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cm로 자란 나의 꼬맹이는 152cm인 나를 '꼬맹이'라고 부른다. 아이또래 학부모와 의사소통이 전혀 없는 나는 이맘때의 다른 집 남자아이들이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부모와의 관계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내 아이와 나뿐이다.
"엄마 왜 이렇게 작아?" 물어봄과 동시에 "나는 152지만, 아무도 그렇게 안보거든?! 155로 보거든!이라고 대답하겠지. 뻔하지 뻔해"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할 말을 가로챈다.
"넌 뚱뚱하지만 친구들이 완전 뚱땡이로는 안 보지?" 이에 질세라 나도 원초적인 질문을 날린다. "응. 맞아. 애들이 나 80킬로 초반으로 봐. 90킬로 초반이라고 하면 진짜 깜짝 놀래" 초등 고학년부터 살이 오르더니, 고2 때는 몸무게가 세 자릿수가 되었고, 지금은 90킬로 초반. 여전히 뚱땡이지만 해맑게 대답한다.
"다행인 줄 알어. 넌 나 닮아서 그래. 대가리가 작아서 사람들이 잘 몰라" 우리는 대가리가 작다는 엄청난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신나서 깔깔거린다.
우리는 자주 신나 하고, 가끔 심통을 부린다. 우리는 매일매일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자기 전 볼뽀뽀를 해준다. "안아줘"라고 말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안아준다. 대충 팔만 둘러 감싸 안으면 "제대로"라고 지적을 받기도 한다. "내 팔로 너를 다 안을 수 없는데" 뚱뚱하다는 걸 에둘러 말하면, "엄마가 꼬맹이라서 그래" 작은 키로 되받는다.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 부모와 자식으로 묶인 이 관계가 나는 너무 좋다. 세상 귀한 아이가 내게서 태어났고, 나와 함께 하는 매 순간이 감동이다. 때때로 심통을 부리는 순간도 있지만, 서로의 방문을 열며 한마디 건네는 순간 갈등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는다.
많은 순간 아이가 먼저 내 방문을 열어주는데, 방문을 여는 아이의 용기에 감사하고, 나의 옹졸함에 부끄럽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 표현 단어를 아이를 만나며 경험하고 어떤 때는 세상의 단어로도 부족하여, 솟아오르는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처럼 말이다.
갤럭시 S22 울트라 512G_ 색감 좋다 :)
아이는 오늘 졸업을 했다. 중학교 졸업식은 코로나로 부모참석이 금지되어, 초등졸업식 이후 간만에 참여하게 된 학교 행사에 나는 너무 들떴다. 허리벨트로 잘록해 보이는 라인을 만들 수 있는 아이보리색 미디패딩에, 블랙 스키니, 롱부츠로 이미 코디를 해놨지만, 구두를 신지 말라는 아이의 말에 신발은 운동화로 바뀌었고, 바뀐 신발에 따라 옷차림도 달라졌다.
핑크레터링이 새겨진 회색티셔츠에 와이드 청바지. 이전에 이렇게 입었을 때 아이가 힙하다고 칭찬해 준 걸 잊지 않고, 같은 와이드지만 통이 조금 좁은 세미와이드로 청바지는 바꾸었다. 핑크레터링과 색을 맞춰 신발은 핫핑크 컨버스로 결정했다. 152cm의 키는 154cm가 되었고, 154cm가 되었으니사람들을 157cm로 볼 것이다. 나는 대가리가 작아, 비율이 좋다. 푸하하하.
집 근처에 예약해 둔 꽃다발을 찾아 학교까지 걸어갔다. 핫핑크 운동화를 신었더니, 걸음걸음이 편했고 가벼웠다. 꽃값이 너무 올라, 6만 원에 산 졸업식 꽃을 2만 5천 원에 당근에 거래한다는 기사를 보긴 봤지만, 6만 원이 최소금액일 줄은 몰랐다. 꽃다발 예약은 기본 6만 원부터 시작이었고, 풍성한 꽃은 8만 원에서 12만 원이라 했다. 금액에 따라 맞춰드린다는 플로리스트의 말에 냉큼 7만 원으로 맞춰달라 했다.
기본은 왠지 덜 풍성할 것 같았고, 풍성함의 시작인 8만 원은 조금 아까웠기에, 기본에 풍성함 약간 얹어 7만 원으로 했다. 풍성함을 약간 얹긴 했지만, 빈약하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건네받은 꽃다발은 맘에 쏙 들었다. 포장을 잘했고, 여백의 미가 있었다.
졸업식 꽃다발_ 기본금액 6만 원에 풍성함 약간 얹어 7만 원
초록색 인조 잔디가 드넓게 깔린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졸업식이 진행될 청송관으로 향했다. 아이들 넷이 나란히 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팔뚝에 '사진'이라고 새겨진 노란 완장을 찬 사진기사님이 사진을 찍어주고 계셨다. 가만히 서 있질 못하는 아이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시는 사진 기사님을 보니 학교에서 섭외했나 싶었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기사님을 보니 신기했다. 여전히 이 직업이 살아있구나? 놀라우면서도 벌이가 되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대충 사진을 찍은(찍힌)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중 한 아이가 운동장 구석에 놓여있는 은색 SM 차량에 올라탔다. 맞지 맞지. 19살이지. 운전면허증을 많이 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그리 어색할 수가 없었다. 고3이 차라니.. 그저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다시 내리는 아이의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허세 그득한 남자를 보는 느낌이랄까? 상남자 느낌을 물씬 풍기던 아이도 졸업식이 거행되는 청송관으로 총총총 뛰어갔다. 귀여운 놈.
_ 90분 동안 진행된 졸업식 단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에서 성인이 된 아이의 졸업식은 제게도 의미 있더라구요. 특성화고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만큼이나 낯설었습니다. '특성화고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는 졸업을 했습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졸업식만이라도 기억하자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90줄, 900줄 점점 길어집니다. 9000줄까지는 안 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9000줄이라는 어감이 좋아(뭔가 대단히 길어 보이기도 하고) 소제목으로 얹어봤습니다. [ form_ Arisa ]
_ < '어쩌다보니' 자격증 사냥꾼 >처럼 단락이 명확히 구별되지는 않지만, 적당히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이참에 브런치북을 발행해볼까 싶었는데, 정해진 날짜에 발행하는 것이 아직은 준비되지 않아 < 저장과 발행사이_ >에 넣으려 합니다. 저의 어깨뽕 최작가가 '특성화고 엄마로 살아가기'라는 쓰기를 권고했었거든요. 그때는 못했지만, 이제라도 해봅니다. 최작가. 나 잘했지?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