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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사 Feb 15. 2024

특성화고 보내겠다고 과외시키는 엄마라니! - 특별전형

_ 05. 90분 동안의 졸업식은 9000줄이 넘는 쓰기로


: 05. 특성화고 보내겠다고 과외시키는 엄마라니! _ 특성화고 특별전형


"청주시내는 다 갈 수 있대! 멀미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학원 한 번을 안 다니고, 게임만 주구장창 했는데 그래도 수업시간에 수업을 잘 들었나 봐. 기특하네 우리 꼬맹이.


"청주공고에도 갈 수 있대!" 엄마 때는 기계공고였는데 이름이 바뀌었고 기술 쪽으로는 청주 최고인 학교라고도 말해줬다.


"근데, 지금 성적이 간당간당하다는데 그래도 원서 써볼래?" 아이는 써보겠다고 했다.


"공부를 좀 해야 할 텐데 괜찮을까?"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성적에 반영되는 2학기 시험까지는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성적을 부탁해 :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을 이때 봤더라면, 내 선택은 달라졌을까? 다른 과목보다 영어, 수학이 바닥이었고 단기간 영어로 성적을 올리기는 어렵다고 판단, 수학으로 타깃을 잡았다.


내가 대신 공부해 줄 것도 아니니, 아이에게 엄마 생각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이도 영어보다는 수학이 낫다고 힘을 실어주었고, 담임 선생님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여태도 공부하란 말을 안 했는데, 지금에 와서 이렇게 어거지로 공부를 시키는 게 맞을까요? 담임 선생님은 그래도 시켜보라고 하셨다.


엄마 미안해


시험 성적이 나왔다. 아이는 나에게 사과했고, 커다란 눈에 눈물이 송글송글 맺혔다. 산출점수는 하나도 오르지 않았고,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마지막 시험이라 친구들 모두 열심히 했나 보네?!" 내 꼬맹이뿐 아니라 너도나도 열심히 했을 것이다. "성적 안 떨어진 게 어디야? 그동안 고생했어."


일주일에 두 번 수학 과외를 붙였다. 한 시간씩 진행된 수업이 싫은 눈치였지만, 안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6주 동안 수업을 받았고, 수학 성적은 조금 올랐으나, 등급은 오르지 않았다. 아이도 기대했을 것이다. 노력도 보탰을 테고, 싫었지만 견뎠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제일 잘 알지!


괜찮아! 청주 시내는 다 갈 수 있다잖아!


진짜 진짜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는 아이가 짠해서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괜찮아. 괜찮고말고. 청주 시내는 다 갈 수 있다니까!" 웃으며 말해줬다. 방으로 들어간 아이는 "공격, 공격" 게임을 시작했고, 나는 아이의 간식을 준비했다. 우리 둘의 눈가에 송글송글 맺혔던 눈물은 완전히 쏙 들어갔다.


인문계 커트라인이었던 아이 성적에도 인문계를 고집하지 않고, 특성화고를 과감히 선택한 엄마가 고마워서일까? 특성화고(청주공고)를 보내보겠다고 수학과외를 시켰던 노력을 알아주셨을까? 아이가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고 게임을 좋아하는 걸 인정해 주셨을까? 아이 담임선생님은 청주공업고등학교 특별전형에 아이를 추천해 주셨다. 담임 선생님의 추천서와 더불어 취업희망서도 제출해야 했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 아빠가 그래픽디자인 강사여서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익숙했고, 컴퓨터 구조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컴퓨터뿐 아니라 기계에도 관심이 많고, 3D 프린터는 특히나 좋아하는 분야입니다. 」


와우! A4 한 장을 꽉 채운 아이의 취업희망서. 취업희망서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았지만, 정말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고칠 곳 하나 없는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어? 대단한데?!" 그냥 쓴 건데! 아이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배시시 웃었다. 근데... 내용은 너무 좋은데, 글씨만 좀 정성스럽게 쓰면 안 될까? "응 그럴 거야. 내일 학교 가서 다시 쓸 거야" 그래? 그런 거였어?


3D 프린터로 출력한 모형_ 밍큐군 작품


아이들 수행평가 때문에 엄마들이 고생한다는 얘기도 간간이 들렸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아이를 대하는 엄마로서 나의 태도는 상냥했지만, 아이의 역할에 대해서는 분명했다. 모든 시작과 끝이 나이듯, 아이의 시작도 끝도 아이였다. 꼬맹이때부터 '나 마음은 나꺼'라던 아이는 역시나 잘 해냈다. 아이 안의 우주는 내 세상보다 넓고 찬란하다.



_ 90분 동안 진행된 졸업식 단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에서 성인이 된 아이의 졸업식은 제게도 의미 있더라구요. 특성화고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만큼이나 낯설었습니다. '특성화고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는 졸업을 했습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졸업식만이라도 기억하자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90줄, 900줄 점점 길어집니다. 9000줄까지는 안 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9000줄이라는 어감이 좋아(뭔가 대단히 길어 보이기도 하고) 소제목으로 얹어봤습니다. [ form_ Arisa ]


_ 저는 지금도 "내가 특성화고 보내겠다고 과외시킨 엄마야!"라고 종종 말하곤 합니다. 아.. 수학 과외선생님은 제가 알아봤습니다. 단칼에 거절했던 사장님께 부탁드리기 불편하기도 했고, 사장님과 연관된 분과 엮이기 부담스럽기도 해서요.ㅎㅎㅎㅎ 그냥 웃지요.ㅎㅎㅎㅎ 


_ 특성화고를 다니게 된 아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제 꼬맹이는 말 그대로 인문계고 커트라인에 걸린 성적과,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을 받아들여 특성화고를 선택했습니다. 인문계와 특성화고의 기로에서 아이와 저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 논할 수는 없지만, 아이도 저도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니까요. 정말 알 수 없습니다. :)


01. 기본에 풍성함 약간 얹어 7만 원_ 졸업식 꽃다발

02. 내 졸업은 기억 못 해도 아이의 73회 졸업은 기억하리라! _ 졸업식 시작

03.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_ 중3 담임선생님 면담

04. 내 아이 성적표도 안 보면서, 조지아텍 성적표를 매 학기 보고 있다!_ 현실판 SKY 캐슬

05. 특성화고 보내겠다고 과외시키는 엄마라니 _ 특성화고 특별전형

06. 아이의 세상은 내 세상보다 위대하고 찬란하다 _ 엄마와 아이

07. 남의 아이만 빨리 크는 것 같았는데 졸업이라니 _ 이제 졸업식 시작

08.



# 특성화고

# 졸업

# 대학입시

# 수시

# 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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