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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사 Feb 16. 2024

아이의 세상은 내 세상보다 위대하고 찬란하다

_ 06. 90분 동안의 졸업식은 9000줄이 넘는 쓰기로


: 06. 아이의 세상은 내 세상보다 위대하고 찬란하다 _ 엄마와 아이


"오늘은 유민이랑 안 놀아?" PC방에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며칠째 만나지 않고 집에서만 게임을 하더니, 꾸물꾸물 방구석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응. 오늘은 애들 안 논대." 며칠 전 친구 한 녀석과 말다툼을 했다더니, 아직 안 풀렸나 보다.


엄마 마트 갈 건데 같이 갈래? "아니. 집에 있을래" 기운 없이 누워있는 아이를 두고 마트에 갔다. '어라? 요 녀석들 봐라?!' 평소 아이와 몰려다니던 아이들이, 오늘은 안 논다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있었다. 감히 우리 밍큐만 빼고 지들끼리 놀아? 방긋거리며 한 뭉터기로 몰려있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괘씸했다.


평소 우리 집에 와서 야곰야곰 간식을 먹던 녀석들이라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불러 세울까 싶기도 했다. 요 녀석들 아줌마가 한소리 해? 방구석에 축 처져 있던 나의 사랑스러운 밍큐군이 떠오르니, 더욱 화가 났다. 웃고 있는 아이들이 꼴 보기가 싫었다. 저 웃음을 망쳐놓고 싶었다. 찐한 배신감. 그로부터 파생된 분노. 내가 해먹인 간식이 얼마인데. 본전생각까지 났다! 맙소사. 아리사야..  


아이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침대 위를 뒹굴뒹굴 거리는 꼬맹이는 아이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듯했다. "아직도 연락 없어?" 아이는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혼내 주까?" 아이는 끄억끄억 울음을 삼켜내면서 괜찮다고 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가만히 아이를 안아주었다. 


타로 마이너카드_ 소드Ⅲ_ 키워드 : 깊은 상처, 이별, 고통, 아픔, 파경, 폐업, 죽음


아이와 맞대어진 내 심장은 쪼개져 나가는 것 같았다. 도깨비의 가슴에 긴 칼날이 박혀있듯 아이의 눈물은 날 선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쑤셔댔다. 내 생애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안아주고 기다려주는 것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들끼리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아이의 세상을 인정하고 지켜보는 것.. 숨이 막혔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에게는 고통의 기준을 산통, 즉 아이 낳는 고통에 견준다. 그만큼 고통이 크다는 말일 텐데, 꼬박 삼일동안 진통을 하고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만난 나였지만 산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 오늘 애들 우리 집에 델고 와도 돼?


뭣이라? 뭣이라고라고라? 바로 다음날 아이는 전화를 해 나에게 물었다. "그럼 그럼. 몇 시에 올 건데?" 과일을 썰어 접시에 담고, 너겟도 준비했다. "얘들아! 어서 와!" 녀석들에게 분노를 퍼붓던 다 큰 어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온화한 엄마미소로 아이들을 맞이했다. 언제나처럼 야곰야곰 간식을 먹어대는 아이들이 또 이뻤다. 밍큐도 활짝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다.


아이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움직여서도 안된다. 내 뱃속에서 나왔고, 나의 손길 안에 커나가고 있고, 내 품 안에 놓여있지만, 내꺼는 아니다. 나는 아이가 안전할 있도록, 성장할 있도록, 고통을 받아들일 있도록, 견딜 수 있도록, 잘못을 인정할 있도록, 화해의 손길을 내밀 있도록, 타인의 마음을 수용할 있도록 마음으로 보듬어야 엄마일 뿐이다. 아이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기다려줘야 하며, 믿어줘야 한다.


