙하게_ 아빠 볼에 뽀뽀를 했다. 그것도 양쪽에 두 번씩 네 번. 띠용~
까까머리 밤토리의 외모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이래서 외모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니까. 쓰면서 생각해 보니, 아이의 엄마는 오지 않았다. 엄마의 부재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사랑이 차고 넘쳐흘러 질질 흐르는 밤토리. 너도 내 뚱땡이만큼 사랑받고 자랐구나.
드디어 청주공업고등학교 제73회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내 졸업이 몇 회인지는 모르지만, 아이의 73회 졸업식은 기억하리라. 내 이러려고 갤럭시 S22 울트라 512기가를 샀지. 부지런히 사진도 찍었다.
2023학년도 제73회 졸업식_ 2024년 01월 12일(금) 10:30
기술로, 세계로, 미래로
그쵸그쵸! 기술이 최고죠! 두말하면 입 아프죠! 특화된 한 개의 기술만 있어도, 먹고살 수 있다. 나의 평소 지론인데, 이 말을 아이에게 했다가 담임 선생님처럼 꼰대 같은 말을 한다며 핀잔을 듣기도 했다. 아이는 3년 동안 배운 기술이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난 3년간 특성화고를 다니며 자기도 모르게 익힌(본인은 매우 싫어했음에도 몸이 익힌) 기술은 그 어떤 자격증보다 더 가치 있는 보험이라 생각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평생직업도 사라졌으며, 사람을 대체하는 신기술이 쏟아지는 시대를 살아갈 아이에게 퇴사, 퇴직, 해고 등의 상황이 다가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렇게 갈곳 없이 헤매고, 좁은 길을 위태롭게 걸어갈 때 아이가 가진 기술은 아이의 동아줄이 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가 특성화고를 다니며 습득한 기술은, 기계로 대체되지 않고, 현재도 기술자가 부족하여 정년이 없는 기술이다. 그만큼 고단한 기술이기에 아이는 취업 대신 학업을 선택했다. 특성화고 전공과와는 다른 전공의 학업. 또 다른 기술의 길로 들어서는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으로 꼬꾸라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아이는 그 무엇으로도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고단한 기술이든, 새로운 기술이든. 자격증 사냥꾼의 아들답게 기술을 잘 찾아가고 있다. 칭찬해.
_ 90분 동안 진행된 졸업식 단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에서 성인이 된 아이의 졸업식은 제게도 의미 있더라구요. 특성화고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만큼이나 낯설었습니다. '특성화고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는 졸업을 했습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졸업식만이라도 기억하자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90줄, 900줄 점점 길어집니다. 9000줄까지는 안 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9000줄이라는 어감이 좋아(뭔가 대단히 길어 보이기도 하고) 소제목으로 얹어봤습니다. [ form_ Arisa ]
_ 나누어 본다고 나누어 보는데, 이렇게 나누어 쓴 글을 발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네요. 긴 글을 쓰고, 수정하고, 사진을 고르고, 편집을 하고, 제목을 뽑고, 발행하고. 즐겁지만 참으로 고단한 < 저장과 발행사이_ > 그래도 즐거움이 큽니다. 언젠가 이 글을 보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미소 지을 제 모습이 선명히 그려지네요. 의미 있는 일상의 한 자락을 제가 이렇게 쓰고 발행하고 있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
_ 명절 연휴가 시작되네요. 저도 일 년에 두 번 명절 전날 일찍 퇴근합니다. 연휴 잘 보내시고요, 아직 받지 않은 복이 있다면 듬뿍 받으시길 바랍니다. 2024년 02월 08일 목요일_오후 02:18
01. 기본에 풍성함 약간 얹어 7만 원_ 졸업식 꽃다발
02. 내 졸업은 기억 못 해도 아이의 73회 졸업은 기억하리라! _ 졸업식 시작
03.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_ 중3 담임선생님 면담
04. 내 아이 성적표도 안 보면서, 조지아텍 성적표를 매 학기 보고 있다!_ 현실판 SKY 캐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