잠시 잠깐의 해프닝이 되어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아주 깊이 새겨졌다. 아이도 아이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아이의 세상은 세상보다 위대하고 찬란하며 드넓다는 것을. 아이는 아이의 세상에서 이미 빛나고 있음을. 부모도 부모의 역할이 있듯, 아이도 아이의 역할이 있음을. 각자의 위치에 따라, 역할은 달라지고, 역할에 따라 행동도 달라지지만 지켜야 할 선은 분명 있다는 것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때 느끼는 감정은 기쁨의 조각보다 고통의 조각이 훨씬 더 크고 깊이 박힌다. 기쁨의 조각은 둥글둥글하여 잠시 머물다 가지만, 고통의 조각은 뾰족하고 날카로워 상처를 남긴다. 아이의 미소에 심장의 칼날도 사라졌지만, 이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의 서막이었다.



_ 90분 동안 진행된 졸업식 단상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에서 성인이 된 아이의 졸업식은 제게도 의미 있더라구요. 특성화고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만큼이나 낯설었습니다. '특성화고 엄마'라는 이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이는 졸업을 했습니다. 뒤돌아서면 까먹는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졸업식만이라도 기억하자 싶어 쓰기 시작했는데 90줄, 900줄 점점 길어집니다. 9000줄까지는 안 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9000줄이라는 어감이 좋아(뭔가 대단히 길어 보이기도 하고) 소제목으로 얹어봤습니다. [ form_ Arisa ]


_ 저희 엄마가 저를 아직 '아가'라고 부르듯 저도 '제 꼬맹이' '제 꼬맹이'라고 말은 하지만, 스무 살이 된 저의 꼬맹이는 사실 꼬맹이가 아닙니다. 저도 이미 '아가'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제 꼬맹이는 이미 몸도 마음도 생각도 많이 커져있으며, 아이의 성장은 언제나 저를 놀라게 합니다. '경이로움'이라는 단어 역시 아이를 만나며 경험했습니다. 엄마 생각만 난다며 내 품을 파고들던 아이의 내면에, 이제는 제가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졌지만 아이 스스로가 만든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합니다. 무한한 공간 저너머까지 펼쳐질 아이의 세상이 몹시도 기대되고, 언제나 '1' 더 사랑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나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사랑해알라뷰뿅뿅




2010년 4월 28일 수요일 밤


"난 엄마 생각만 나"


누워있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한다.


"난 엄마 생각만 나"


세상에.. 내 생각을 한다는 그 어떤 이들의 고백보다 진한 감동이다.


엄마라는 자리..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자리.. 지켜야 할 자리..


"엄마 좋아"


"사랑해"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주는 말. 이제는 내 생각도 한단다.


세상에.. 내 안에서 어떻게 저렇게 이쁘고 사랑스런 아이가 나왔을까? 어느새 저리 컸을까?


"난 엄마 생각만 나"

"난 엄마 생각만 나"

"난 엄마 생각만 나"

"난 엄마 생각만 나"


_ 2010년이면 제 꼬맹이 여섯 살 때입니다. 나홀로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D



01. 기본에 풍성함 약간 얹어 7만 원_ 졸업식 꽃다발

02. 내 졸업은 기억 못 해도 아이의 73회 졸업은 기억하리라! _ 졸업식 시작

03. "그렇다면 저는 특성화고를 보내겠습니다"_ 중3 담임선생님 면담

04. 내 아이 성적표도 안 보면서, 조지아텍 성적표를 매 학기 보고 있다!_ 현실판 SKY 캐슬

05. 특성화고 보내겠다고 과외시키는 엄마라니 _ 특성화고 특별전형

06. 아이의 세상은 내 세상보다 위대하고 찬란하다 _ 엄마와 아이

07. 남의 아이만 빨리 크는 것 같았는데 졸업이라니 _ 이제 졸업식 시작

08. 자격증 하나는 따야지_ 특성화고 필기시험 면제자 검정

09.


# 특성화고

# 졸업

# 대학입시

# 수시

#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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